아름다운 공유 기증

월남민, 그들의 기록과 역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북한 관련 자료를 소수 소장하고 있다. 손동헌 씨가 2016년 기증한 ‘북청농업전문학교 졸업증서’(1949)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증명서’(1950)는 북한 정권 수립 직후의 문서 형태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기증자는 역사 자료로 영구히 남아 후손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박물관에 기증했다.

잠깐의 피란길이 돌아갈 수 없는 실향의 여정이 되다

기증자 손동헌 씨는 1930년 4월 8일 함경남도 북청군 양화면 호만포리에서 태어났다. 1949년 북청농업전문학교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1950년 국립평양가축위생연구소에 부임했다. 그리고 그해 한국 전쟁을 맞았다. 전쟁 발발 소식에 평양에서 15일을 걸어 고향 북청에 도착해 가족과 만났지만, 한두 달 정도의 피란생활을 예상하며 아버지, 삼촌과 함께 함흥 큰어머니 댁으로 갔다. 그러나 유엔군이 후퇴하자 흥남에는 수많은 피란민들이 몰려들었고, 그도 간신히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일본 화물선을 타고 추위를 견디며 거제도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군수 물자 수송 노동자로, 양구, 인제, 고량포 등지에서 야포부대 노동자로 일하던 기증자는, 어느날 길에서 만난 북청농업전문학교 동창이 대학생이 된 것에 자극을 받고 아버지를 졸라 대학 입시에 도전했다. 서울대학교에 이어 중앙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냈으나 북한 졸업장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운 좋게 월남한 조교의 도움으로 중앙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후 손동헌 씨는 동 대학 동 과에서 전임강사와 교수로 근무했고, 2015년부터 현재까지 재단법인 북청군장학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북청농업전문학교 수의학과 1회 입학생

기증자가 졸업한 북청농업전문학교는 일찍이 독립운동가 이준 열사가 1888년 고향 북청에 설립한 경학원(經學院)이 전신으로, 그 자리에 북청공립농업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북청은 적색농민조합 건설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곳이었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은 북청공립농업학교는 1930년 동맹 휴교로 학생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해방 이후 북한의 부족한 수의 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학자와 기술자들을 조사, 확보하는 한편, 당시 세계적인 생물학자 오파린(A.I. Oparin)을 단장으로 하는 부문별 정책 및 과학기술자 양성을 위해 소련의 기술 원조를 받았다. 또한 기존 기술자를 중심으로 각종 기술 강습 및 강좌를 조직해 기술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1947년에 기술전문학교 및 각종 양성소를 통해 수의 기능공을 양성했다. 이에 따라 1946년 10월 개교한 김일성 종합대학 농학부 산하에 고등교육기관인 수의축산학과가 처음 설립되었고, 1947년 북청공립농업학교가 북청농업전문학교로 전환되면서 기존의 농과, 임과, 잠과에 수의과를 신설해 운영했다. 1944년 잠과에 입학한 기증자는 수의과로 전과해 1949년 12월 졸업했다.

통제의 수단, 신분증

손동헌 씨가 피란 시 소장했던 다른 자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증명서’다. 이념과 체제가 다른 정부가 수립되면서 남북의 신분증도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분단정부 수립후 신분증은 국장(國章)과 각 개인의 사진을 새김으로써 ‘국민’과 ‘비국민’을 구분하는 증표였고, 소속과 개인 정보를 담아 ‘국민의 자격’을 나타냈다. 남한은 한국전쟁 직전에 도민증과 시민증을 발급했다. 1950년 10월 초에 발급한 서울시민증은 ‘선량한 시민의 신분을 보장하며 제5열을 철저히 소탕하고자’ 발급했다.

국립평양가축위생연구소 신분증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장과 성명, 소속 기관, 직명, 주소, 발행일을 기록해 신분을 증명했고, 유효기간과 확인 도장을 찍어 보증을 표시했다. 앞면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장이 인쇄되어 있는데, 가운데에 백두산이, 그 아래에 수력발전소(수풍댐)와 철탑이 그려져 있다. 백두산 위에는 별이, 국장 아래쪽에는 빨간색 리본이 양쪽의 벼 이삭을 묶고, 리본 가운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쓰여 있다. 빨간색 별은 혁명의 영광을, 벼 이삭은 농업과 인민을, 댐과 수력발전소, 철탑은 공업과 노동을 의미하며, 백두산은 혁명의 성지로 신성히 여기는 산이다.

아름다운 공유, 기증

대부분의 기증자는 박물관에 자료를 기증하면서 이를 분류하고, 기록하며, 자료에 담긴 기억과 이야기를 함께 풀어낸다. 개인의 역사를 복원하고 수집한다는 측면에서 기증은 개인을 역사 서술의 주체로 내세우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월남민의 대부분은 남한으로 내려오기 이전의 기억을 거의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한다. 세월에 의해 잊혀졌다기보다, 역사적, 정치적으로 왜곡, 망각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분단과 전쟁으로 조각난 그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복원하는 것은 분단의 상흔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반공으로 점철된 분단 의식을 역사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월남민을 통해 희귀한 북한 자료를 수집하고 월남민의 기록을 복원하는 것은 분단의 역사를 다시금 살피는 연구사적 탐구 과정일 뿐만 아니라 통일의 역사를 새롭게 그려갈 성찰의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를 ‘기증’하세요
자료 기증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시작입니다. 대한민국은 숱한 고난을 겪으며 많은 자취를 남겼고, 자취는 자료로 남아 역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체취가 묻어있는 기증 자료는 대한민국이 걸어온 흔적과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고리가 될 것입니다.
기증 현황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010년 개관 준비를 하기 위해 자료를 기증받기 시작한 이후 2018년까지 387명의 개인 또는 단체로부터 6만3872점의 자료를 수증했습니다. 박물관에 자료를 기증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기증 안내
대상┃개항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는 관련 인쇄물과 사진 등의 기록물, 유품, 기념품, 생활용품 등의 역사 자료.
절차

1 기증 의사 접수 ┃ 기증 안내 및 자료 조사

2 자료 인수 ┃ 내부 검토 후 자료 인수, 기증원 접수

3 수증 심의 ┃ 수증 심의 개최, 탈락 자료 반환

4 수증 및 국가 귀속 ┃ 수증 증서 발급, 자료 등록

문의 ┃ 02-3703-9303, 9237

글. 자료관리과 황윤희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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