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소개합니다

어린이와 성인이 함께 체험하고 즐기는‘말랑말랑 현대사 놀이터 전쟁유산,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함께 걷는 광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어린이와 성인이 함께 체험하고 즐기는‘말랑말랑 현대사 놀이터’

2021년부터 운영되었던 박물관 4층 체험관이 ‘말랑말랑 현대사 놀이터’로 이름을 바꾸고 새 단장을 마쳤다.
1층에 위치했던 어린이박물관이 더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체험관과 통합되면서 개편이 추진되었다.

글 | 안주영 교육과 학예연구사

이번 개편에서는 현대사를 살아온 10명의 가상 인물을 통해 다양한 세대의 경험과 시대의 정보를 이해하는 기존 전시의 취지를 살리면서 유아·어린이 관람객 대상 체험 전시 내용을 보강하였다. 관람객들이 친근하게 체험형 전시에 접근하여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안내데스크 및 체험카드 발급 코너와 유아·어린이 관람객들이 즐길 수 있는 <직업 찾기>, <휴게 공간> 코너를 신설하였다. 관람객들의 관심과 흥미가 높았던 <스무 살이 되던 해>, <어제의 식탁>, <건강이 최고>, <긴급 통화>, <인생 네 컷>, <랄랄라> 코너 등은 유지하였다.

4층에 도착하면 복도 벽면의 화면에서 10명의 가상 캐릭터들이 반겨준다. 캐릭터를 따라오면 ‘말랑말랑 현대사 놀이터’입구에 도착한다. 해방둥이세대, 베이비부머세대, 86세대, IMF세대, 밀레니얼세대의 캐릭터들에 대한정보를 확인한 후 체험해 보고 싶은 캐릭터의 체험 카드를 발급 받는다. 선택이 어렵다면 밸런스 게임으로 나와 공감대가 비슷한 세대를 알아볼 수 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코너에서는 각 세대의 인물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일어났던 사건들을 신문 스크랩북 형식으로 보여준다. 성인이 되었을 때 맞이하는 사건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함께 걷는 광장> 체험 코너에서는 해당 세대의 인물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현대사의 주요 역사에 내가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 코너에서는 ‘목소리를 높여요’, ‘춤을 춰요’, ‘구경해요’, ‘이야기를 들어요’, ‘응원해요’의 체험물을 추가하여 어린이 관람객들이 현대사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마지막 체험카드 코너에서는 기존의 인기 있는 <인생 네 컷>을 그대로 유지하여 각 세대 인물의 주요 사건에 관람객들이 재미있는 표정으로 사진을 촬영하여 기념품으로 소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외에도 기존의 <스펙 쌓기> 코너를 유아·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직업 찾기> 코너로 개편하였다. 이 코너에서는 시대별 인기있는 직업, 사라진 직업, 시대를 반영한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직업별 캐릭터와 사진 찍기, 색칠하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어린이 및 가족 관람객들의 휴게 공간을 확보하여 다양한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이번 ‘말랑말랑 현대사 놀이터’의 개편은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함께 체험하고 현대사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전시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양한 세대의 체험을 통해 서로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어린이들과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등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현대사 체험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전쟁유산,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전쟁은 인간의 물질문명과 생존환경을 파괴하지만, 전쟁의 상처 위에 다시 삶이 쌓이며 참상의 흔적은 점차 옅어진다.
그럼에도 전쟁의 비극과 고통은 관련 ‘유물’과 ‘공간’을 통해, 그리고‘기념비’나 ‘예술’의 형식을 통해 후대에 전달되고 있으며
이들은 ‘불편문화유산(Difficult Heritage)’또는 ‘부정적 문화유산(Negative Heritag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글 | 서원주 전쟁기념관 학예연구관

기념비로 세워진 전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테르모필레 전투>

레오니다스(Leonidas) 왕의 동상 ⒸWikipedia
무기를 넘기고 항복할 것을 요구하는 페르시아 사신에게 그가 한 말
- “와서 가져가라(Molon Lave)” -이 새겨져 있다.

