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이야기

현대사와 함께한 한국문학 이야기

문학은 한 나라의 역사를 담는 그릇이다. 문학 작품 안에는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온 발자취가 녹아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부터 현재의 다양한 장르 문학에 이르기까지, 현대사를 품고 발전해 온 한국문학을 들여다본다.

글 | 강진호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격변하는 역사와
    함께한 문학

  • 매일신보에 실린 이광수의 소설 『무정』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 현대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사건이고, 한국문학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쾌거였다. 한국문학은 이제 변방의 주변부 문학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보편문학이 되었다. 특히, 다른 먼 곳이 아닌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강의 작품은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증언적 기록이다. 따라서 이 상은 한 명의 작가에게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한국문학과 역사전체에 조명을 비추고 그 성취를 기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눈길을 돌려 오늘의 한국문학이 이룬 화려한 성취와 그 너머의 역사를 보기로 하자. 한국 근현대문학은 백여 년의 역사를 쌓으며 산맥처럼유유히 오늘에 이르렀다.

    개화기 문학(1876~1910년경)은 서구 문물의 유입과 함께 새로운 사상과 형식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신소설, 신체시, 신극 등 새로운 형식이 등장하고, 봉건적 가치를 부정하고 근대적이고 자주적인 가치와 민족의 각성을 주제로한 작품들이 창작된 시기였다. 1908년에 발표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현대문학의 태동을 알리는 작품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무정』(이광수)은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근대적 의식과 자아의 각성을 통해서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였다.

    일제강점기 문학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며 내용과 형식을 만들어 왔다.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등은 직접 독립운동에 관여하면서 투쟁과 독립의 의지를 표현하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는 일제 강점으로 인해 땅을 빼앗겨 봄조차 느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언젠가는 우리 땅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표현하였다. 이기영, 한설야, 임화 등 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작가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고발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 회복을 통해서 일제에 저항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중도적입장의 염상섭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사회적 변화와 갈등을 세대 간의 갈등을 통해서 그려내었다. 「삼대」에서, 할아버지 조의관과 아들 조상훈, 손자인 조덕기 사이의 갈등을 통해서 식민지 시대 청년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주고, 나아가 봉건 질서의 몰락과 근대적 가치의 등장을 그려내었다. 그러나 『문장』과 『인문평론』이 강제 폐간된 1941년 이후 한국문학은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오로지 일본어로 창작된 작품만 발표될 수 있는 치욕의 시기였다.

    해방을 맞이했으나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해방과 함께 좌와 우로 나뉜 이념적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문학도 양분되어 전개되었다. 일제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상황에서, 좌익은 사회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봉건적 전통을 타파하고 공산 사회를 건설하자는 내용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우익 문학은 김동리, 조연현, 박종화 등 젊은 문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김동리는 「무녀도」와 「황토기」 같은 작품을 통해 한국인의 전통적 삶과 운명을 형상화하면서 계급문학에 대항하였다. 이후 남과 북이 분단되고 우리 문학은 남한의 당면 현실에 대응하면서 다양한 내용과 양식으로 전개되었다.

    산업화 시대(1960~1980년)에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사회적 변화를 다룬 작품들이 등장했다. 급속한 산업화로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이 문제가 되면서, 이러한 현실이 작품의 주요 소재로 다뤄지게 되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산업화와 함께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리는 사람들이 급증했는데, 황석영의 「객지」와 「삼포 가는 길」은 이런 이촌향도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김승옥의「무진기행」은 도시 생활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소외감을 묘사하였고, 최인훈의 『광장』은 분단 이후 통일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는 현실을 반영하면서 분단극복의 의지를 담아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조세희), 『사람의 아들』(이문열), 『장길산』(황석영), 『토지』(박경리), 『지리산』(이병주), 『태백산맥』(조정래) 등이 이 시기에 창작되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촌향도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김승옥의「무진기행」은 도시 생활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소외감을 묘사하였고, 최인훈의 『광장』은 분단이후 통일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는 현실을 반영하면서 분단극복의 의지를 담아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조세희), 『사람의 아들』(이문열), 『장길산』(황석영), 『토지』(박경리), 『지리산』(이병주), 『태백산맥』(조정래) 등이 이 시기에 창작되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다양성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문학

    작가 한강 ©한강
  • (좌)염상섭의 소설 『삼대』 (우)박경리의 『토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0년 이후 현재의 문학은 다양성의 문학으로 정리할 수 있다. 1980년대에는 사회 전반을 휩쓴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사회 비판적인 작품이 주로 창작되었다면, 1990년대는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과 사랑, 고독 등 내밀한 감정과 심리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개인의 자아 탐색과 일상적 삶의 문제가 다루어지고, 1980년대의 변혁운동이 좌절된 후 개인의 정신적 방황과 내면의 갈등을 그린 후일담 소설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공지영의 『고등어』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과 PC통신의 발달로 인해 ‘통신 문학’이 등장했다. 예전에는 문학잡지를 통해 연재되었다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연재되거나 발표되었다. 남성작가 중심의 문단을 탈피하여 여성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연작과 은희경의 『새의 선물』,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신경숙의 『외딴 방』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역사적 사건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작품들이 등장해서 김훈의 『칼의 노래』와 최인호의 『상도』 등이 인기를 끌었다.

    2010년 이후 최근 문학은 다양한 트렌드를 보이며 여러 영역으로 확산·발전하고 있다. 우선 장르 문학의 부상이다. SF, 판타지, 호러 등 장르 문학이 주목받고 있다.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같은 작품이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런 흐름은 한편으로 세계적인 열풍 속에 있는 K-컬처의 유행과도 관계가 있다.

    (좌)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창비 (우)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한국문학 또한 이런 흐름을 타고 확산해 다수의 작품이 번역되고 해외에서 출간되었다. 그 결과 2016년에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국제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작년에는 한강의『작별하지 않는다』가 프랑스 메디치상을 수상했다. 2022년에는 이수지가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다. 2020년에는 손원평의 『아몬드』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일본과 독일에서 문학상을 받았고, 김이듬의 『히스테리아』가 전미번역상을 받았다. 한강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은 평지돌출이 아니라 이런 세계화의 지속적인 흐름이 맺은 결실이다. 한국문학은 이제 막 세계 무대에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세심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강진호

문학평론가, 성신여대 국문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 『현대소설사와 근대성의 아포리아』, 『국어 교과서와 국가 이데올로기』, 『현대소설과 분단의 트라우마』, 『국어 교과서의 탄생』,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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