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멀지 않은 인천에선 비교적 가까운 과거까지 소금이 만들어졌다. 염전은 문을 닫았지만 소금에서 시작한 소래포구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공기가 부쩍 차가워진 아침, 수인분당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소래포구역이다.
글·사진 | 김기쁨(여행기록가)
소래포구는 지금도 어선이 드나드는 수도권 유일의 재래 포구다.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경에 염전 공사를 시작해 1934년에 첫 소금을 생산했고, 소래염전에서 만들어진 소금은 생필품은 물론 화약 제조용 군수품으로 쓰였다.
소금을 실어 나를 배와 기차도 필요했을 터. 일제는 소래염전에서 난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수원에서 인천까지 철도를 만들었고, 나룻배가 드나들며 포구가 생겨났다.
해방 이후 6.25전쟁을 겪으면서 소래 포구는 또 한 번 변화를 맞았다. 실향민들이 이곳에 터를 잡아 바다에서 새우와 수산물을 잡기 시작했고, 어선이 몰리면서 새우 파시(波市)가 열렸다. 1960~1970년대 이야기다.
그 역사를 만나기 위해 소래포구역에서 바다를 향해 걸었다. 산책하듯 걷다보면 소래역사관이 나온다. 소래포구에 담긴 진한 이야기들을 갯벌, 포구, 염전, 협궤열차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공간이다. 오래도록 존재했던 갯벌을 둘러싸고 염전이 생기고, 열차가 다니고, 포구가 형성되었던 때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아쉽게도 과거에 다녀오지는 못했다. 내부 단장을 위해 12월 중순까지 휴관중이기 때문. 재개관을 한 이후에는 더실감 나는 관람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니 본격적으로 소래포구를 돌아보기 전, 소래역사관을 먼저 둘러보길 권한다. 보다 깊게 소래포구를 만날 수 있을 테니.
소래역사관 앞, 증기기관차가 보였다. 실제로 운행되었던 이 기관차의 과거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길을 건너 소래포구 전통어시장과 갯벌 사이의 작은 길로 향했다. 소래철교로 가기 위해서다.
갯벌 위를 지나는 좁고 긴 다리는 인천논현동과 시흥 월곶동을 잇는다. 길이 126m의 소래철교는 인천-시흥을 오가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행교로 이용 중이다.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만 본래 기차를 위한 다리였다. 1937년에 개통한 수인선 협궤열차가 그 주인공. 1994년, 수인선 운행 구간이 단축되면서 열차가 다니지 않게 된 후로는 사람이 건너다녔다.
소래철교 바닥엔 기찻길이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나란히 쭉 뻗은 철로다. 협궤는 철길 간격이 일반 철도보다 좁은데, 수인선의 선로 간격은 76.2cm란다. 정확한 수치를 모르더라도 보통의 기찻길보다는 폭이 좁다는 게 확연하게 보인다.
그 위를 달리던 열차 또한 작았다. 꼬마열차로도 불린 협궤열차의 폭은 2.2m. 자체 동력이 없어 기관차가 끌어서 운행하는 방식이었는데, 소래역사관 앞에 전시된 기관차가 그 역할을 했다. 전시된 기관차는 195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국내에 남은 협궤증기기관차는 단 6량뿐이라고.
한적하고 조용하던 바닷가에 기차가 다니고 시장이 생기더니 지금은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지난 시간을 발로 훑으며 다리를 건너면 금세시흥에 도착한다. 다리 끝에서 뒤를 돌아보니 소래철교와 전통어시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겨울 햇살을 잔뜩 머금어 황금색으로 빛나는 인천의 보물들이.
시흥에서 다시 소래포구로 넘어오는길, 소래철교를 다 건너면 건물과 이어진 또 다른 길이 보인다. 소래포구 전통어시장으로 통하는 길이다. 평일 오전임에도 활기차고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전해진다. 그냥 지나치기 힘든 에너지다.
실향민들의 정착과 함께 1960~1970년대 형성된 새우 파시는 입소문과 함께 찾는 이가 점점 많아졌다. 어민이 직접 잡은 싱싱한 수산물을 싸게 살 수 있다는데 가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작은 어선이 모이던 시장은 점점 커져 점포수 300개가 넘는 소래포구 전통어시장이 되었다.
소래포구 전통어시장은 깔끔한 3층 건물이다. 1층은 깨끗한 현대식 수산시장으로, 활어부터 굴, 게 등 서해 하면 떠오르는 수산물 천국이다. 유독 젓갈 매장이 많은데 소래염전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지금은 새우젓이 소래포구시장의 대표 상품이다.
