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안중근의사숭모회, 안중근의사기념관과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기념 특별전을 개최한다.
특별전은 10월 24일(목)부터 2025년 3월 31일(월)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글 | 유정환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안중근의사숭모회, 안중근의사기념관과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기념 특별전 <안중근 書>를 개최합니다. 특별전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일(1909.10.26.)과 순국일(1910.3.26.)에 맞춰, 10월 24일부터 2025년 3월 31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됩니다.
특별전은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 유묵(遺墨)에 초점을 맞추어 준비했습니다. 안중근 의사 유묵은 사형이 결정된 1910년 2월부터 사형이 집행된 3월까지 쓰여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안중근의 글씨는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힘 있고 기개가 넘쳐 한·중·일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에는 독립에 대한 의지, 동양평화 사상, 가치관 등 그의 정신이 녹아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에 소개되는 안중근의 글씨를 통해 그의 삶과 사상, 기개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동안 국내·외에 흩어져 있어 쉽게 만나볼 수 없었던 19필의 안중근 의사 유묵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특히 14년 만에 일본 류코쿠대학에 소장된 4필의 유묵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어 보다 뜻깊은 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獨立(독립)> 유묵부터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부도)>1), <敏而好學 不恥下問(민이호학 불치하문)>2), <不仁者 不可以久處約(불인자 불가이구처약)>3) 4필의 유묵이 전시됩니다.
국내에 남아 있는 유묵 중에서는 15필의 유묵이 전시됩니다.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4),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5)과 같은 독립운동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유묵부터 <東洋大勢思杳玄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련)>6)과 같이 동양평화 사상이 녹아 있는 유묵,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장부수사심여철 의사림위기사운)>7),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8)와 같이 안 의사의 기개와 가치관이 녹아 있는 유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특별전은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를 중심으로 안 의사의 어린 시절 이름 안응칠(安應七)을 따서 일곱(七)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독립운동 명문가인 안중근 가문과 안중근 의사의 어린시절, 그의 일생을 바꾼 천주교 입교와 활동, 안 의사의 애국계몽활동, 연해주 의병활동, 동의단지회·우덕순·조도선·유동하 등 동지와의 비밀결사,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동양평화론, 뤼순감옥에서의 법정투쟁과 안 의사의 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라고 하면 하얼빈 의거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사상가이자 문필가였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성장해간 의사(義士)였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준비한 이번 전시가 안중근 의사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하고 그의 삶, 사상,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안중근 의사의 숨결을 찾아,독립과 평화의 길을 가다
안중근 의사가 활동했던 해외 유적지를 살펴본다. 하얼빈에는 안중근 의사의 열하루의 흔적이 있다.
중국의 산둥반도, 상하이, 하얼빈을 비롯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안중근 의사의흔적을 만날 수 있다.
하얼빈 의거를 통한 대한 독립의 길은 정의의 총이요, 뤼순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평화의 붓이라고 할 수 있다.
글 | 김월배 하얼빈이공대학 교수
하얼빈(哈爾賓), 만주어로 ‘그물을 말리는 작은 어촌’ 이라 불린다. 한국인이 가장 가고 싶은 곳이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 열하루(1909년 10월 22일~1909년 11월 1일)’의 흔적이 있는 지역이다. 하얼빈 의거의 지휘부이자 장부가를 저술하며, 의거 중심의 역할을 한 김성백의 집(하얼빈 도리구 삼림가), 안중근 의사가 유언으로 임시 매장을 희망하시고 의거를 다짐하신 하얼빈 공원(현 조린공원), 안중근 조력자 조도선을 소개받은 동흥학교(현 도리중심소학교), 대한 독립의 의지를 온 세계에 알린 하얼빈 의거지 하얼빈역(현 하얼빈역 남광장), 하얼빈 의거후 수감되어 계셨던 하얼빈 일본영사관(현 화원소학교) 등 이외 몇 가지 안중근 의사 유적지가 있다.
