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추억과 함께
살아 숨 쉬는 한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절대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최신 스마트폰 모델을 사려고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려본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거니와, 한번 구매하면 망가질 때까지 사용하는 약간은 게으른 절약형 타입이다. 아직도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으니 내가 어떤 종류의 소비자인지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K-컬처(culture) 방면에서만큼은 유독 선두를 달리는 편이다. 글 폴 카버 유튜버, 프리랜서 번역가
1990년대 중반 한국어학당 학생으로 한국에 처음 왔던 나는, 수업이 끝나면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를 좋아했는데 그럴 때마다 거리거리 여름 한 자락을 흥겹게 채우던 빠른 템포의 한국가요들은 집에 돌아가는 내내 내 귓가에 맴돌았다. 저녁이 되면 가끔 다른 어학당 친구들과 레몬 소주를 들이켜고 난 후 2~3차로 노래방에 갔는데, 같은 음악을 하루 종일 듣고 다녔어도 한국어가 서툰 우리 모두 한국가요를 한 소절한 소절 따라 부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 여름에 들었던 가요는 특유의 템포와 가락 때문인지 금방 흥얼거리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는데 급기야 난 길거리 리어카에서 카세트테이프 몇 개를 사기에 이를 정도가 됐다.
한국어학당에서의 짧은 여름학기가 끝나고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내 영국 친구들은 스파이스 걸스(Spice Gilrs)나 오아시스(Oasis) 노래를 워크맨에 꽂고 돌아다녔지만 나는 DJ DOC, 쿨, 클론, 룰라의 노래가 잔뜩 들어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돌아다녔다. 많은 사람이 아마도 싸이의 ‘강남스타일’ 혹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BTS 정도를 한류 문화의 이정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 틀렸다. 사실 한국 문화의 세계 첫 수출은 훨씬 이전에 이미 시작됐다. 한 예로 내가 아는 한 외국 친구는 H.O.T. 때문에 한국에 눌러살게 됐다. 시간을 정확히 따져보자면 H.O.T.가 ‘강남스타일’보다 15년이나 앞서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한류와 대중문화 특별전 <우리가 사랑했던 [ ], 그리고 한류>를 보면서 우리에게 지금은 익숙한 한류의 기원이 벌써 30 년이나 지났다는 것을 알게 돼 새삼 놀라웠다. 전시회에서는 부모님 세대가 열광하던 비틀스의 앨범, 클리프 리처드와 그의 내한 공연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들을 보고 있자니 한때 영국 팝 문화가 미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하는 시기가 지금 한국 팝 문화가 영국에 유행하고 있는 현상과 오버랩이 됐다. 9월 현재만 하더라도 한국팝 가수들의 공연이 런던에서만 여덟 개 계획되거나 진행되고 있으며, 다수의 한국 드라마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티타임 대화’의 주요 주제가 되고 있다.
10대 소녀가 된 내 딸이 열광하는 BTS와 블랙핑크가 수억 회의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하는 세계 대스타가 되기까지, 그간 한류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이번 특별전에서 확인하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었다. 내가 작년 영국에 갔을 때 부모님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의 아주 작은 가게에서 한국 가수들 사진이 담긴 앨범 포스터와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코너가 따로 마련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이번 특별전의 랜덤플레이 댄스 체험 공간에서는 전 세계의 10대 소년·소녀들이 한국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똑같이 따라 부르고 추는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조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많았다. 한국의 문화가 얼마나 세계 곳곳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듯하다.
한국과 영국 문화는 비슷한 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은 듯한데도, 영국에서 한국 콘텐츠가 이토록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내가 생각해낸 가설 중 몇 가지를 나열하자면, 첫째로는 영국에는 꽃미남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영국 연예인들은 옆집 사는 ‘찰스 스타일’에 다소 거칠고 투박한 편인데 반해, 한국 연예인들은 비현실적일 정도의 무결점 무오류의 ‘백마 탄 완벽한 주인공’ 분위기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한국 아이돌은 도덕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반면 영국 아이돌은 흠집이 여기저기 있는 다소 부실한 이미지랄까? 이렇게 한국 연예인들의 백마 탄 주인공 이미지가 영국 대중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K-콘텐츠 자체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메시지가 매우 유혹적인 것도 사실이다. 한국 음악 영상들을 보면 춤 동작들이 다채롭고 현란한 가운데서도 무서울 정도로 매끄럽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밝은 색상의 배경과 세련되고 잘 꾸며진 세트장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영국은 춥고 어두우며 불쾌할 정도로 사실주의적인 배경 묘사가 주를 이룬다.
이렇게 한국과 영국 문화 차이가 극명하긴 하지만 공통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첫째로 두 나라 모두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미국적인 요소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각 문화의 특수한 상황을 적절히 혼합해왔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슈퍼 히어로 주인공이 창궐하는 시련을 이겨내고 영웅이 돼 악을 징벌하고 모든 인류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이 주를 이루는 데 반해, 한국과 영국에서는 어둡고 슬픈 엔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미국보다는 현저히 낮다. 음악을 봐도 한국과 영국 음악 모두 듣고 따라 부르기 쉬운 음악이 주류를 이루어왔기 때문에 한국의 아이돌 음악은 영국 대중에게 이미 익숙한 장르다. 또한 영국은 유럽과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오랫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기 때문에 미국의 시청자들과는 다르게 영화나 드라마를 자막으로 시청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이미 적었다. 오스카상 수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1인치 자막의 장벽’ 수상소감이 영국인들에게는 크게 적용되지 않는 결점이다. 참고로 영국의 음향효과는 역대급으로 질이 낮아서 사실상 많은 영국 시청자는 영어로 상영되는 영상을 볼 때조차 자막을 틀어놓고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특별전을 보면서 나는 그간 보고 들었던 음악과 영상들이 내 인생의 여러 시기를 거치면서 경험했던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들을 소환해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면서 듣던 음악, 대학 축제를 따라다니면서 보고 들었던 공연, 수많은 축구 경기를 관람하면서 하프타임에 듣던 밴드 음악과 녹화를 떠가면서 사수했던 드라마 및 영화, 딸과 함께 한국 연예인들의 생일을 기념하는 기념품과 스티커를 모으러 동네 커피숍을 전전하던 기억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머리를 스쳤다. 한류의 역사가 기록된 그 한편, 그 음악들과 영상 속에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한류의 미래를 어떻게 조망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한류가 단지 인류의 기억에서 일시적 유행으로 잊히는 현상이 될지, 세계적 문화 예술의 큰 물줄기를 타고 영원한 주류로 자리매김하게 될는지 말이다. 한류의 운명은 아마도 그 두 가능성의 어딘가에서 결정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현재 K-콘텐츠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잠시 더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최신 유행이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어떤 다른 대체물에 의해서 잠식되거나 반발을 살지도 모르고, 궁극적으로는 몇몇 블록버스터급 작품에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다가 조금씩 새로운 유행으로 대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최소한 나같이 한국화된 외국인에게 한류는 트렌드가 아니라 인생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 이제 내 기억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뿐 아니라 한국에 주재 하는 수많은 외국인 학생과 군인, 공공기관 및 기업의 주재원과 그 가족들도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류의 기억을 그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인생의 부분으로 채워갈 것이다. 몇 년이 흐른 뒤 그들은 한류의 추억을 안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류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 이 글의 내용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폴 카버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을 졸업했고, 한국 생활 15년차 영국 출신 유튜버 및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2016년부터 2021년 1월까지 서울특별시청에서 외국인다문화담당관, 글로벌센터운영팀장으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