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가는 시간

소장 자료 이야기

일제 검열의 거대한 벽에 구멍을 낸 처절한 항쟁 기록,
<중외일보(中外日報)>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통치 아래, 진실을 기록한 신문이 있었다. 국내 최초 조·석간 8면 체제를 도입하며 대중 속으로 파고든 <중외일보>는 검열관의 붉은 펜에 맞선 불굴의 저항지였다. 하얀 공백으로 남은 ‘벽지 보도’ 너머로 민족의 울분을 전하며 언론 주권을 지켜낸 선구자들의 치열한 사투와 그 숭고한 정신을 되짚어 본다.

검열 모습(1926년 12월 7일자)

검열 모습(1926년 12월 7일자)

검열 후 벽돌 보도로 발행된 모습(1926년 12월 7일자(호외))

검열 후 벽돌 보도로 발행된 모습(1926년 12월 7일자(호외))

민족의 파수꾼을 자처한 혁신적 대중지의 탄생
3·1운동 이후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이른바 ‘문화통치’라는 기만적인 정책을 내세웠다. 겉으로는 신문발행을 허가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신문지법’이라는 엄격한 법을 앞세워 보도 내용을 낱낱이 감시하고 통제하던 시기였다. 우리 민족의 언론·출판물에 대한 탄압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가혹해졌다.
이러한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출발한 <중외일보>는 단순한 정보 전달지를 넘어, 식민 권력의 감시 체계를 정면으로 들이받은 ‘저항의 목소리’였다. <중외일보>는 창간사에서 “대중의 충실한 친구이자 민족의 앞길을 밝히는 파수꾼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민족적 단결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세상에 던졌다.
1926년 11월, 이상협의 주도로 경영난을 겪던 신문사를 인수해 매일신문 형태로 창간된 <중외일보>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가장 싸고 좋은 신문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구독료를 40% 낮췄고, 국내 최초로 조·석간 8면 체제를 도입했다. 이는 신문을 일부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닌, 평범한 대중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의 동반자로 만든 혁신적인 시도였다. 신문이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한 것이다.

검열 모습(1926년 12월 18일자)

검열 모습(1926년 12월 18일자)

검열 후 발행된 모습(1926년 12월 18일자)

검열 후 발행된 모습(1926년 12월 18일자)

붉은 펜에 맞선 ‘벽돌 보도’와 미공개 사료의 발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중외일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의 ‘검열본(檢閱本)’이다. 이는 일제가 한국인의 언론을 어떻게 불법적으로 탄압하고 검열했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특히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심훈의 시 ‘거국사(去國辭)’와 시인 파인 김동환의 서사시 ‘초혼(招魂)’ 2회분 등 검열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미공개 문학작품들이 다수 확인되어, 일제 식민지배의 실상을 파악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중외일보> 지면은 일제 검열관들의 붉은 펜과 싸우며 잉크 대신 피를 찍어 쓰듯 만들어진 투쟁의 기록이었다. 안재홍과 같은 지식인들은 목숨을 건 비타협적인 논설을 실었고, 일제는 이를 막기 위해 신문 발행을 무기한 정지시키거나 기자들을 투옥하는 야만적인 탄압을 일삼았다. 일제는 불온하다고 판단한 기사에 붉은색 펜으로 마구잡이로 줄을 그었고, 해당 내용은 삭제되어 지면 위에 하얀 공백으로 남았다. 이를 이른바 ‘벽돌 보도’라 불렀는데, 이는 오히려 일제의 비겁함을 고발하는 가장 강렬한 증거가 되었다. 독자들은 신문의 하얀 빈칸을 보며 기자의 진심과 민족의 억울함을 읽어냈고, 탄압이 거세질수록 <중외일보>를 향한 지지는 더욱 뜨거워졌다.

백산 안희제의 헌신과 항일 언론 정신의 계보
경영 위기가 닥쳤을 때, 독립운동의 막후 조력자였던 백산 안희제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신문사를 살려냈다. 신문이 사라지는 것을 ‘민족의 눈과 귀를 잃는 것’과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중외일보>는 1931년 일제의 끊임없는 압박 끝에 폐간되었으나, 그 정신은 몽양 여운형이 이끈 <조선중앙일보>로 이어졌다. 특히 1936년 <조선중앙일보>가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워버린 ‘일장기 말소 사건’은 <중외일보>부터 면면히 이어진 항일 언론 정신의 정점이었다. 이처럼 <중외일보>는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진실을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우리 언론사상 가장 빛나는 저항의 기록이다.
오늘날 검열의 물리적 벽은 사라졌지만, 자본이나 알고리즘의 편향성 같은 ‘보이지 않는 검열’이 우리 앞에 존재한다.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경제적 자립을 꾀했던 이상협, 꺾이지 않는 비타협 정신을 보여준 안재홍, 그리고 민족을 위해 전 재산을 내놓았던 안희제 등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준다. 100년 전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진실이라는 주춧돌을 놓으려 했던 <중외일보>의 발자취는, 우리에게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치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