2층에는 식당과 카페, 3층에는 해수족욕장이 있다. 다른 전통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시설이다. 심지어 옥상은 하늘정원으로 꾸며졌다. ‘I♥SORAE’라는 포토존 조형물과 쉼터 그리고 탁트인 전망 덕분에 제법 많은 이들이 이용한다.
북적이고 활기찬 시장과는 또 다른 평화로운 공간이니, 소래포구를 바라보며 잠시 여유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소래포구 전통어시장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좌측으로는 소나무가 우측으로는 갯벌과 갈대가 어우러진 길을 15분 정도 걸으면 소래습지생태공원이 나온다. 공원을 찾은 이유는 명확했다. 염전을 보기 위해서다. 그것도 폐 염전과 새 염전을 모두 보기 위해서.
1996년까지 소금밭이었던 너른 땅엔 갈대가 자라고 길이 생겼다. 지금은 풍차와 갈대가 만든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천의 명소가 되었지만, 발길이 닿고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염전이었다. 70년대에는 전국 최대의 소금 생산지였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모습은 조금 변했지만 역사와 정체성은 그대로다. 넓게 펼쳐진 염전이 그증거다.
현재 운영 중인 염전은 체험용이다. 일정량의 햇볕을 쬐어야 소금이 만들어지기에 염전 운영과 체험은 여름에만 가능지만, 아쉬워하기엔 이르다. 겨울이라고 염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운영을 하지 않을 뿐 관리는 꾸준히 하는 중이다. 염전 위를 오가며 작업하는 이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염전을 감상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내려다보거나 옆에서 보거나. 전시관 3층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르면 높은 곳에서 염전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염전 사이로 난 염전 관찰 데크를 걸으면 코앞에서 염전을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든 신기한 건 마찬가지다. 서울과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염전이라니.
소래습지생태공원은 정말 넓다. 약 150만㎡의 면적에 공원 둘레길은 3.4km에 달한다. 여유롭게 천천히 돌아볼 시간이 없다면 염전과 소금창고를 중심으로 걸어보자. 현재 사용 중인 소금창고를 지나 허물어진 옛 소금창고에 다다르면 염전 터가 나온다.
바닥의 하얀 흔적만이 염전이었던 과거를 짐작게 할 뿐 다른 볼거리는 없지만, 갈대밭의 정취를 느끼며 다녀와 보시길. 소금기처럼 깊이 스민 역사를 만나는 여행의 종착지로 이보다 좋은 장소도 없다. 소래포구의 시작이 바로 이 염전과 소금이니까.
○ 소래역사관 - 사실 소래포구를 돌아보기 전에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소래역사관이다. 소래포구에 담긴 진한 이야기들을 갯벌, 포구, 염전, 협궤열차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공간이다. 소래포구에 간다면 소래역사관을 먼저 둘러보길 권한다. 보다 깊게 소래포구를 만날 수 있을 테니.
○ 새우타워 전망대 - 소래철교를 걷다 보면 바닷가에 거대한 새우 한 마리가 보인다. 옛 5부두에 높이 21m의 새우 타워를 세웠고, 새우 머리 부근에 전망대를 설치했다. 전망대가 높지는 않지만, 주변이 워낙 탁 트여 시원함이 절로 느껴진다. 밤에는 새우타워가 붉게 물들어 야경 맛집으로도 통한다고.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소래철교 위를 달리던 협궤열차가 궁금하다면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 들러보자. 박물관 야외전시장인 우현마당에선 실제 운행되었던 협궤열차가 전시 중이다.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재 제3호인 수인선 협궤 객차 18028호다. 1969년 인천공작창에서 만들어져 수인선이 폐선된 1995년까지 운행된 것이라고. 깨끗하게 복원된 부분과 과거 상태가 그대로 남은 부분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 인천시티투어버스 소래포구 테마 노선 - 수인분당선 소래포구역 덕분에 뚜벅이도 충분히 여행하기 좋지만, 보다 편하게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인천 시티투어버스 소래포구 테마 노선을 추천한다. 인천종합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해 늘솔길공원과 한화기념관을 거쳐 소래포구 전통어시장과 소래습지생태공원을 둘러보는 코스다. 운영일은 매주 목요일, 요금은 어른 1인 기준 1만 원이다. 탑승장소는 인천종합관광안내소이며 예약 필수다. 탑승일 3일 전까지 예약인원이 5명 이상일 경우에만 운영한다. (인천종합관광안내소 032-832-3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