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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를 목격한
카메라의 기억

기록영상을 통해 본
한국근현대사

사람은 아무리 잘 관리해도 오래 사는 데 한계가 있다. 사람의 생명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니까. 하지만 영상자료들은 잘 관리하고 보관한다면 후대에 오래도록 남아 중요한 역사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다. 선명하게 살아 움직이는 기록영상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다. 이번 칼럼에서는 기록영상의 의미와 이를 통해 들여다본 현대사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문민기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원 /
사진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 누리집,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누리집

현대사 연구와 영상자료 아카이빙

20세기의 역사를 특정짓는 주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영상매체’가 정보를 전달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영상 촬영과 상영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많은 수의 영상이 남겨져 전해질 수 있었다. 이 영향으로 문자로 이루어진 문헌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달리, 20세기의 역사는 영상자료를 통해 보다 풍부하고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수많은 영상자료 중에서 기록영상은 역사 연구에 중요한 기초자료가 된다. 이러한 기록영상은 주로 ‘뉴스 릴(news reel)’을 의미하는데, 당대에 벌어진 중요한 사건들을 필름에 기록해둔 영상들을 일컫는다. 초기에는 미국과 프랑스가 뉴스 릴의 제작과 배급을 주도했으며 영국과 독일, 일본 등이 그 뒤를 따랐다. 1935년부터 TV의 영향력이 커진 탓에 쇠퇴기를 맞은 1965년까지가 뉴스 릴 제작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대한뉴스>나 <리버티뉴스(Liberty News)> 등이 상영돼 대중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뉴스>는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했고, <리버티뉴스>는 주한미공보원(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 Korea)이 주도해 제작했다.

뉴스 릴은 촬영된 영상들을 편집하고,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내레이션을 덧입힌 영상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뉴스 릴을 만들기 이전 단계, 그러니까 편집되지 않은 기록영상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것들을 ‘푸티지(footage) 영상’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동시녹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푸티지 영상은 소리가 없이 영상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영상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많고,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자료라는 점에서 현대사 연구를 위한 중요 기록영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 소개된 기록영상들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 소개된 기록영상들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 소개된 기록영상들

당대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인 만큼 영상자료를 수집하고 잘 보관하는 것뿐 아니라, 이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아카이빙(archiving) 작업’이 무척 중요하다. 아카이빙은 1차적으로 기록물을 수집해 보관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넓게 보면 수집·보관된 기록물들을 그저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료 활용이 가능하게 도와주거나 전시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도 포함하는 작업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국가기록원을 비롯한 여러 기록관이 마련돼 문헌자료뿐 아니라 사진, 음성, 영상자료 등을 수집·보관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영상자료원 같은 곳도 영상자료 아카이빙 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 수집된 기록영상

수집·보존뿐만 아니라 전시와 자료 제공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박물관 역시 아카이빙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023년 3월부터 기록영상 아카이브 플랫폼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를 KBS와 함께 구축해 서비스하고 있다. KBS는 TV 방송을 시작한 1961년부터 해외에 있는 필름들을 수집해왔고, 1990년 ‘6·25 40주년 특별제작반’이 결성된 것을 계기로 한국 관련 영상자료들을 규모 있게 수집하기 시작했다. KBS는 이렇게 수집한 기록영상 필름을 고해상도로 디지털화했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이 기록영상의 정보를 정리하고 분류한 후 이용자들이 온라인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현재 800여 편의 기록영상이 업로드돼 있는데, 6·25 전쟁 시기의 전투와 일상생활을 비롯해 한국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 1951년 2월에 촬영된 봉천동 시장 풍경.
    왼쪽에 보이는 미군 병사가 시장에서 산 엿을 손에 들고 있다.
    (<미군의 마을 시장 구경> 영상)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 업로드된 기록영상들은 대부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 Administration: NARA)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을 KBS가 수집해 들여온 자료들이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한국과 관련한 수많은 문헌, 사진, 영상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 한국근현대사는 일제의 식민 지배와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을 겪으며 역동적으로 전개됐고, 이 과정에 개입한 수많은 외국인이 역사적 사건의 현장과 한국인들의 삶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러니 해방과 6·25 전쟁 등의 역사적 사건을 함께 경험했던 미국이 생산한 자료가 많을 수밖에 없다.

