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는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한국 현대사 관련 기록영상을 모아 누구나 시청할 수 있도록 공개한 ‘공공 영상 아카이브’의 일종이다. 해외에서는 공공 영상 아카이브를 어떻게 구축해 운영하고 있을까? KBS 현대사 영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김형석 PD의 글을 통해 공공 영상 아카이브의 주요 해외 사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글 김형석 전 KBS 현대사 영상프로젝트팀장
2023년 3월부터 공개된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KBS가 협력해 만든 현대사 기록영상 아카이브 플랫폼이다. 이러한 공공 영상 아카이브의 목적은 보존 가치가 높은 영상 콘텐츠를 수집해 이를 역사적·문화적 유산으로 영구 보존하는 데 있다. 남겨진 기록을 ‘있는 그대로’ 유지·보존하는 것이다. 필름과 테이프 등 아날로그 저장장치에 담겨 항온·항습 기능을 가진 특정 공간에 고이 보존됐던 기존의 영상 기록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디지털 아카이브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자료의 디지털화로 이용자들은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영상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게 됐고, 관리자는 저장된 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영상기록물의 생산과 저장, 유통과 소비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공공 영상 아카이브는 이제 디지털화된 영상기록물 데이터베이스를 근간으로, 공동체의 기억을 반영하는 중요한 기록이자 후대에 전승돼야 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으며, 일반인이 자유롭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개방과 공유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개방과 공유를 실행하는 공공 영상 아카이브의 주요 해외 사례를 살펴보자.
쇼와칸(昭和館)은 전쟁 전후의 역사적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전시하는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5층 영상 음향실에 검색과 영상 열람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니혼(日本)뉴스1)와 아사히(朝日)뉴스, 요미우리국제뉴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등 다양한 기관에서 광범위하게 영상 콘텐츠를 수집했으며, 쇼와칸을 방문한 누구나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하쿠토산 후쿠도오(白頭山 福童)’라는 일본 이름을 지닌 한국인 박한규의 영상도 만날 수 있다. 1903년 출생으로 신장 217cm에 체중 140kg의 거대한 체격을 지닌 그는 일본에서 스모선수로 활동했다.
세계 최고(最古)의 뉴스영화사인 영국의 브리티시 파테(British Pathé)는 1896년부터 1984년까지의 뉴스 릴 22만여 편을 보유하고 있고 이 중 대부분을 누리집에 공개(유튜브 채널에서는 10만여 편 시청 가능)하고 있다. 검색어를 ‘Korea’, 기간을 1910년에서 1945년으로 한정해 검색하면 10여 건의 영상을 온라인상에서 직접 볼 수 있다(‘Korea’ 전체 건수는 2,629건). 이 중에는 브리티시 파테가 1923년에 한국에 처음으로 와서 촬영한 <동양의 서양화(Westernising the East)>라는 영상을 비롯해 1926년 <순종 장례식(Funeral Procession For Korea’s Last Emperor)>, 1932년의 <결혼식 장면(A Marriage Has Been Arranged!)> 등이 있다.
호주전쟁기념관(Australian War Memorial)은 8,800여 편의 전쟁 관련 필름 자료를 누리집에 공개하고 있다. 뉴기니 전투에 동원된 한국인 등 한국과 관련된 영상자료는 122건이 업로드돼 있다. <Evacuation Japanese Civilians, Manila(마닐라, 일본 민간인 대피)>라는 영상은 1945년 10월 13일 상황을 담고 있다. 일본 구축함이 일본 여성과 아이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마닐라에 도착했고, 그들은 장교 부인과 게이샤 그리고 캠프 관계자들로 구성돼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게이샤는 위안부 여성을 지칭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의 디지털 아카이브(University of South Carolina Libraries)는 미국 영화산업의 외부에서 제작된 필름과 비디오를 현재와 미래의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만들어졌다. 대학교 아카이브임에도 공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다양한 하부 컬렉션 중 한국과 관련된 것에는 ‘미 해병대 컬렉션(United States Marine Corps Films)’이 있다. 미 해병대에서 기증받은 1만여 편의 필름을 디지털화 작업을 거쳐 업로드하고 있다. 이 중에는 남태평양 타라와 지역에 강제동원된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은 기록영상 <USMC 100896: Tarawa Aftermath(타라와 전투의 여파, 1943년)>도 있다. 지난 12월 초, 타라와 전투에서 숨진 한국인의 유해 가운데 최초로 고 최병연 씨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 바 있다.
일본이 겪은 전쟁 체험을 ‘사회의 공유재산’으로 보고, 이를 미래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년에 개설된 아카이브다. 264편의 니혼뉴스를 근간으로 하는 이 아카이브는 1,600여 건의 구술 증언(전쟁 체험자들의 인터뷰)과 900여 편의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돼 있다. 키워드와 지도, 연표를 통해 영상을 검색할 수 있다. 또한 영상을 공개하는 것에서 나아가 영상 속 사건의 배경 등을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설명하고, 실제 사건 속 인물의 구술과 증언 등을 통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최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South Korean University Student Demonstration(대한민국 대학생 시위), 1964>라는 영상을 수집했다. 1964년 한일 협정 반대 시위 모습을 담고 있는 영상이다. 이렇듯 아직도 한국 근현대사 관련 영상은 세계 각국의 공공 혹은 사설 아카이브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공공 영상 아카이브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 첫째, 광범위한 자료 수집이 선행돼야 한다. 시간과 예산을 투입해 우리 역사의 조각을 찾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 둘째로 사건의 경과, 흐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자들의 구술 및 증언 그리고 깊이 있는 해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일반 이용자들이 쉽게 접근·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쌍방향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