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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고
노래하는 박물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어느 소리꾼의 노래 1인 판소리극 <방탄 철가방- 배달의 신이 된 사나이>

박정희 정권이 저문 이후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이 고개를 높이 쳐든다. 12·12군사정변을 일으킨 전두환은 대통령의 꿈을 품었다. 민중들은 계속될 탄압과 억압을 우려하고, 이를 막고자 전국 규모의 민주화운동을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 결정적인 사건과 마주한다. 일반 시민과 학생이 포함된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무력을 앞세운 계엄군의 만행이 광주 시내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것. 이 사건은 끔찍한 피해를 낳으며 전 세계를 경악케 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깊은 상처를 냈던 5·18민주화운동이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1인 판소리극 <방탄 철가방-배달의 신이 된 사나이>는 그때의 이야기를 다룬다.

온라인 생중계로 만난 세련된 소리꾼의 공연

“채소와 춘장을 칙~ 볶고 (중략) 어야디야 어그야, 배고픈 이들을 위해!”
흥겨운 노랫소리를 양념 삼아 짜장면을 만드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배달부라지만 요리도 곧잘 하는 모양이다. 즐거운 표정이나 한편으로는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소리꾼 최용석은 조선 후기 명창이었던 김세종의 <춘향가> 이수자로 ‘전통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되 새로운 판소리 음악어법으로 소리를 내는’ 세련된 소리꾼으로 손꼽힌다. 판소리뿐 아니라 공연 대본도 직접 쓴다. 공연과 소리에 사람과 그들의 시공간이 담겨있어야 함을 잘 아는 최용석은 2014년 1인 판소리극 <방탄 철가방-배달의 신이 된 사나이>(이하 <방탄 철가방>)를 처음 내놓았다. 이후 극찬과 높은 호응이 이어졌던 이 공연은 2020년 5월 18일 네이버 TV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계정을 통해 온라인 생중계로 다시 우리와 만났다.
<방탄 철가방>의 온라인 생중계는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의 연계공연으로 기획됐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자전거를 타며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 최배달에게는 지석과 애경이라는 죽마고우가 있었다.
눈부시게 행복한 날들은 언제고 계속될 것 같지만 누구나 그렇듯 끝은 있기 마련이다. 총질 흉내를 내던 지석은 군인학교에 입학하고, 애경은 아버지를 따라 광주로 이사를 간다. 혼자 남겨진 최배달은 훗날 성인이 돼 광주로 떠난다. 그의 첫사랑 애경이 있는 곳 말이다. 금남로 중화요리 가게 ‘평양반점’에 배달부로 취직한 최배달은 자신의 자전거 운행 실력을 십분 발휘해 ‘배달의 신’으로 등극한다. 하지만 기쁨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때는 1980년 5월, 그는 배달을 나갔다가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진압하려는 계엄군과 마주친다. 철가방을 ‘방패’ 삼아 현장을 빠져나온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이 철가방은 총알 받아내는 방탄 철가방 아니요. 이 철가방은 짜장면 나르는 배달 철가방이다. 나는 공수 들과 싸우는 배달의 전사가 아니요. 곯은 배를 채워주는 배달원 최배달이다.”
평양반점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계엄군이 사장을 끌고 가고, 가게에 홀로 남은 최배달은 그곳을 수색하던 군인과 마주친다. 그의 죽마고우 지석이었다. 최배달은 전남도청의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애경)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는다. “죽기 전에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소.” 계엄군과 맞서 싸우는 학생들은 전남도청에 몸을 숨긴 상태였고, 애경 또한 그 안에 있었다. 최배달은 애경을 위해, 아니 위대한 싸움에 돌입한 학생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결국 짜장면 300그릇을 만들어 도청으로 배달하는 작전에 돌입한다. 그의 ‘도청 배달 작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애경과 재회할 수 있을까.

방구석 1열 관객들을 위한 1인 판소리극

<방탄 철가방>은 본래 마당극의 형식을 띤 1인 판소리극으로 2014년 초연 이후 진행된 여타 공연들을 보면 수시로 관객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극을 이끌어가는 소리꾼 최용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지난 5월 18일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된 공연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무관객 공연 형식을 유지하면서, 좀더 많은 대중에게 5·18민주화운동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연출됐다.
탁월한 소리꾼이자 연기자인 최용석은 관객이 없는 무대에서도 능수능란하게 극을 이끈다.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묵직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리고, 흥과 비애를 한꺼번에 풀어낸다. 특히 공연 말미 <배고픈 이들을 위해>라는 곡을 부르는 최후의 배달 장면부터 총소리와 함께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품었다는 말이 떠오른다. 웃다가 울고, 울다가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떠올리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5·18민주화운동은 우리 현대사의 끔찍한 비극이지만 자주 언급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역사에 속한다. 아프다고 외면하거나 지우려고만 하면 상처는 덧난다. 왜 다쳤고 왜 아픈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고 앞으로 다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고, 실천해야 앞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방탄 철가방>은 사람들의 뒷목을 슬쩍 건드리더니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어느 저잣거리 소리꾼의 노래와 닮았다. 방구석 1열 관객에게는 더없이 좋은 경험이 됐을 공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