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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를 알리는 사람들

이승철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
서주희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겸임교수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신청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한지, 전통 지식과 기술(가칭)’이 선정됐다. 오는 2026년 최종 등재 여부 결정을 앞두고 ‘한지’를 알리는 전시회가 지난해 2월부터 로마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를 거쳐 헝가리 등 각국의 한국문화원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이 순회전의 중심에는 국내 최초로 한지 이론을 정립하고 오랜 시간 한지를 연구해, 다양한 한지 부조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이승철 작가(동덕여대 회화과 교수)와 오랜 시간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데 힘써 온 기획자 서주희(동덕여대 공연예술대학 겸임교수)의 노력이 함께 했다.
세계무대에서 한지를 비롯한 한국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이들을 만나 걸어온 발자취와 해외 순회전의 이모저모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리 | 편집실

  • 서주희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겸임교수
  • 서주희 교수 주 헝가리 한국문화원 전시물 설치 모습
    • Q
    • 우리 주변 많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재료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승철 작가님은 특별히 한지를 작업의 소재로 삼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승철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좋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지를 연구 하게 되었고, 한지를 주제로 학위논문도 쓰고, 한지와 관련한 다양한 사료들을 찾고 한지 관련 유물들을 수집하러 오랜 시간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길 안내 하는 인터넷 지도나 네비게이션이 없던 때여서 두꺼운 지도책을 갖고 다녔죠. 전통 한지의 특징은 붓글씨를 쓸 때 알 수 있는데요, 절대 먹물이 번지지 않고 붓끝의 결이 그대로 잘 나타납니다. 그러나 먹물이 잘 번지는 화선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한지의 특징이 익숙하지 않아서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대중들에게 한지를 더 널리 알리고 한지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싶어 제가 직접 한지 공장을 운영 한 적도 있어요. 간송 미술관 상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 30여년 넘게 한지와 관련한 옛 유물을 수집했는데요, 모두 헤아려 보니 8,500여점 정도 되더라고요. 지금으로 부터 20년 전, 저의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 있는 원주시역사박물관에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모두 기증했습니다.

    • Q
    • 지난해 2월 이탈리아 로마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이승철 작가의 유럽순회전의 기획을 맡아오셨는데요, 두 분의 특별한 인연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는지 궁금합니다.

    서주희 저는 아나운서로 방송에 처음 입문했어요. 현재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병행하며 KBS국제방송에서 해외에 우리문화를 알리는 19년차 방송인입니다. 이승철 작가님을 뵙게 된 때는 2010년 한국정책방송(KTV) <장인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전국 각지를 돌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잇는 장인(匠人)들을 만나게 되면서 우리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반평생을 전통문화를 잇는다는 일념 하나로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장인들의 작업 모습과 그분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책을 집필했어요. 그러면서 국내의 한지 장인을 찾게 되었고. 수소문하던 끝에 이승철 작가님이 ‘국내 한지 전문가’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뵙게 된 것이 인연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이승철 작가님으로부터 한국의 한지 장인들 그리고 한지와 관련한 고서적이나 유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한지만이 갖고 있는 우수성과 독특한 물성을 알게 되면서 전통문화를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한지를 세계시장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마음이 동하여 해외 순회전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 이승철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
  • 주헝가리 한국문화원 한지 자연염색 워크샵
    • Q
    • 각 나라별로 한지 부조 작품을 다르게 선보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한지 부조 작품을 선보여 오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승철 한지는 특히 유럽시장에서 문화재 복원용 종이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저 또한 한지가 문화재 복원용 종이로 우수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ICPAL)에서 주최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해 한지연구자로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지는 그 재료의 변형성이 뛰어난 물성을 갖고 있어 평면과 입체의 조형물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재료이자 다양한 미술표현을 할 수 있는, 즉 외연확장을 하는데 좋은 재료입니다. 그런 한지의 특성을 이용해 다양한 한지 부조 작품을 형상화 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특히 한지 부조 작품을 형상화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과 어울리는 색을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자연의 소재인 한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은 한국의 자연색이라 생각하고 자연염료에서 추출한 300여 가지의 색을 한지에 담아내고자 노력했어요.

    순회전의 시발점이었던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한지부조로 만든 한국의 ‘달 항아리’와 ‘문수보살상’, ‘부처상’ 그리고 한국인의 생활공간에 늘 함께했던 전통 가구인 ‘반닫이’ 등 한국인의 삶과 정체성을 다양한 한지 조형물로 표현한 작품을 전시 했습니다. 또, 로마에 어울리는 성모마리아상과 예수상 한지 조형물을 만들어 같이 전시했는데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기존의 달 항아리와 문수보살상, 부처상, 반닫이 등의 작품들과 더불어 비엔나 슈테판 대성당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을 한지 조형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각 나라별 종교와 문화를 한지라는 물성을 통해 보여주고자 노력한 결과물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주 헝가리 한국문화원의 전시에서는 기존의 작품들과 더불어 1,000개의 부처님과 함께 300여 가지의 한국의 색을 담은 천을 설치한 ‘거울의 방’을 통해 무한반복으로 한국의 자연색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선보이고 있습니다.

