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나들이할까요?

광부라는 이름의그들이 살았던 흔적

한반도 남부에서 최초로 석탄이 발견된 곳. 바로 태백이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태백의 탄광들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폐광됐다.
1989년부터 2009년까지 태백에서 폐광된 탄광만 44개. 마지막 탄광도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태백으로 향했다.
번영의 기억과 삶의 애환이 묻힌 탄광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글 | 사진 김기쁨(여행기록가)

  • 석탄과 함께한
    태백의 이야기
    태백석탄박물관

  • 태백석탄박물관

    1960~80년대 우리나라의 주된 에너지는 석탄이었다. 가정의 주요 연료 도석탄으로 만든 연탄이 주로 쓰였다. 이후 두 차례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석유보다 석탄을 우선시하면서 석탄산업은 호황을 맞았다. 태백, 정선, 삼척 등 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자리가 넘쳤고 연간 석탄 생산량은 1,800만톤에 달했다. 국가 경제는 계속 성장했고 국민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청정 연료 수요가 커졌다. 그렇게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됐고 탄광은 문을 닫았다. 1988년에 167개였던 강원도 탄광 중 남은 건 세 곳뿐. 그중 태백 장성광업소는 올해, 삼척 도계 광업소는 내년에 폐광 예정이다.

    석탄산업의 희로애락, 그 중심에는 탄광 노동자가 있었다. 산업 역군이라 불리던 광부들은 ‘검은 황금’을 캐러 어둠 속으로 향했고, 사고와 질병의 위험이 도사리는 막장에 일생을 바쳤다. 그 역사가 태백석탄박물관에 고스란히 담겼다. 석탄산업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1997년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개관한 동양 최대 규모의 석탄박물관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근현대사 박물관 협력망이기도 하다.

    7개의 전시실은 석탄의 부흥과 부침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지질의 역사를 시작으로 석탄을 발견·채굴·이용하는 기술과 탄광 개발의 역사 그리고 광부의 삶까지 대장정의 전시가 펼쳐졌다. 지질, 역사, 안전, 추억을 아우르는 전시는 다채로웠고 소장 자료도 방대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증기기관 그리고 야외에서 실내까지 이어지는 7,000여점의 광물과 화석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색색깔의 화약과 생소한 장비들에 호기심이 일었고, 아빠의 안전을 기원하는 가족의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연탄 틀과 난방 기구, 갱의 입구와 광차, 지금은 사라진 광업소 간판들은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향수였다.

    상설전시 중 체험갱도관에는 광부들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제법 진짜 같은 모형 앞에 서면 그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광부의 노고와 애환이 담긴 한편의 드라마다. 벽면 가득 영화처럼 펼쳐지는 참여형 실감 콘텐츠도 인상적이다. 이른 새벽 시작되는 광부의 하루를 함께 살아보는 시간이다.

    전시물 중 일부는 곧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문경시, 보령시, 태백시가 함께 주최하는 ‘지역과 함께하는 <석탄시대>’를 통해서다. 석탄의 역사와 의미, 탄광 노동자의 삶, 각 지역 박물관의 대표 자료를 한번에 만날 좋은 기회다. 기획전은 4월 26일부터 9월 22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 탄광에 남은애환과
    영광의 역사
    태백체험공원

  • 태백체험공원 광부 체험

    태백석탄박물관에서 차로 5분만 가면 태백체험공원에 닿을 수 있다. 이곳은 원래 탄광이었다. 1954년부터 1993년 까지 운영된 함태탄광을 리모델링해 2006년에 문을 열었다. 직원 수 2,200 여 명에 달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과거의 흔적뿐이다. 실제로 씻고, 쉬고, 일하던 공간이 곧 전시실이라서 광부의 일터와 일상을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하다.

    종류별로 쌓아둔 전시물은 이곳에서 일하던 이들의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설명이 없다. 검은 때 잔뜩 묻은 목욕 용품에서 탄광 노동자들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산업 역군이라는 칭송 속에 광부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전시실 가장 안쪽에는 ‘수갱(지각의 내부에 수직으로 들어가는 갱도) 입구’가 있다. 태백체험공원의 가장 큰 볼거리, 함태수갱으로 가는 길이다. 광차와 선로를 따라 들어가면 수직갱도 케이지가 나온다. 심도 730m의 수갱을 오르내리던 시설로, 공사 기간만 9년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일부일 뿐인데도 그 크기에 압도당했다. 지금은 낡고 녹슬었지만 번성했던 탄광의 과거를 증명하듯 여전히 웅장하다. 태백체험공원은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장비 착용 체험 공간에 준비된 옷과 헬멧, 신발로 일일 광부가 돼보자. 1층 체험장에서 연탄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광부의 하루를 체험하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 그 시절, 광부
    가족의 흔적
    철암탄광역사촌

