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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실 개편,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이 6월 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온다. 지난 2019년 4월, 5층에 위치한 전시실을 휴관한 뒤 개편을 진행하였고, 올해 4월부터는 3층과 4층의 전시실을 휴관하고 개편을 시작하였다. 새로운 상설전시실의 개편 방향은 어떠한지, 그리고 관람객들은 6월부터 재개관하는 역사관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살펴본다. 글 / 전시운영과 김수진 학예연구관

사람 중심의 서사를 바랐던 목소리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하 박물관) 상설전시실 개편의 핵심은 전시 공간의 성격과 배치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 기존의 상설전시실이 3층부터 5층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연대기순으로 만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개편에서는 세 개 층의 공간에 각기 다른 특성을 부여하며 새로운 상설전시 문화를 만든다.
우선 5층의 역사관은 우리 근현대사를 시간의 축을 따라가며 살펴본다. 4층에 들어설 체험관은 역사 현장을 재미있게 직접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3층에 열릴 주제관은 현대사의 주요 주제 영역을 심층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역사관은 올 5월 시범운영을 거쳐 6월 초에 정식으로 재개관하고 12월에는 체험관이, 내년에는 주제관이 재개관할 예정이다.
본래 상설전시실은 박물관이 지닌 고유한 정체성과 특성을 담기 마련이다. 이번 개편의 목표는 한마디로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일궈온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여정을 조명’하는 데 있다. 사실 우리 박물관은 개관 이후 상설전시에 대한 아쉬움과 지적을 적지 않게 받아왔다. 역사학계나 역사 교과 교사, 그리고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 한국학 전공자들은 공통적으로 사람보다는 국가 중심의 서사가 두드러진다고 지적해왔다.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고, 관람객의 참여를 더 이끌어내는 전시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많았다. 박물관은 고민 끝에 박물관의 고유한 정체성을 ‘사람’에서 찾기로 했다.

  • 올 6월부터 새롭게 개편되는 역사관 평면도

그 목소리에 응답하다

상설전시실 개편을 결정한 뒤 박물관은 사람들의 여러 지적과 바람을 적극 반영하는 데 개편의 목표를 두었다. 몇 명의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온 현대사, 그 굴곡진 여정을 재미있고 알기 쉽게 소개하자는 목표였다.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주제를 선정하고, 무슨 자료를 넣고 빼며, 어떤 형식으로 표현해야 할까. 이러한 고민을 풀어가고자 우리는 여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청취했다. 또한 학술적인 최신 성과를 반영하기 위해 전시기획자문단을 운영했다.
분야별로 전문가 주제소위원회를 만들어 역사학, 문화사, 사회사, 경제사, 도시건축사, 미디어사, 여성사의 전문가들과 전시콘텐츠와 연출 전공자 등 50여 명에게자문했다. 그중 여섯 명은 상임위원 역할을 수행하며 매달 회의를 통해 개편 과정의 단계를 함께 밟아나갔다.
전시체계와 전시자료, 그리고 연출 기획의 뼈대를 만든 뒤에는 학술단체와 사회단체를 초청한 간담회를 개최하여 폭넓게 의견을 수렴했다. 한국사연구회 같은 역사 관련 학술단체, 광복회·한국노동조합총연맹·소상공인연합회 등의 사회단체, 근현대사 역사학자, 역사 및 사회 교과 교사들이 이 과정에 참여하여 다양한 의견을 내주었다. 사실 이 모든 의견을 빠짐없이 반영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현대사와 관련된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각자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때로는 그분들 사이에 견해와 주장이 상충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편을 책임지는 박물관의 담당자들에게 여러 집단과 입장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감각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들

6월부터 새롭게 공개되는 역사관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1890년대부터 시작한다. ‘사람 중심의 서사’를 기획한 만큼, 국민들이 민(民)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근대국가에 대한 모색을 시작한 시기에서 첫발을 뗀다. 전체 역사는 크게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는 1890년대부터 1945년까지 ‘자유, 평등, 독립을 꿈꾸며’, 1945년부터 1987년까지는 ‘평화, 민주, 번영을 향하여’, 1987년부터 현재까지는 ‘나, 대한민국, 세계’라는 주제로 구성돼 있다. 근대국가 수립의 노력, 식민지화, 분단, 전쟁, 민주화 같은 정치사적 사건이 사람들의 삶에 미친 큰 영향을 조명하는 동시에 일상생활의 다채로운 변화상을 다룬다.
소작농 혹은 구두닦이로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 신민요와 재즈 번안곡의 유행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세계를 휩쓸고 있는 케이팝 한류의 흐름이 함께 펼쳐진다. 또한 외환 위기, 인터넷 혁명과 더불어 네트워크 사회로 진입하며 생겨난 사회참여의 개방과 폐쇄의 양면성, 인종과 국적의 경계를 넘어 글로벌한 정체성이 공존하며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까지, 보통 사람들이 겪어온 삶을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역사 속 이야기’이다. 벽면 진열장에 진열된 유물과 자료를 통해 역사 속 사건을 접하는 동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특별히 마련된 별도의 공간을 만나게 된다. 영상, 그래픽, 그림, 모형 등의 다양한 연출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는, 디지털 아카이브이다. 문헌이나 사진, 음악, 동영상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다양한 역사자료를 디지털 아카이브 형태로 만들어 터치스크린형 키오스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대중음악, 식민도시의 사진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 100개의 독립운동가 미니 다큐, 해방공간의 전단, 제헌의원의 면면, 수백 컷의 ‘고바우 영감’ 만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보여주는 전단 등 그동안 수집하여 정리하거나 새로 제작한 아카이브 자료들을 활용하였다. 세 번째는 구술 영상이다. 우리 박물관에서 그동안 제작해온 구술 채록 동영상을 전시로 선보인다. 기증자 분들이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살아온 이야기, 외환 위기를 겪은 노동자와 주부 및 학생 등의 이야기가 화면에서 살아 움직인다.
우리 박물관의 전시 면적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사무 빌딩을 리모델링한 건축물이어서 크고 웅장한 연출은 불가능하다. 전쟁기념관처럼 참호 모형을 실제 크기로 보여줄 수도 없고, 독립기념관처럼 김구 선생이 해방 직후 타고 온 비행기를 둘곳도 없다. 대신 새로운 개편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다채로운 사람 이야기까지 모두 풍부하게 담고자 했다. 물론 전시의 중심은 앞서 말했듯 지난 대한민국의 역사를 살아온 ‘보통 사람들’이다. 처음 시도하는 만큼 문제가 없지 않겠지만, 우린 기꺼이 맞부딪치며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일궈온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여정을 조명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애정 어린 관심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