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만세 시위 모습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1부 전시장 입구
특별한 전시Ⅰ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는 3·1운동에 관한 전시로, 모두 4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독립만세를 외치다’, 2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3장 ‘가슴에 품은 3월 1일’, 4장 ‘3·1운동의 깊은 흔적’이다.

1부 1919년을 가슴에 품다

3·1운동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거대한 사건이었다. 아주 많은 인원이 참여한 ‘거족적’인 사건이었으며, 한반도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공간적으로 거대한 사건이었다. 또한 3·1운동을 계기로 국외 민족운동이 본격화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다른 나라의 민족해방운동에까지 영향을 줄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19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진행된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광복 이후에 일어난 정부 수립, 4·19혁명 등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 거대함과 중요성에 비해서 우리가 3·1운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다소 단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3·1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하면 누가 생각나는가? 여린 소녀의 몸으로 3·1운동에 앞장서고 불행하게 희생당한 유관순 열사, 기독교·천도교·불교 등 종교계 대표로 구성된 민족 대표 33인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3·1운동을 이끈 지도자와 핍박받고 희생당한 참여자의 이미지가 3·1운동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을 뿐, 이 사건의 여러 국면에서 다양하게 참여한 사람들의 존재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그간 우리는 3·1운동이 우리 근대사의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은 다 인정하면서도 3·1운동에 참가한 다층의 사람들을 인식하는 것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특별전은 3·1운동에 대한 이 같은 제한된 인식을 보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전시의 1장인 ‘독립만세를 외치다’에서는 3·1운동의 배경, 발생, 국내외 확산 등에 관한 자료를 전시했다. 또한 일제 및 친일 세력의 대응 등에 대해서도 전시했다. 기미독립선언서 원본, 등록문화재인 대한국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 조선독립신문 등도 전시했다.

2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서는 3·1운동에 참여한 민초들에 관해 전시했다.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조선총독부 사법부의 3·1운동 참여자에 대한 판결문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민초들의 참여를 볼 수 있다.

“유인수(머슴, 18세), 이한준(신발 수선업, 31세), 김찬희(중개업, 29세), 박학준(머슴, 37세), 박진갑(연초 노동자, 18세),
이정엽(대정기생조합 머슴, 31세), 이종엽(프랑스영사관 통역, 41세), 김진영(기름종이 제조업, 29세), 김교승(노동자, 26세),
장석영(미국인 피터 고용, 26세), 김동익(은세공업, 33세), 송병철(종이 상자 제조업, 16세), 정만성(노동자, 51세),
박순장(무직, 29세), 박흥준(머슴, 37세), 김규정(종이 상자 제조업, 21세)”

1919년 고등법원 판결문
<조선독립신문> 제42호

직종이 다양했을 뿐 아니라 지역, 연령 등 다양한 구성의 인물이 3·1운동에 참여했다. 판결문 자료를 보면,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음에도 만세운동을 통해 조선 독립을 외친 자신의 상황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황해도 지역 36세 농부인 김명성이라는 인물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원래 우매한 한 명의 농민으로 교회 혹은 사회 활동은 아는 바 없으나 삼척동자는 물론 노상의 걸인일지라도 독립 만세를 부르는 이때에 즈음하여 4000년 이래의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서 어찌 함구하여 만세를 외치지 않을 것인가.” 엘리트 지식인으로 3·1운동을 기획한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이처럼 당당하고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3·1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3장 ‘가슴에 품은 3월 1일’에서는 3·1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비교적 그 삶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인물들에 관해 전시했다. 우선 남대문역(현재 서울역 부근)에서 학생 시위를 주도한 김원벽, 한위건, 김대우 등의 당시 참여 상황과 이후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대한제국 시기부터 국정에 가담했던 원로 유학자 김윤식, 의병운동을 하던 인물로 3·1운동에도 가담한 류준근 등의 삶도 엿볼 수 있다. 3·1운동의 경험을 그림, 문학, 영화 등 예술로 승화한 김진우, 심훈, 윤봉춘 등에 대해서도 전시했다. 제암리 학살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전동례의 삶 또한 다루고 있으며, 2·8독립선언에 참여한 김마리아의 삶에 대해서도 전시했다. 3·1운동 이후 해외 독립운동에 나선 김경천, 류자명,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결의대회에 참여해서 조선 독립을 호소한 이미륵, 김법린에 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젊은 나이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이후에도 의미 있는 역사적 역할을 한 사람으로는, 6·10만세운동을 주도한 박래원, 언론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노력한 최은희, 4·19교수선언을 주도한 정석해 등의 삶을 조명했다.

대한국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

마지막으로 4장 ‘3·1운동의 깊은 흔적’에서는 이후의 역사에서 3·1운동 정신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봤다. 대한민국헌법, 4·19혁명 당시의 학생 일기,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자료를 전시했다. 이번 특별전을 찾는 관람객들은 알고 있던 것보다 3·1운동이 훨씬 거대한 사건이었고, 이후 역사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기간
2019년 2월 22일(금)~9월 15일(일)
장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수·토요일 오후 9시까지,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관람문의
02-3703-9200
글. 전시운영과 김성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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