    • Q
    • 지난해 3월에는 뉴욕 최대의 아시아 미술행사인 ‘뉴욕 아시아 위크’에 맞춰 17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과 일본이 아닌 제3의 서양권 나라에서 기록되고 출판된 한국 관련 고서 120여 권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하는 전시회 ‘더 원더 언바운드(The Wonder Unbound)’ 전시회를 유럽순회전과 함께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지 뿐 아니라, 한국관련고서적에도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승철 오랜 시간 한지를 연구하고 자연스레 한지 유물을 수집하게 되면서 오래된 고서적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미국에서 종이예술과 수공예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다드헌터(Dard Hunter, 1883-1966)라는 학자가 1930년경 우리나라를 방문해 한지에 관해 조사한 책이 있어요. 그 책을 찾으려고 전 세계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100년 또는 200년 전, 해외의 여러 학자들이 한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들을 만나게 되었고 수집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15개 언어로 쓰여진 고서적들을 모아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전시하게 되었는데,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전쟁참전용사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전시장에 오셨어요.

    한 나라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구술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와 함께 그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객관화 된 자료들이라 생각해요.

    그런 자료들을 토대로 우리의 역사를 다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고서적들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 주헝가리 한국문화원에 성악가 조수미가 방문했다.
    • Q
    • 202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무엇보다 ‘코리아 한지(KOREA HANJI)’ 라는 이름을 내걸고 등재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서주희 저는 이번 유럽순회전을 기획하기 이 전에 프랑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등 유럽시장에서 한지와 관련한 국제회의 현장을 취재하고 방송을 통해 전하면서 해외시장에서 한국의 한지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었는데요. 경험한 바에 의하면, 국가브랜드인 ‘코리아 한지(KOREA HANJI)’가 아닌, 국내의 여러 지역(가평, 원주, 전주, 문경, 안동, 의령 등) 으로 흩어져 있는 각 지역의 지역 색이 부각된 한지가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앞두고 우리나라가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유네스코의 협약내용이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에 관해 자세히 살피고 그것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령, 유네스코가 강조하고 있는 인권과 평화 등의 가치와 함께 무형문화유산 협약에서 중시하는 관련 공동체와 집단, 개인들이 자유롭고 폭넓게 등재 신청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지로 무엇이 가능한가를 세계에 알리는 작업도 매우 중요합니다. 다양한 한지 부조 작품으로 해외순회전을 진행하고 있는 이승철 작가의 전시회도 그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는 특정 지역의 집단의 이익이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도되는 것이 아닌 보편적인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한지에 대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의 등재가 늦어진 연유는 각 지역별로 분산되어 있는 한지산업에 대한 국가기관의 교통정리가 부족해 무형문화유산 협약에서 중시하고 있는 공동체 집단의 통일성이 보여 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다시 말해, 그동안 유럽시장에서 한국의 한지는 특정 지역의 지역색이 부각되어 통일성이 엿보이지 않았기에 등재가 늦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화합해 ‘코리아 한지(KOREA HANJI)’ 브랜드를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고요.

    • Q
    • 끝으로 향후계획과 함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이승철 문화는 만드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쓰고 즐기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발전할 수 있어요. 그래야 여러 세대에 걸쳐 문화가 전해지며 발전할 수 있는 것이죠. 한지도 마찬가지예요.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전시에 온 분들에게 작품도 만져보게 하고 자연 염색한 천이나 보자기도 만져보라고 이야기해요. 시각과 촉각을 함께 경험해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문화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한 척도지만 그 문화가 어떻게 이어져서 현재 어떤 모습으로 재현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한지를 현대미학으로 재해석한 한지 부조작품들을 유럽 순회전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중이고요. 예로부터 우리 한국인의 삶을 이야기 할 때, “종이 위에서 태어나 평생을 벽지와 장판지로 둘러싸인 종이 속에 살다가 결국은 종이에 싸여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라고 이야기 하는데요. 다시 말해, 자연에서 와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순환미학을 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한지’라는 이야기 입니다. 앞으로 순환미학이 담긴 한지를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서주희 현재, 주 헝가리 한국문화원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 ‘나는 한국화가다:이승철의 한지, 자연색 설치전’ 종료 후, 9월에는 LA한국문화원에서 전시회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럽 순회전을 진행하면서 각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으로부터 한국의 한지와 자연염색 관련해 워크샵을 진행하자는 제의를 받아 현재 논의 중에 있습니다. 저희가 순회전을 진행해오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워크샵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반응이 뜨거웠거든요.

    현지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몸소 체험하게 하는 일이야 말로 한국의 문화를 좀 더 가까이 느끼게 할 수 있는 좋은 마중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다가오는 미래는 분명 희소성이 높은 것을 요구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나’ 라는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유일한 방법은 아마도 각자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내세우는 일이 될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좀 더 우리 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바라봐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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