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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결기에숨결을 불어넣다

이상원 작가, 신혜영 이상원 미술관 실장 인터뷰

이상원, 50년 예술의 여정 전시 전경 Ⓒ이상원 미술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초상화는 1970년에 이상원 작가가 그린 작품이다.
다양한 작품 세계를 펼쳐온 이상원 작가에게 이 작품 역시 큰 의미일 터.
올해 이상원 미술관에서 안중근 의사 공식 영정 초상화를 전시하게 되면서 이를 기념해 광복절에 음악회도 열었다.
이상원 작가와 이를 기획한 신혜영 이상원 미술관 실장을 만나본다.

정리 | 편집실

  • 이상원 작가
  • 전시 중인 안중근 의사 영정 앞 이상원 작가 Ⓒ이상원 미술관
    • Q
    • 안중근 의사 공식 영정 초상화를 그리시게 된 계기와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1960년대부터 상업초상화를 제작하는 일을 했습니다. 맨 처음에는 영화간판에서 시작했었죠. 그림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며 내 나름대로 연습해왔었습니다. 그 당시 지금의 용산 삼각지 부근에 초상화 그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곳에서 재료도 구하고 기존 초상화 그림들을 보면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미군들로부터 주문을 받았고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주문이 너무 많아져서 조수며 제자며 어느새 수 십명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화, 수묵화가 좋았어요. 주문받은 초상화 작업을 마치고 지필묵으로 수묵화도 연습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찾아왔어요. 이은상 선생님의 비서였고 초상화 의뢰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간 곳에 이은상 선생님이 계셨어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설립을 하면서 영정 제작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었죠. 이은상 선생님이 우연히 제가 그린 미8군 장교 초상화를 보셨다며 제게 안중근 의사의 영정 작업을 해 보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부담되기도 하고, 또 욕심이 나기도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저명한 작가들이 그 작업을 진행했지만 뭐가 문제인지 통과가 되지 않고 있었죠.

    노산(鷺山) 이은상(1903~1982) 선생님은 큰 학자셨는데 문교부 장관도 하신 분이었죠. 정말 대단한 분이었어요. 이은상 선생님이나 다른 추진위원들, 유족들과 면담도 하고 작품의 방향에 대해 여러 가지 많은 얘기를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제가 안중근 의사 영정을 제작하고 그 작품이 정부 공인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는 일은 정말 파격적인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독학이었고 아무런 경력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 Q
    • 안중근 의사 공식 영정 초상화를 그릴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안중근 의사 공식 영정 초상화가 작가님께 가진 의미가 무엇일까요?

    안중근 의사 영정 제작 당시 이은상 선생님과 추진위원들의 강조점은 ‘안중근 의사의 겉모습을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수 있었던 안의사의 강한 결기가 드러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어요. 안중근 의사와 같은 민족의 영웅을 하나의 이미지로 나타내야하는데… 정말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기존의 상업초상화는 화려한 기교로 사람들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작업인데, 이번 작업은 전혀 다른 정신세계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더 단순하게 작업했습니다. 이목구비의 선, 끊어진 손가락 등은 수십 차례 수정했었던 것 같아요. 안중근 의사 목 주변에 하얗게 세운 칼라와 검은 신부복 복장은 유족들의 주문에 따른 것이에요.

    안중근 의사 영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기존의 상업초상화 작업을 넘어서 작품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심도 깊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심혈을 기울인 영정 작업이 공인 된 것에 대해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영정 제작 이후부터 더 큰 고민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영정 제작 당시 이은상 선생님과
    추진위원들의 강조점은 ‘안중근 의사의 겉모습을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수 있었던 안의사의 강한 결기가 드러나는 것이다’
    라고 강조했어요. 안중근 의사와 같은 민족의 영웅을
    하나의 이미지로 나타내야하는데… 정말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 Q
    • 안중근 의사 공식 영정 초상화를 그린 후 이상원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전환점을 맞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이전과 이후의 작품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이상원 작가 전시도 한번 안 해 본 저였지만 역사적인 곳에 작품을 걸 수 있게 되면서 인연을 맺은 이은상 선생님과 작고하실 때까지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나갔습니다. 이은상 선생님은 다양한 분들을 만나셨어요. 문인, 예술가, 행정가, 사업가 등등. 선생님 댁에 자주 갔었는데 거기서 선생님께서 다른 사람들과 하는 말씀을 듣기도 하면서 상당한 무게감과 학식과 통찰력을 느꼈죠. 그런 선생님께서 제게 ‘이제 상업미술은 그만하고 이상원만의 예술을 해보라’고 제안하셨어요. 제가 선뜻 용기를 못 내자 수차례 말씀하셨는데 한번은 ‘지금 네가 그리는 그림은 진짜 그림이 아니다. 너는 화가라고 할 수 없다’며 저로서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자극을 주시기도 했어요. 깊이 고민하다가 마흔이 될 무렵 조수들과 제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방을 정리했습니다. 수묵화를 그리는 것을 계속하는데 왠지 이것도 제 그림이 아닌 것 같았어요. 간단한 스케치 재료와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떠났어요. 당시 아내와 아이들도 있었는데, 아내가 많이 지지해 주어서 가능했어요. 이은상 선생님은 제게 <후암예술세계(厚巖藝術世界)>라는 친필 유묵을 선물로 주셨어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종암동 자택에 마지막으로 찾아뵈었을 때도 생각나네요. 그림을 그리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요.

  • 신혜영 실장
    Ⓒ이상원 미술관
  • 이상원, 50년 예술의 여정 전시 전경 Ⓒ이상원 미술관
    • Q
    • 이번에 안중근 의사 공식 영정 초상화 원본을 전시하시고 관련 음악회도 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와 행사를 기획하신 계기가 있으실까요?

    신혜영 실장 이상원 작가님은 1970년에 안중근 의사 공인 영정을 제작하였는데, 미술관 개관 준비를 하면서 작품을 직접 보고, 자료로 남기고 싶어서 2014년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의뢰하여 작품촬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수장고에 보관 되어있던 작품 원본을 직접 보고 언젠가 이 작품을 작가님의 순수미술 작품들과 함께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술관 개관 후 10년이 되어 다시금 작가님의 작품 전반을 소개하는 전시를 마련하면서 안중근 의사 영정 작품을 전시하고자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요청하였고 수락해주셨습니다. 이상원 작가님은 고향인 춘천에 미술관이 탄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셨고, 본인의 모든 작품을 미술관을 통해 춘천이 보유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춘천에 안중근 의사 영정을 전시하는 특별한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더 의미 있게 공유하기 위해 광복 79주년 기념으로 행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느낀 것은 역사적인 의미 또는 사회적인 의미, 더 나아가 인문학적인 의미를 갖는 그 어떤 내용이나 정신이라도 그것이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어 사람들과 나눌 때 그 의미의 본질에 훨씬 더 가깝고 풍부하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술적 경험은 선언적이고 당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가진 기억과 감성으로 개개인에게 남는 것 같습니다.

    • Q
    •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과 함께 역사공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이상원 작가 미술관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림을 보는 것도 좋고, 여기 미술관에 앉아서 뒤에 보이는 화악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계곡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걸 느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고향인 강원도 춘천에 미술관을 만들게 되었는데. 고향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신혜영 실장 예술이 우리 삶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까이 경험하면서 그로부터 힘과 영감을 얻는 것은 특수한 계층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 많습니다. 예술 경험은 특별하고 가치 있는 것이지만 어렵고 힘들게 성취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많은 예술 공간들 속에서 저희 이상원 미술관은 편안하고 가뿐하게 예술을 경험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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