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공유 기증

겉은 엄한 교관, 속은 따뜻한 한 남자

1965년 베트남에 파병된 어느 태권도 교관 이야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1960년대 태권도가 베트남에 발을 내딛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유물이 있다. 1965년 태권도 교관으로 베트남에 파병된 손복규(孫福奎, 1936~2019)의 기증품이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2년~1973년 베트남에 태권도 교관 547명이 파견된다. 가장 먼저 파병되어 가장 오랫동안 남베트남 전역에 배치되어 태권도를 가르치고 알린 그들. 그들의 활동을 계기로 태권도는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널리 알려지게 된다. 손복규 기증자의 태권도 관련 유물과 파월 당시 그가 쓴 편지 등을 통해 1960년대 태권도 교관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곳 월남땅 내가 사는 Hotel입니다. 처음으로 當身에게 아내라고 써 보기에 이 글을 다시 1番으로 定하겠어요. 목이 메여 말도 못하고 當身의 손을 놓은 것이 어제였군요. 아직도 本精神이 안 들은 것 같지만 범에게 물려 가도 정신을 차리라는 옛 말도 있지만 정말 떠날 땐 내 정신이 아니였나 봐요. , 사랑하는 아내에게 아침부터 슬픈 장례행렬이 Tran Hung Dao 거리를 지났어요. 아침 出勤時間이면 러시아워로서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거리에 영구차 앞엔 경찰 의장대들이 영구차 뒤엔 家族들이 따르고 그 옆과 뒤에 또 무장 경찰들이 그 뒤엔 많은 조객들이 따르드군요. 어그제 戰死한 경찰국장의 장례행렬이었어요. ,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 글이 當身의 손을 놓고 떠나서 처음 쓰는 글이군요… 이제 당신이 준 所重한 日記帳을 펼쳐 오늘 일부터 적어 보았어요. 그토록 빼 놓지 않든 日記가 當身과 같이 있으면서 담을 쌓게 되었었죠? 이제 오늘부터 하루하루 일어나는 내 생활상을 낱낱이 적어 내가 當身을 만나는 날 큰 膳物로 내 놓겠습니다.
태권도 교관으로 베트남에 파병되다

기증자 손복규는 1958년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보병 제27사단 군악대장으로 부임하여 일정 기간 동안 태권도 교육을 담당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국방체육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태권도 교육이 군의 중요한 부분으로 떠오르던 때다. 기증자는 1962년 3월부터 6월까지 DMZ 요원 교육을 실시해 150명의 각대교관요원을 양성하였고, 이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1965년 공로표창장을 받았다. 그리고 1965년 주월 한국군 사령부 태권도 교관단으로 베트남에 파병된다.

성공적인 작전 수행뿐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유대 강화와 국위 선양에 기여한 그는 1968년 공로표창장을, 1969년에 인헌무공훈장을 수훈했다. 1968년 9월 26일 남베트남 참모본부(Republic of Vietnam Armed Forces Headquarters)에서 손복규(Captain Son, Bok Kyu)에게 수여한 증서가 있는데, 이 또한 그가 태권도 교관으로서 임무를 다한 데 대해 감사하는 내용이다. 태권도 교관으로 양국의 친선 강화 및 국위 선양에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베트남에서 태권도는 인기가 좋았는데, 태권도를 배우겠다는 사람들에게 도복과 음식을 무상으로 지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월 당시 태권도 교관으로서 기증자의 활약상은 여러 사진을 통해서도 생생히 볼 수 있다. 이후 기증자는 태권도의 세계화에 발맞추어 1970년에는 대만에 태권도 교관으로 파견된다.

겉은 엄하지만 속은 따뜻한 남자, 타국에서 외로움을 편지로 달래다

타지에서 오랜 시간 서로 떨어져 지내야 했던 손복규·여영숙 부부. 그들은 그리움을 편지로 달랬다. 기증자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회상록(回想錄)’이란 제목을 달아 여영숙이 9권으로 편철해놓았는데 단면이 2,570장이다. 거의 매일 밤 달빛 아래에서 편지를 쓰는, 겉은 엄한 교관이지만 속은 감성적인 한 남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편지 속에는 태권도 훈련 내용, 당시의 시대 상황 등도 기록되어 있어 자료적 가치도 있다.

그리운 이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여러 표창장과 사진 등을 통해 태권도 교관으로서 기증자의 삶을 보았다면,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는 손복규라는 따뜻한 한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편지는 일기처럼 매우 사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많은 사람이 겪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또 거기에는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이 담겨 있다. 시대상이 잘 살아 있는 편지는 우리의 부모님,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겨울이 왔다. 사랑하는 이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올겨울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또 고마운 이에게 따뜻한 손 편지를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태권도 훈련 모습
1968년 받은 공로표창장과 1969년 수훈한 인헌무공훈장
손복규의 편지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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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기증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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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는 관련 인쇄물과 사진 등의 기록물, 유품, 기념품, 생활용품 등의 역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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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료 인수 내부 검토 후 자료 인수, 기증원 접수

    3 수증 심의 수증 심의 개최, 탈락 자료 반환

    4 수증 및 국가 귀속 수증 증서 발급, 자료 등록

문의문의 ┃ 02-3703-9308, 9237

글. 자료관리과 정현진 학예연구원
참고 자료. 2013~2016 기증자료집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다, 2017.
이신재, <베트남전쟁기 한국군 태권도 교관단의 파병과 역할>, 국기원태권도연구 8권 4호, 국기원, 2017.
신성민, <군 태권도 교육의 현황과 발전 방안>, 상지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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