파괴의 속성을 가진 전쟁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워진다. 더구나 성이나 도시 밖에서 벌어지는 야전(野戰)의 경우 그 정확한 위치조차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테르모필레(Thermopylae)는 그리스 동부 해안에 위치한 요충지로서 기원전 480년에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의 전적지이다. <마라톤 전투>에서 패한 페르시아는 크세르크세스(Xerxes)가 즉위하자 10년간의 정전을 깨고 그리스 본토를 2차로 침공했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Leonidas)는 300명의 최정예 스파르타군을 비롯한 약 7,000명의 군사들과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사흘간 방어전을 벌여 페르시아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전사했다. 이 이야기는 스파르타의 용맹성을 알리는 전설이 되었고, 현재 테르모필레를 지나는 도로변에는 레오니다스 왕이 장창을 높이 들고 선 동상의 모습으로 2,500년 전 그들의 희생을 기념하고 있다.

연설로 남은 가치와 신념

미국 남북전쟁 <게티스버그 전투>

게티스버그 국립묘지에 세워진 링컨연설기념비 (Lincoln Address Memorial) ⒸWikipedia

게티즈버그(Gettysburg)는 워싱턴 DC 북부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의 작은 마을이다. 1861년 3월 노예제도를 강경하게 반대하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미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노예제를 지지하던 미국 남부의 주들은 미연합국(남부연합, CSA)을 수립하고 미합중국(북부연합, US)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링컨 대통령이 이들의 선언을 미합중국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자 남군의 선제공격으로 4년간의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간 벌어진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북군이 승리하자 전쟁의 판세가 북측으로 기울었다. 4개월 후 게티즈버그에는 3,500명에 달하는 전사자들을 위한 <국립묘지(Gettysburg National Cemetery)> 헌정식이 열렸고, 링컨 대통령의 짧은 헌정사는 ‘게티스버그 연설’로 불리며 무엇을 위해 그들이 싸워야 했는지를 역사에 남겼다. 그로부터 약 2년 후에 남북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났고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현재 국립묘지와 전장은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 (National Military Park)>으로 지정되어 공개되고 있다.

꽃으로 피어난 죽음

제1차 세계대전 벨기에 <이프르 전투>

호주 전쟁기념관(Australian War Memorial) 전사자 명비의 양귀비꽃 ⓒTroy Mortier

이프르(Ypres)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 서부의 작은 도시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독일은 당시 중립국이던 벨기에를 통해 프랑스를 포위하려 하였고, 벨기에-프랑스 국경 근처에 위치한 이프르는 독일제국과 연합국의 격전지가 되었다. 1915년 <제2차 이프르 전투>에서는 연합군의 일원인 캐나다군이 하루에 3천 명 이상 전사하기도 했다.
이프르 들판에 널린 전사자들의 시신 사이로 피어난 개양귀비(poppy)를 본 캐나다 육군 군의관 존 매크레이(John McCrae) 중령은 ‘플랑드르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라는 시에 당시의 경관과 자신의 심경을 담았다. 이 시가 유명해지자 개양귀비는 영연방 국가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추도하는 꽃으로 지정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1월 11일, 종전기념일(Remembrance Day)에 양귀비꽃 모양 배지를 옷에 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11월 11일 11시에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기념식을 하고 있는데 영연방 국가 대표들은 개양귀비를 달고 참석한다.

시간이 멈춘 학살의 현장

제2차 세계대전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정문 ⓒFrederick Wallace

입구에 ‘노동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 (Arbeit macht Frei)’라는 표어가 보인다.

오시비엥침(Oświęcim)은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독일어 명칭인 아우슈비츠(Auschwitz)로 잘 알려져있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최악의 피해가 발생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폴란드는 독소 양국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으며 나치 독일은 폴란드 서부를 독일 영토로 합병하고 나머지 지역은 5개의 속령으로 나누어 통치했다. 1940년 나치 독일은 크라쿠프(Kraków) 속령의 폴란드군 병영을 개조하여 강제수용소를 건설하였고 종전까지 3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건설되었다.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전쟁포로 외에도 정치범, 장애인, 동성애자, 집시(로마) 등이 있으며, 약 150만 명[UNESCO 자료]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최대 규모인 제2수용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Auschwitz Birkenau)>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에 등재되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비극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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