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만나는 유엔군 참전의 기록
6.25전쟁 74주년을 맞은 2024년 6월의 어느 날, 부산으로 떠났다.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가 있는 곳, 전쟁을 피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곳, 전쟁기간 동안 임시수도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부산은 여전히 잊지 않고 있었다.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해 청춘과 젊음을 바친 유엔군의 숭고한 희생을.
글 | 사진 김기쁨(여행기록가)
6.25전쟁 당시 참전한 국가는 총 22개 =국(전투부대지원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이다. 미국, 영국, 튀르키예,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고향을 떠나왔다. 무사히 생환해 고국으로 돌아간 이도 있었지만,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이도있었다.
1951년 전쟁 중 사망한 장병들을 안장하기 위해 유엔군사령부가 묘지를 만들었다. 1955년에는 대한민국 국회가 묘지가 있는 땅을 영구히 기증할 것을 유엔에 건의했고 유엔총회는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결의하였다. 1959년 11월에는 <재한 국제연합 기념묘지 설치 및 유지에 관한 국제연합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이 체결되었고, 정부가 13.4만㎡의 땅을 유엔에 기증하면서 이곳은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이자 성지가 되었다. 현재는 11개국으로 구성된 독립된 국제기구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가 관리·운영 중이다.
“여기엔 2천 명의 이야기가 있어요.”유엔 기념공원관리처 홍보담당의 설명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2024년 5월 기준, 유엔기념공원 안장자의 수는 13개국 2,328명. 저마다의 이유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에겐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가 존재했다.
먼저 한국에 온 동생을 쫓아 참전했다 전사한 형과 무사히 생환했지만 형 곁에 묻히길 원해 나란히 이곳에 잠든 허시(Hearsey) 형제, 전쟁 당시 시신 수습팀으로 일하며 직접 전사자를 안장한 후 매년 유엔기념공원을 찾았고, 전우들 곁에 묻어달라는 소망에 따라 이곳에 안장된 제임스 그룬디(James Grundy) 씨 등 누구 하나 절절하지 않은 사연이 없다.
그래서일까. 유엔기념공원관리처는 진심을 담아 공원을 관리한다. 매일 아침, 꽃과 잔디를 손질하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덕분에 유엔기념공원은 잘 가꿔진 정원 같다. 묘비 곁엔 꽃이 활짝피었다. 공원을 찾은 참배객들이 “아름답다”라며 감탄하는 이유다.
몇몇 묘비 옆엔 국기가 보이기도 했다. 국기가 꽂힌 묘비의 주인은 수십 년 전 바로 오늘, 세상을 떠난 ‘오늘의 추모용사’다. 사망일에 맞춰 그날의 추모용사에게 꽃과 각 나라의 국기를 올린단다. 365일 쉼 없이 매일.
매일 오전 10시에는 유엔기 게양식이 열린다. 공원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상징구역에서 정중하게 유엔기를 옮기고, 게양하고, 경례를 하는 엄숙한 의식. 1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행사지만 마음이 절로 경건해진다.
공원에는 아름다움에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의 공간이 많다. 참전국의 국기가 펄럭이는 상징구역과 주묘역, 생환 후 이곳에 묻히길 희망한 분들을 모신 참전용사묘역, 전사한 유엔군 40,896명의 이름을 새긴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6.25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부가 최초로 사용한 유엔기가 전시된 기념관 등이다.
이 많은 곳을 보기에 앞서 추모관에 들러보자. 1964년에 지어진 삼각형의 건물은 건축가 김중업이 전몰장병들의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고려하여 설계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둘러싸인 공간에서는 6.25전쟁과 유엔군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상영한다.
영상 속 “유엔군들의 희생을 기억하길 바랍니다”라는 유가족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오늘은 유엔군의 내일과 맞바꾼 것이라는 말이 마음을 울렸다. 그러니 영상을 꼭 보길 추천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정을 시작한다면 많은 게 달리 보일 테다. 바로 옆엔 부산박물관이 있으니 함께 둘러봐도 좋겠다.
유엔기념공원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유엔평화기념관이 나온다. 유엔 참전국과 참전 용사들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한 세계 유일의 기념관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 협력망 박물관이기도 하다. 유엔평화기념관은 2014년 11월 11일에 문을 열었다. 매년 11월 11일은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이 열리는 날이기에 더욱 뜻깊다.
기념관에는 6.25전쟁의 시작부터 정전협정까지의 과정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의 상황이 담긴 사진과 신문 등 다양한 전시품과 전투를 실감 나게 재현한 디오라마가 1층 6.25전쟁실을 꽉 채운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27일까지 3년 1개월, 장장 1,129일의 기록이다. 그 안에서 유엔군 창설과 부산항 입항, 유엔군의 활약과 희생을 다룬다.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유엔군과 참전국을 집중 조명한다. 22개 참전국의 역할과 지원을 중심으로 각국의 군복과 훈장, 군사용품, 사진 등 유물이 전시 행렬을 이룬다. 전시품은 기증을 받거나 기념관에서 구입한 것들로, 앞으로 계속 채워나갈 계획이란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올해는 6.25전쟁 관련 소장품 모으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6.25전쟁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청춘이 담긴 전시를 찬찬히 둘러보다 한곳에서 멈추었다. 전시의 끝에서 마주한 건 참전 용사들의 편지와 영상 그리고 추모공간이었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잊지 않았듯이.(We have not forgotten about you. As how you did not forget us.)” 벽에 쓰인 한 문장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감사함 그리고 그 마음을 잠시나마 잊고 살았던 데 대한 반성이 교차했다. 꽤 오래 멈춰 서서 눈앞의 문장을 아로새겼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부산에서 만나는 유엔군의 기록, 그 마지막을 위해 유엔기념공원과 유엔평화기념관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임시수도기념관과 부산근현대사역사관을 목적지로 삼았다.
전쟁이 일어나자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광복 직후 30만 명 정도였던 부산 인구는 1951년 84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전쟁 기간 동안 부산은 임시수도의 역할을 했다. 그때의 부산을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임시수도기념관과 부산근현대역사관이다.
임시수도기념관의 중심은 대통령관저다. 1926년에 경상남도지사 관사로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은 이승만 대통령내외와 비서진이 머물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에서 유엔 관계자들과의 외교활동이 이루어졌고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대통령관저 뒤편에는 전시관이 있다. 전쟁터로 보내는 편지와 군번줄, 부산으로 모여든 피란민의 삶이 담겼다. 그렇게 모인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옛 시장과 학교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야외전시장에서 영문판 『한국화보(1951~1955)』속 부산의 모습과 천막 형태의 피란 학교를 만나는 것 역시 특별한 경험이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은 1963년에 지어진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을 새 단장해 올해 1월 문을 열었다. 1876년 부산개항부터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역사를 촘촘히 보여준다. 특히 부산의 근현대사에서 전쟁 중 지원과 전후 재건을 다루는 데 유엔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유엔군과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구호와 원조, 재건 활동, 직업훈련과 교육 등 광범위한 활동을 전시로 만날 수 있다. 세계가 우리를 돕고 우리가 서로를 돕던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이곳, 부산에 남아 있었다.
오늘을 만든 건 어제다. 많은 이들의 어제가 모이고 쌓여 오늘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오늘 역시 마찬가지. 자신의 내일을 바쳐 우리의 오늘을 만들어 준이들이 있었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기에 지나가고 흘러갔다 한들 쉽게 잊을 수는 없다.
마음의 무게, 마음의 깊이, 마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들이 우리를 잊지 않았듯 우리도 그들을 잊지 않았다는걸 의미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