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역사

전시 돋보기

냉전의 유산에서 희망의 가능성으로
《바람의 길목, DMZ》

우리에게 DMZ는 꽤 익숙한 공간이지만, 막상 이곳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서울에서 불과 56km 거리에 있어 차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지만,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준비한 이번 전시 《바람의 길목, DMZ》는 지구상 유일한 냉전의 상징인 DMZ의 역사와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낸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 빚어진 여러 모순을 마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계속 넘나들며 교류했던 공간인 비무장지대를 소개한다.

최병관, 임진강 철교
최병관, 임진강 철교
박종우, 비무장지대에서 경계 중인 무장한 민정경찰

박종우, 비무장지대에서 경계 중인 무장한 민정경찰

최병관, 철책 안팎의 풀과 나무

최병관, 철책 안팎의 풀과 나무

모순이 교차하는 땅
비무장지대는 6·25전쟁 이후 또 다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만들어졌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무장하면 안 되는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총과 칼로 무장한 군인이 24시간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전협정 직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시적으로 무기 휴대를 허용했지만 남북 간 긴장이 계속되면서 무장화는 멈추지 않았다. 무장 군인에 의한 비무장지대 내 갈등이 심해지자, 감시초소는 더욱 견고해지고 전진 배치되었다. 철책은 여러 겹으로 둘러쳐졌고, 곳곳에 수많은 지뢰가 묻혔다. 이곳은 비무장지대가 아닌 중무장지대가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뢰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게 되자 새로운 생명이 싹트고 자연은 더욱 풍성해졌다. 덕분에 비무장지대는 천혜의 자연 보고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접경지대여서 겪는 슬픈 현실도 숨어 있다. 이곳에서 산책하던 동물은 지뢰를 밟아 다치기도 하고, 철책 앞에 가로막히기도 한다. 또한 군사 활동으로 인해 산불이 나고 제초제가 살포되면, 그간 자라왔던 자연은 모두 파괴되고 만다. 그런 아픔 속에서도 자연은 다시 싹을 틔운다. 이처럼 우리는 비무장지대에서 무기와 자연, 파괴와 재생이 교차하는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구와바라 시세이, 대성동 주민과 미군

구와바라 시세이, 대성동 주민과 미군

김녕만, 대화를 나누는 적십자회담 위원

김녕만, 대화를 나누는 적십자회담 위원

경계를 넘어 이어지는 땅
전쟁 이전 비무장지대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일상을 영위해 온 공간이었다. 전쟁 이후 금단의 구역이 되기 전 번성했던 역사가 있었으나, 이제 비무장지대 내 민간인의 출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 이후 정전회담에서 예외적으로 거주를 허락받은 대성동 주민들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접하고 있는 이곳 주민들은 1967년까지 참정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마을 안팎을 출입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 구와바라 시세이, 대성동 주민과 미군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돌발 상황을 대비해 마을에는 군인이 항상 순찰하고 있다. 하지만 남과 북의 긴장이 완화되면서, 비무장지대는 막힌 곳이 아니라 넘나들 수 있는 길목이 되기도 했다. 같은 말을 공유하고, 같은 역사를 기억하기에 수십 년 만에 만났어도 서로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판문점은 비무장지대의 안정적인 운영을 논의하는 장소였지만,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때부터는 남북이 교류하는 장소로 거듭났다. 교류의 한 결과로 남북 사이 끊어졌던 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이 길을 따라 북으로, 그리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냉전의 유산이다. 보이지 않는 이념의 선으로 나뉜 이 공간은 많은 모순을 낳기도 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미래를 꿈꾸고 바랄 수 있을까? 전시를 보고 비무장지대에 관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