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경 맨체스터 대학교 휘트워스 미술관 관장, 교수
2024년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큐레이터를 맡아 모리 유코의 개인전을 선보인 이숙경 관장은
일본관 72년 역사중 최초의 외국인 큐레이터로 초청 받아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 관장에게 붙는 최초라는 수식은 처음이 아니다.
이 관장은 지금까지 걸어온 발걸음 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뒤따라 다녔다.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최초 동양인 큐레이터이자 한국인 최초 영국 대학 미술관인 휘트워스 미술관의 관장이 되었다.
2023년 국내 최대 규모 국제미술제인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다.
이 관장은 최초라는 수식을 넘어 미개척 분야를 계속 도전하고 있다.
정리 | 편집실
관장님은 서양 미술 무대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여러개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어떤 노력과 준비를 하셨는지 관장님과 같은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한국인으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데서 현재 제가 실천하고 있는 탈문화적 큐레이팅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교육 과정이나 내용이 서유럽, 북미와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한국 고유의 역사, 철학, 세계관 등이 저변에 깔려 있어서, 자연스럽게 서양 문화와의 차이 및 유사점을 배울 수 있었던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미술사와 미술이론을 한국과 영국이라는 다른 학술적 맥락 안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 전반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한 경험 또한, 한 분야의 전문성을 차별화된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동양인 미술사학자로서 서양 미술관 관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경험이 워낙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언어, 사고방식, 문화적 가치 등을 다시 배우고 제가 본래 지니고 있던 지식체계를 객관적으로 질문하면서 이 과정을 기회로 삼았습니다.
한 사회 안에서 생활하고 일할 경우에는 문제가 있거나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반면, 모든 것이 다른 사회와 문화를 인식하는 환경 안에서는 보다 객관적인 견해와 태도를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 대한 이해의 경우에도, 특정한 미술사를 유일하고 교과서적인 지식으로 대하는 사람들에 비해 저는 복수적이고 다변적인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관장님이 생각하는 통문화(Transculture)는 어떤 것인가요?
‘국제사회’라는 개념은 사실 추상적인 것이라서 이분법적으로 ‘한국과 세계’, ‘한국과 영국’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제한적인 이해에 그치기 쉽습니다.
실제로 세계는 수많은 국가들의 집합체인 동시에 국가라는 정체성을 넘어서는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공동체들의 복잡한 교집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모든 개인이 지니고 있는 정체성은 매우 특수하면서도 공동체의 유전자에 바탕을 둔 것이라서, 저 또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제가 자라난 시대, 장소, 환경 등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술가 들 또한 이런 유일하면서도 공동체적이고,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 사람들이라는 시각으로 큐레이팅에 접근합니다. 개인의 독자적인 예술성이 한 시대나 문화를 반영하는 보편적 문화의 맥락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볼 때, 두 측면 모두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고 보며, ‘탈문화’라는 개념은 각 문화가 지닌 이질성과 이들을 관통하는 유사성, 이들간의 접점을 통해 만들어지는 연결성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개인의 독자적인 예술성이 한 시대나 문화를 반영하는
보편적 문화의 맥락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볼 때,
두 측면 모두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고 보며,
‘탈문화’라는 개념은 각 문화가 지닌 이질성과 이들을 관통하는 유사성,
이들간의 접점을 통해 만들어지는 연결성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현대사적 의미와 또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 광주 비엔날레의 현대사적 의미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30여년 간 세계 각지에서 비엔날레1), 트리엔날레2) 같은 현대미술전이 등장하였는데, 이런 행사들의 모델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입니다. 1895년 이 비엔날레가 처음 열렸을 당시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이 왕국(Kingdom) 구조를 가지고 북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식민지를 확장하던 때였습니다. 20세기를 거치며 이 비엔날레는 세계 대전, 공화국의 형성, 민주주의의 확장식민주의의 쇠퇴 같은 역사적 변화와 함께 큰 변화를 겪었고, 21세기를 맞으면서 예술적으로도 동시대미술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장(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술감독의 총체적인 비전을 바탕으로 한 주제 중심의 전시외에도 국가관이라는 형식을 통해 한 국가가 스스로를 대표하는 예술을 보여주는 것이 베네치아의 특성입니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의 계승을 모토로 시작되어 적극적으로 서유럽 및 북미를 넘어선 국제미술의 다양한 현장을 대표하는 미술을 보여주었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비엔날레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광주 비엔날레와 베네치아 비엔날레 작업을 진행하셨는데 유럽과 한국에서의 작업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제 개인적으로 두 비엔날레의 가장 큰 차이점은 관객이라고 봅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보통 이탈리아 관객이 절반을 차지하고, 베네치아를 찾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나머지반을 구성하므로, 명백히 국제적인 관객을 고려해야 합니다. 2015년 한국관의 커미셔너 & 큐레이터, 2024년 일본관의 큐레이터로 제가 주목한 것은, 한국이나 일본의 미술, 문화를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 참여 작가들의 예술적 비전을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광주비엔날레의 경우에는 광주시민, 국내 관객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79명(팀)의 예술가들을 우리 관객들에게 어떻게 소개할 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유하는 감성과 비전에 주목하였고,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더욱 강조하였죠.
관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지난해 가을부터 맨체스터 대학교 휘트워스 미술관 관장으로 일하면서,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미술관의 공적 역할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62,000점이 넘는 소장품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통사적 전시 방식도 고려하고 있고, 순수미술, 디자인, 섬유, 벽지 등 다양한 예술매체 및 분과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미술관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죠. 제가 지금까지 관심가져 온 탈문화적 방법론도 계속 발전시켜 나가려 하고, 맨체스터가 지닌 국제적 역사와 다중적 문화 배경도 재발굴하고자 합니다. 한국미술가 및 미술관들과의 협력도 진행해 보고 싶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