  • 1951년 11월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회담.
    공산군 측 대표들이 회담장으로 마련된 텐트 안으로 입장하고 있다.
    (<판문점 휴전회담> 영상)

미국과 일본이 치열하게 싸웠던 태평양 전쟁(1941~1945년), 그 뒤 이어진 우리나라의 해방과 미·소의 한반도 분할점령(1945년 9월 2일), 가슴 아픈 6·25 전쟁 등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미국은 군대 활동을 통해 많은 기록영상을 생산했다. 영상은 군대 작전에 이용되기도 했고, 뉴스 릴로 편집돼 대중에게 상영되기도 했다. 그 기록영상을 촬영한 부대가 미 육군통신대(Army Signal Corps)다. 통신대원들은 전투와 전쟁 상황, 후방의 일상 등을 주로 촬영했다. 6·25 전쟁 때도 전쟁이 시작된 6월부터 휴전협정이 이뤄지는 순간까지 하루 혹은 일주일 단위로 영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기간 촬영된 영상들은 한 편당 5~10분 내외의 짤막한 푸티지 영상들로 1,000여 편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육군통신대에서는 사진을 촬영하는 인원과 영상을 촬영하는 인원이 대개 한 팀을 이루어 활동했기 때문에 같은 영상 장면과 사진이 많이 남겨져 있는 것도 특징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주 접한 기록사진들을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서 살아 움직이는 영상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 누리집(https://archive.much.go.kr/history_films.do)에는 20세기 초부터 1970년대까지의 영상자료들이 수집돼 인터넷 접속만 가능하다면 누구나 고화질의 기록영상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록영상들은 일본군 위안부들이 구출되는 장면, 해방 직후 남한의 사회상, 제주 4·3사건 등 당대의 중요 사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인천상륙작전이나 흥남철수작전 같은 6·25 전쟁 당시의 긴박한 상황은 물론, 전쟁 시기 후방에서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들도 확인할 수 있다. 문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다양한 영상 정보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 1950년 12월 흥남부두에 모여든 피란민들의 모습
    (<흥남부두의 피란민> 영상)

기록영상을 볼 때 생각해볼 것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역사 속 인물들과 풍경을 보여주는 기록영상이지만, 주의해야 할 지점도 있다. 영상은 시청하는 사람을 촬영된 프레임 안에 갇히게 만드는 한계가 존재한다. 즉, 촬영자나 편집자 혹은 감독의 시선으로 당대의 상황을 바라볼 것을 강요하는 매체인 셈이다. 시청자들은 프레임 바깥의 상황을 알 수 없다. 따라서 기록영상을 촬영했던 미 육군통신대, 나아가 푸티지 영상을 뉴스 릴로 편집했던 미국의 입장이 기록영상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은 한국을, 나아가 한반도라는 공간과 6·25 전쟁 상황을 어떠한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 지점을 함께 고민하면서 기록영상을 본다면 더욱 풍부한 역사상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문자 기록으로는 남길 수 없었던 수많은 민중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글자를 배울 수 없었기에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한 이들의 역사가 영상자료로 기록돼 전해진다. 미국이라고 하는 외국인의 시선이 투영됐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펼쳐져 있다. 특히 푸티지 영상처럼 편집되지 않은 영상에는 정제되지 않은 이미지들이 남겨져 있고, 이것이 기존의 엘리트 중심의 역사 서술에 균열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영상자료는 현대사 연구에 있어서 필수적이고도 매력적인 자료다.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의 다양한 영상을 통해 과거의 카메라가 목격했던 이미지를 자세히 살펴보는 동시에 프레임 너머를 함께 상상해보면 좋을 것 같다. 다만 6·25 전쟁 전후에 촬영한 영상에는 직접적인 전투 영상이 아니더라도 심하게 다친 사람을 촬영한 장면,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 등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 주의를 기울이며 영상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영상을 통해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역사

과거에는 카메라와 필름이 무척이나 귀한 물건이었기에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영상자료를 남길 수 있는 사람도 소수였다. 하지만 요즘은 누구나 손쉽게 영상을 촬영하고, 그것을 편집해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영상자료를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21세기를 우리의 후손들이 연구한다면, 우리가 오늘 촬영한 영상이 곧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될 수 있다. AI(인공지능)가 발달하고, 빅데이터 수집·분석이 활발해지면 지금 생산되는 다양한 영상자료들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니 주변의 다양한 일상과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며 영상을 찍는 것 자체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 소개된 기록영상들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 소개된 기록영상들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 소개된 기록영상들

* 이 글의 내용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