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문화 콘텐츠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 차이가 있는 만큼 일본인들은 몇몇 장면을 보며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특히 한국인의 감정표현에 의문을 가지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글 | 나리카와 아야
(프리랜서 작가, 유한회사 모모컬쳐브릿지 대표)
지난 3월 나고야예술대학교 학생 22명과 함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본래 미국으로 연수를 가던 나고야예술대학교에서 한국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엔저 현상으로 미국 여행비가 비싸진 것도 있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여행지가 바뀐 이유 중 하나다.
나는 5층 역사관의 해설 통역을 담당했다. 역사관은 한국 근현대사를 소개하는 상설 전시관인데, 학생들은 그다음 날 파주 임진각에 갈 일정이 있어서 박물관에서 미리 6·25전쟁과 남북분단을 배우고자 했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진 건 한류 전시 코너에 들어섰을 때다. K팝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한국어를 배웠다는 학생들은 물론 대다수가 깊은 관심을 보였다. ‘대중문화로 보는 외환위기’라는 코너에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나 드라마 <미생>의 포스터도 있었다. 외환위기 후의 취업난이나 비정규직의 증가 등의 전시 해설이 이어졌는데, 버블 붕괴 후 경제 침체기에 태어나고 자란 일본 학생들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9년 동안 『아사히신문』 기자로 활동한 다음 2017년에 퇴사하고 한국에 왔다. 통역도 가끔 하지만 본업은 일본 독자를 대상으로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다. 작년에는 『현지발 한국 영화・드라마의 왜? (現地発 韓国映画・ドラマのなぜ?)』라는 책을 일본에서 출간했다. 일본에서는 2020년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의 히트 직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급증했다. 이를 제4차 한류 붐이라 부른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 차이가 있는 만큼 일본인들은 몇몇 장면을 보며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특히 한국인의 감정 표현에 의문을 가지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열받거나 충격을 받으면 ‘뒷골이 당긴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 감각을 잘 모른다. 그 밖에도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는 유독 화를 내는 장면이 많고 얼굴에 물 뿌리기, 김치 싸대기, 머리 잡고 싸우기 등 그 표현도 다양하다. 일본인들에게는 낯선 표현들이다.
최근 일본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는 일본인 여성 유리와 한국인 유학생 태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데, 한일 남녀가 주인공인 만큼 양국의 문화 차이가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쿄슈쿠데스(恐縮です)’라는 일본어의 뜻을 몰랐던 태오가 선배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선배가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뜻이야”라고 대답하자 태오는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둘 중에 뭐죠?”라고 되묻는다. 사실 일본에서는 ‘쿄슈쿠데스’보다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을 훨씬 많이 쓰는데 이 또한 ‘미안하다’와 ‘고맙다’ 두 가지 뜻을 모두 담고 있다. 선물을 받고 “스미마셍”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고맙다는 뜻이지만, 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쓰게 해서 미안하다는 뜻도 함께 포함돼 있다. 이는 상대방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일본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나를 위해 뭔가 해준 사람한테 습관적으로 “미안해요”라고 했다. 그러면 한국인은 대부분 “뭐가 미안해요?”라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보다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고마운 일은 고마운 일, 미안한 일은 미안한 일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일본 사람에게는 낯선 부분이다. 엄마와 아들이 통화하면서 “아들, 사랑해” “엄마, 사랑해”라고 서로 말하는 장면은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뜻의 일본어 ‘아이시테루(愛してる)’라는 말은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도 잘 쓰지 않는다. 나 또한 말로 표현하는 것도 듣는 것도 어색하다. 그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진심으로 느껴진다.
물론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감정 표현은 실제 생활보다 과장되게 표현된 경우가 많다. 이는 관객·시청자에게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강렬한 감정 표현을 바탕으로 한 흡입력과 속도감이 한국 문화 콘텐츠의 인기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일본 작품들에서 화가 났을 때 주로 쓰이는 표현 중 하나가 ‘침묵’인데 한국 사람들에게 그정도 감정 표현은 답답해서 성에 안 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