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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새를 위한 제의 <아우내의 새> 무관객 온라인 공연

지난 3월 26일 오후 3시, 유관순 열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생중계로 열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세종문화회관의 공동 개최로 진행한 ‘음악이 있는 시 낭송회’ <아우내의 새> 공연이 그것.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열린 무관객 온라인 공연에서 관람자들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열아홉 열사 혹은 소녀를 두 눈 앞에서 보듯 떠올렸다. “하늘에서 푸른 별 하나 내려와 새가 되어/사람들의 깊고 깊은 수렁 속”(『아우내의 새』 중 「천둥」 부분)을 날아오르던 그 발 없는 새는 푸른 하늘 한 조각을 물고서 아직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시 낭송과 음악으로 만나는 유관순

<아우내의 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파로 지친 사람들의 일상에 위안을 선사하기 위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마련한 무관객 온라인 공연이다. 1986년 발행한 문정희 시인의 장시집 『아우내의 새』에서 착안한 공연으로 시집이 그러하듯 신념을 몸으로 태워버린 용기의 불꽃, 근세에 보기 드문 완벽한 자유주의자 유관순의 이야기를 ‘낭송과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연은 시집에 실린 시 45편을 문정희 시인과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이하 관장)이 낭송하고, 중간 중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클래식공연단의 연주와 함께 소프라노 강혜정과 바리톤 이응광의 노래가 이어지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공연은 조은아 예술감독을 필두로 한 7인조 클래식 공연단이 <아리랑 포에티크(Arirang Poetique)>를 연주하며 첫발을 뗐다. 서정적이며 따뜻한 기운의 연주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도 재직 중인 조 감독은 이날 공연의 전체 연출과 곡 작업은 물론 피아노 연주와 진행까지 맡았다. 첫 곡이 끝나고 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보통은 유관순을 열사, 의거, 순국 같은 무겁고 진지한 단어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고등학생 또래, 열예닐곱 살의 소녀였죠.”

유관순의 넋을 매만지는 공연

‘음악이 있는 시 낭송회’ <아우내의 새>는 단순히 ‘유관순 열사’의 모습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천안 병천에서 태어나 이화학당을 다니던 유관순이 일제의 불의를 접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장시집의 저자인 문정희 시인과 주진오 관장은 45편의 시를 나누어 낭송하며 공연의 서사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안정되고 침착했던 문정희 시인의 목소리, 낮고 굵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진오 관장의 말은 공연 내내 높은 호소력을 보이며 일관되게 흘렀다.

시 낭송이 더욱 빛났던 것은 클래식공연단의 연주와 강혜정, 이응광 두 성악가의 노래 덕분이다. 클래식 공연단은 대한민국의 상징과 같은 곡 <아리랑>을 변주해 들려주는가 하면, 외국의 영가 <Amazing Grace>를 재해석하는 등 국내외 음악을 넘나들며 유관순의 깊은 내면에 담겨진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열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두 번째 곡 <아라리요>에서는 소프라노 강혜정이 나라 잃은 서러운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했고, <맨발의 소녀>에서는 현실에 분노하는 유관순의 뜨거운 열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바리톤 이응광의 나직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청산에 살리라>가 고향 땅에 대한 목가적인 그리움을 보여준다면, 마지막 곡 <못 잊어>는 두 성악가의 듀엣으로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문정희 시인과 주진오 관장의 시 낭송,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클래식공연단의 연주와 두 성악가의 노래는 때론 부드럽고 서정적으로, 때론 경쾌하고 쾌활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유관순의 넋을 매만졌다. 이 모두가 마치 10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유관순을 응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시집 전체를 한 편의 공연으로 만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를 남긴 유관순의 이야기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그 누군들 빛나는 청춘을 즐기고 싶지 않았을까. 당시 열아홉 살이던 유관순 역시 이화학당을 다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소녀였다. 다만 불의에 찬 현실이 그녀의 목소리를 높였고,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서대문형무소의 차가운 지하 감방에서 순국한 유관순은 발 없는 새가 되어 푸른 별이 뜬 하늘을 높이 날아올랐다. 공연에서 주진오 관장이 낭송했듯, 유관순은 푸른 하늘 한 조각을 물고서 아직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아우내의 새> 공연은 그 발 없는 새를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제의였다. 공연 전편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유튜브 계정을 통해 다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