하얼빈공원(현 조린공원) 남문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안중근 의사가 유묵비가 있다. 1910년 3월 11일, 안중근 의사는 종부 성사를 위해 빌렘 신부와 같이 온 동생 안정근과 안공근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들랑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이 되면, 고국으로 반장9)해 다오” 하얼빈 공원의 현재 명칭은 조린 공원이다. 1906년에 만들어졌는데 1963년 중국 항일 운동가 이조린(李兆麟, 1910~1946) 장군이 안장되었기 때문에 헤이롱장성에서 이름을 따서 조린공원으로 개명했다. 조린 공원에 안중근 의사의 뜻과 정신이 담긴 유묵비가 있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 도착한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3일 오 전 이 발 소 에 서 우 덕 순 ( 禹德淳, 1880~1950), 류동하(劉東夏, 1892~1918)와 함께 이발을 하고 하얼빈 공원 남문 근처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 날에 안중근 의사는 동지 우덕순과 함께 하얼빈 공원에서 산책하면서 계획을 점검하였다. 그날 저녁에 안중근 의사는 장부가(丈夫歌)를 지었다. 이곳에 2007년 중국 정부는 안내판에 ‘靑草塘(청초당)’이라는 글자와 안중근 의사 사진을 전시했다. 안내판에서부터 왼쪽으로 약1~2분 정도 걸어가면 연못과 정자로 꾸며 놓은 곳에 바로 대한 독립운동의 영웅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늠름하고 의연한 자세로 공원의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기념비에는 ‘靑草塘’이라는 안중근 의사 유묵과 안중근 의사이름 ‘安重根’, 그리고 단지 동맹을 했던 왼손 손도장이 새겨져 있다.
하얼빈역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대한제국 침략의 선봉에 섰던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한 곳이다. 하얼빈 의거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작전지역 내에 들어온 적장을 처단한 것으로 동양평화의 파괴자에 대항하여 인간의 자유를 지키려는 정의의 응징이었다. 또한 한국침략을 획책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일제의 침략을 폭로하고 규탄함으로써 민족독립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대한국인의 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안중근 의사기념관은 2006년 7월 1일 조선민족예술관에 조성되어, 2014년 1월 19일 하얼빈기차역에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그 후 하얼빈역 재건공사로 조선민족예술관에 이전하였다가 2019년 3월 30일 하얼빈역 남광장에 재개관하였다. 안중근 의사 출생 활동 순국 그리고 평가 등에 대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 기념관에 설치된 통유리를 통해 하얼빈 의거 현장을 살펴볼 수 있다. 기념관 면적은 488㎡, 입구에 안중근 동상은 한반도를 밟고, 원동보를 손에 들고 있다. 하얼빈 의거에 맞추어 9시 30분을 알리는 시계가 고정되어 있다. 동상 부조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한글 자모음 형태로 안중근 의사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뤼순은 요동반도 끝에 위치한다. 러시아와 일본의 침략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른 중국 근대사의 상처가 즐비하다. 중국근대사만이 아닌 동아시아의 역사를 모두 담고 있는 현장이다.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근대사의 역사에 슬픔과 야욕, 역사 현장의 교과서이다.
뤼순에는 하얼빈 의거의 정당성을 설파한 재판정인 관동법원, <안응칠역사>와 미완성 <동양평화론>을 쓰며 144일 수감된 관동도독부 감옥서(현 뤼순일아감옥구지 박물관), 2008년 한·중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지인 원보산지역(현 Hill-one 아파트) 등이 있다.
관동도독부(현 뤼순일아감옥구지 박물관) 감옥에 안중근 의사, 신채호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었다. 144일 동안 안중근 의사는 약 200여폭의 유묵, <안응칠역사>와 미완성 <동양평화론>을 쓰고 순국했다. 이 감옥은 제국주의 열강에서 설립한 가장 큰 국제적 감옥이다. 거대한 규모와 완전한 보존 상태, 풍부한 역사적 의미로 보면 세계에서도 흔한 것이 아니다. 1970년 7월 6일 박물관으로 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