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역사

DMZ 톺아보기

DMZ: 냉전과 문명의 역사를 넘어선
새로운 지문화적 상상

DMZ는 냉전의 산물인 동시에 생태와 평화의 가치를 품은 새로운 희망의 공간이다. 한반도 중부지대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지정학적 한계를 기회로 바꾸는 ‘지문화적 상상’을 통해 분단을 넘어 유라시아로 이어지는 비전을 제시한다.

한반도 DMZ의 철책선들

한반도 DMZ의 철책선들

냉전의 국제질서를 반영한 DMZ의 탄생과 역사
DMZ는 한반도의 영토이지만 세계적인 지정학적 흐름을 반영하며 형성되고 변화한 지역이다. 1950년대 DMZ는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시작된 미국과 소련 냉전 대립의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한국이 미·소 냉전으로 분단되었고 전쟁이 발발하여 한반도의 중부지역 일대가 DMZ로 변형된 것이다.
1960년대 미·소 냉전 경쟁이 더 심해지면서 비무장지대는 급격하게 군사화되었고, 1970년대 미·소, 미·중, 동·서유럽 데탕트가 이뤄질 때에는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DMZ를 평화지대로 전환하자는 제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미·소 체제 경쟁이 끝나고 탈냉전이 이루어지자 DMZ는 남북 간 교류와 화해 협력의 장이 되었다. 2010년대 들어 아시아에서 중국이 부상하고 유럽통합이 확대되며 세계적인 강대국 경쟁 구도가 재편되자 DMZ는 또다시 교류와 협력이 중단된 군사지대가 되었다. 전쟁의 산물인 DMZ가 지금은 고요하고 시간이 멈춰 있는 지대가 되었지만 그것 자체가 국제질서 변동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한반도 문명사의 관점에서 본 DMZ
DMZ 일대, 즉 한반도의 중부지대는 문명사의 관점에서 보아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중부지대는 한반도가 한 나라로 통합되어 평화로운 시기에는 남북을 잇는 지역으로 발전했고, 여러 세력이 대립하던 시기엔 군사 갈등이 발생한 지역이었다. 중부지대는 고구려 시대엔 고구려의 영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였다. 한반도의 대부분 지역을 통합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에는 개성과 서울, 철원과 평강, 금화와 금성, 고성과 간성 지역이 거의 천년 동안 한 나라의 지역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반도 문명의 역사적 중심지가 고조선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평양, 개성, 서울, 경주로 이동했던 것을 생각하면, 한반도의 중부지대가 지금처럼 남·북한으로 분단된 것은 작게는 고려의 수도 개성과 조선의 수도 서울의 분단이며, 크게는 고구려의 수도 평양과 신라의 수도 경주 사이의 분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차이를 넘어서기 위해 개성과 서울을 다시 이으려는 노력과 평양과 경주의 차이를 넘어서려는 통합 노력들이 있었던 것이다.

대동여지도상의 한반도 중부 지역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고지도)

대동여지도상의 한반도 중부 지역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고지도)

20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정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에 모인 70여 개국 정상들(출처: AFP)

20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정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에 모인 70여 개국 정상들(출처: AFP)

지정-지리-지경-지문화적 전망과 상상
DMZ는 여전히 미래의 희망들을 품은 공간이다. 이를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정학적(Geopolitical), 지리적(Geographic), 지경학적(Geo-economic) 그리고 지문화적(Geo-cultural) 한계를 기회로 전환하는 새로운 전망과 상상이 필요하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DMZ는 전형적인 권력 균형(Balance of power) 원칙의 산물이었다. 한반도의 지정학이 지금처럼 입헌적인 자유주의 국제질서(Constitutional)가 지속될지, 과거처럼 권력 균형 원칙이 작동할지, 앞으로 좀 더 많은 지역 강국들의 영향이 동시에 미치는 다원주의 국제질서로 재편될지 면밀히 살피고 대비해야 한다.
지리적 한계를 장점으로 전환시킨 사례로는 분단을 경험한 독일의 그린벨트 지대가 유럽 그린벨트 이니셔티브로 확장된 일, 에콰도르와 페루가 만든 코르디예라 델 콘도르 평화공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반도의 지리가 지구 생태 변화에서 지니는 가치를 고려할 때, DMZ는 향후 연구 보존 및 생태 관광의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지경학적 특징은 대륙과 해양으로 연결된 반도라는 점이다. 앞으로 20~21세기의 부산과 인천 사례를 넘어선 새로운 상상이 실현될 수 있다. 남북 간에도 해상 연결뿐만 아니라 영불 해저터널이나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의 외레순 다리처럼, 냉전 시대 땅굴의 역사를 넘어 최고 수준의 공학 기술로 남북을 연결해 유라시아로 이어지는 인프라의 구축도 가능할 것이다.
지문화적 한계를 극복한 사례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영국과 아일랜드의 차이를 넘어서며 평화를 이뤄낸 아일랜드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유교, 불교, 기독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아시아와 미국이 공존하는 한반도에서 이를 융합하고 화해시킬 수 있다면 많은 가능성이 실현될 것이다. 유럽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다시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연대했듯이 한반도에서도 이런 노력들이 결합된다면 22세기에는 냉전-분단 시대를 완전히 넘어 평화와 통합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으며, DMZ는 다시 한번 그런 변화의 상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