  • 철암탄광역사촌 전경

    철암역 일대에는 유독 오래된 가게들이 많다. 탄광의 흔적을 찾는 여행의 종착지, 철암탄광역사촌이다. 관광안내소에 들어가 역사촌이 어디냐고 물으니 직원이 답했다.

    “페리카나부터 농협까지예요.”

    철암탄광역사촌은 그야말로 촌(村)이다. 1960~70년대를 간직한 탄광촌. 과거 광부와 가족들의 생활상을 담은 역사 마을로, 오래된 가게 중 몇 곳은 전시실로 꾸며졌다. 페리카나에는 치킨 대신 추억이 있었고, 농협에는 은행 대신 파독 광부의 기록이 있었다. 식당은 연탄 만들기 체험장이었고, 옛 골목과 부엌이 재현된 호남슈퍼는 또 하나의 동네였다.

    전시와 영상, 설치미술과 체험 등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마을 뒤편으로 향했다. 까치발 건물을 보기 위해서다.

    건물 기둥이 까치발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마을의 특징과 석탄산업의 호황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던 시대가 반영된 건물이다. 조금 더 걸어 삼방동 전망대에 올랐다. 까치발 건물 뒤로 여전히 운영 중인 선탄장이 보였다. 한눈에 들어오는 이 작은 마을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석탄과 함께 살아온 태백 사람들의 일대기였다.

    “남겨야 하나. 부수어야 하나 논쟁하는 사이 한국 근현대사의 유구들이 무수히 사라져갔다.” 철암탄광역사촌 입구에 이런 문구가 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주민들의 기억과 탄광의 역사를 간직하려는 태백의 마음이 아닐까. 그 마음 덕분에 태백에는 여전히 탄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추전코스
  • [자차 이용 시]

    태백석탄박물관-태백체험공원-철암탄광역사촌 코스를 추천한다. 석탄 산업의 역사-광부의 일터-생활과 추억을 순서대로 만나보자. 지점 간 이동 시간은 5분에서 20분 내외이며, 주차장이 있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 [기차 이용 시]

    동해산타열차나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고 철암역에 내리면 바로 철암탄광역사촌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삼방동 전망대에도 올라가 보자. 철암 일대와 선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태백역에서 내린다면 태백 시티투어 혹은 관광택시 이용을 추천한다. 태백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예약 가능하다.

태백 탄광 여행을 더 깊이 즐기는 법

○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국가등록문화재) 1935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무연탄 선탄시설로 현재도 운영 중이다. 태백의 마지막 탄광인 장성광업소가 6월에 폐광되면 이곳 역시 문을 닫는다. 그전에 ‘철암역두 선탄시설 탐방’를 떠나보자. 문화해설사와 함께 선탄장과 철암탄광역사촌 일대를 돌아보는 도보 투어다. 5월까지 주말 및 공휴일 1일 3회 운영되며 사전예약은 태백 문화관광 홈페이지(tour.taebaek.go.kr) 및 현장예약은 철암 관광 안내소(033-550-2879)에서 가능하다.

○ 철두철미 투어(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하는 철암 도보투어)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일 3회 운영한다. 예약방법은 위와 동일하다.

○ 생태산업유산길 탄탄대로 석탄을 운반하던 갱도가 탄광문화유산길이 됐다. 석탄 이야기로 채워진 탄탄(炭炭)한 길, 탄탄대로다. 철암역에서 365세이프타운까지 이어지는 철암구간(3.39km)에는 석탄과 관련된 조형물과 터널이 있다. 태백 소원지(태백산로 4767)에서 시작하는 소도구간(4km)은 태백체험공원을 지나 상장동벽화마을까지 이어진다. 비교적 시원한 태백의 여름날에 걷기 좋다는 해설사의 귀띔이 있었다. 날이 좋다면 가볍게 걸어보자.

김기쁨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연세대학교 행정 대학원에서 정책학을 전공했다. 정책·여행·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홍보 기획자로 일했다. 현재는 여행하며 글 쓰고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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