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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핏줄 같은 미세한 기억들과 함께 평화와 공존을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쟁과 갈등을 주제로 삼거나 기념하고 있는 박물관 및 기념관은 최근 두 가지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1990년대 이후 냉전체제가 붕괴하고, 세계적으로 탈냉전-평화시대를 맞이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포스트 메모리(Post Memory) 세대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발간하고 있는 『현대사와 박물관』 제2권은 이런 변화를 고려할 때 주목할 만하다. 현 시점에서 전쟁과 갈등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글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포스트 메모리 세대와 함께 역사를 껴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글 / 연구기획과 최상오 학예연구사

  • 『현대사와 박물관』 제2권 표지

탈냉전 시대의 전쟁과 갈등의 재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현대사와 역사박물관에 관심이 있는 국민들에게 현대사 및 박물관 관련 최신 연구, 전시, 해외 동향 등을 소개하고자 학술 정기간행물 『현대사와 박물관』을 1년에 한 번씩 발간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학술, 전시, 자료수집, 교육 등 사업 내용을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한 의도도 담겨 있다. 이번 호에서는 『현대사와 박물관』 제2권에 기획특집으로 실린 ‘전쟁과 갈등, 해석과 표현의 확장’을 중심으로 탈냉전 시대의 전쟁과 갈등의 재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019년 초 『현대사와 박물관』 제2권을 기획(2019년 12월 발간)할 때 우리는 2020년이 6·25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때문에 전쟁과 갈등을 주로 다루는 박물관과 기념관에서 전쟁과 갈등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는지를 기획특집으로 다루기로 결정했다.

  • 본 글에서 언급한 기획특집 콘텐츠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누리집에서 E-book과 PDF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복원하고 재현하다

기획특집은 국내 사례 1편, 해외 사례 2편과 그간 배제되었던 기억을 재현하는 전시에 참여했던 미술가의 작업기 등 총 4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 사례는 「평화사와 공공역사의 관점으로 본 전쟁기념관」(강성현·최선영)이라는 제목으로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시를 검토하는 논문이다. 기존의 반공안보 의식과 바른 역사관을 전 국민에게 내면화하고 안보 공감대를 확산시키겠다는 서사를 넘어 전쟁에서 피해를 입었거나 고통을 당한 보통 사람들의 서사가 포함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해외 사례(「포스트 메모리 세대 전쟁 기념관에서의 동시대 미술 전시」, 「네덜란드의 전쟁박물관」) 두 편은 영국 제국전쟁박물관(Imperial War Museum, IWM)과 네덜란드에 소재한 다양한 전쟁박물관을 소개하는 글이다. 전자에서는 포스트 메모리 세대에게 전쟁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일찍부터 고민해왔고, 그 한 방법으로 동시대 미술 작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후자 글에서는 다양한 서사와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담긴 네덜란드의 전쟁박물관들을 소개한다. 미술가의 작업기를 다룬 「한국 근현대기 수용시설 전시 작업기」는 거제포로수용소와 대전형무소 관련 전시에 참여함으로써 그간 망각되었던 기억을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네덜란드 국립전쟁저항박물관의 안내 스크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어본 뒤, 질문과 관련된 실제 인물의 행동을 보여준다.

국내 사례를 다룬 글은 결국 기념관을 전쟁이 아닌 평화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한다. 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되새기고 애도하면서 평화와 인권을 지향하는 ‘평화기념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영국 사례를 다룬 「포스트 메모리 세대 전쟁 기념관에서의 동시대 미술 전시」는 ‘모든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과거를 기억하는 통로’라면서 동시대 미술 전시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네덜란드의 전쟁박물관」은 네덜란드 사례처럼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한국 근현대기 수용시설 전시 작업기」에서는 거대 서사뿐 아니라 ‘미세한 실핏줄 같은 개별 역사’들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말한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글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거대 서사가 중심이 된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구술사와 일상생활사, 미시사, 여성사처럼 아래로부터의 역사, 즉 그간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세밀한 기억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아울러 그것을 통해 치유와 공감, 그리고 평화와 공존이라는 인류 보편 가치를 기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점 역시 마찬가지이다.

포스트 메모리 세대와 함께 역사 껴안기

전쟁이나 혁명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와 그렇지 못한 이후 세대의 역사관은 필연적으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국가나 거대 세력이 중심이 된 냉전 시대 관점이 통했다. 하지만 2020년을 사는 젊은 세대 대부분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새로운 시대와 역사를 매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관점과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 국가나 거대 서사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포스트 메모리 세대와 함께 역사를 껴안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