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가는 시간

근현대사 재발견

환국 후에도 실천한
백범·임정 요인의 상부상조 정신

『輔仁禊節目』 『輔仁禊基本出資簿』 〈輔仁禊 초고(草稿)〉 등 ‘輔仁禊’ 사료 발굴

광복 후 환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은 무엇으로 서로를 지탱했을까. 백범 김구를 비롯한 임정 요인 30여 명은 ‘보인계(輔仁禊)’라는 계를 결성해 궁핍했던 시절 서로 돕고 의지했다. 백범 탄생 1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백범이 표지까지 손수 쓴 계 문서 등 보인계 관련 사료 3건을 새롭게 발굴해 단행본으로 정리했다. 이는 관련 문헌이 희귀한 임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발간 도서 표지

발간 도서 표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몇 해 전부터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해 왔다. 보인계(輔仁禊) 사료 3건에 대한 자료집 발간이 그것이다. 자료에 대한 영인·번역과 함께 역사적 의의도 정리해 단행본을 6월 26일(백범 기일〈忌日〉)에 출간했다(※ 박물관 누리집(much.go.kr) 게시 〈출판물〉 PDF 파일 및 〈보도자료〉 참조). 보인계는 백범, 성재(이시영), 청사(조성환) 등 30분의 계원이 보인 (輔仁)과 친목·경제 산업을 도모하기 위해 결성한 계다. 대부분의 계원은 이들 세 지도자를 따르던, 이름이 크게 드러나지 않은 분들이다. 지금까지 계 모임(정기총회·월례회)은 1947년 10월(제1회 정기총회)부터 1949년 3월 15일(월례회) 사이에 최소 11회 개최됐다.
임시정부 관련 문서가 매우 희귀한 현실에서, 임정 관련 인물들의 문헌 자료(『보인계절목』·『보인계기본출자부』 등)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1947년 7월 『輔仁禊節目』의 표지와 내용 전체를 백범이 손수 작성했다. 같은 해 10월 정기총회를 개최하며 『輔仁禊基本出資簿』의 표지 제자(題字)도 백범이 직접 썼다. 다행히 보인계 관련 초고(草稿)가 존재해, 짧은 기간 존속한 계 운영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계 규약 외에 실제 운영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가 아직 발견되지 않음

계 규약 외에 실제 운영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가 아직 발견되지 않음

주요 언론(지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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