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가속화된 한류 열풍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7월 19일(수)부터 9월 3일(일)까지 열렸던 한류와 대중문화 특별전 <우리가 사랑했던 [ ], 그리고 한류>와 연계해 글로벌 한류가 지속돼 국가 경제력의 원동력이 되려면 어떤 보완점과 노력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채지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여 년 전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가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가고 ‘한류’라는 용어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면서, 우리는 우리의 문화가 나라 밖으로 퍼지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즐거워하는 우리의 콘텐츠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깨닫기도 전에, 우리의 콘텐츠는 문화산업이 발달했다는 일본까지 진출했다.
당시 한국 학계에서는 일본에서 분 <겨울 연가> 붐만큼이나 ‘과연 한류가 언제까지 갈 것인가?’라는 논의가 뜨거웠다. 콘텐츠의 세계 진출을 스스로 신뢰하지 못하면서 홍콩영화처럼 곧 사그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매우 컸지만, 한류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드라마로, 케이팝(K-pop)으로, 영화로 장르를 다양화하면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미국으로, 중남미로 지역을 확장해나갔다.
사실 생존을 위해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해 상품을 수출하는 산업계에서는 ‘한류는 언제까지?’라는 질문에 답할 만큼 한가한 겨를이 없었다. 다만 피를 말리는 시청률 경쟁 속에서 소비자 취향에 맞는 양질의 드라마를 탄생시켰고, 불법복제가 판을 치던 한국 음악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려 지금의 케이팝으로 성장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척박한 대중문화산업 환경이 콘텐츠 경쟁력의 토양이 되고, 우리 콘텐츠가 세계에 진출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초기 한류 논쟁에는 “한류는 미 제국주의 문화와 일본의 천박한 문화가 합성된 싸구려 카피이며, 결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가 아니다”, “한류가 무슨 비틀스라도 되는 줄 아느냐?”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따랐다. 문화계급론적 관점을 가진 몇몇 사람들의 눈에 대중문화가 한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상이었나 보다.
대중문화는 일상생활 속 일반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울고 웃는 곳에 뿌리를 두고, 그곳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지금 ‘고급문화’로 여기는 전통문화나 클래식 음악도 대부분 당시 서민과 함께 호흡하던 문화였다.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콘텐츠가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살아남아 문화적 자산이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이다. 한류가 지속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라 함은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우리 국민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일 것이다.
현재 케이팝이나 드라마, 영화는 그 많은 우려를 불식시키며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대중문화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음식과 화장품, 패션을 알리고, 관광과 전통문화,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한국의 국가 브랜드에 매력과 문화적 이미지를 장착시켰다. 지금까지 그 어떤 외교적 활동으로도 이루지 못했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마음이 급한 분들은 그새를 못 참고 자꾸 우리의 문화 콘텐츠에 지역을 알리고 한국을 선전하는 국가적 사명을 더 얹으라 한다. 대중문화를 통해 전통을 보여주고 고급문화를 전파하라는 의무를 부여하기도 한다. 대중문화가 이룬 한류의 성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문화 장르나 타 산업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씁쓸한 마음이 든다.
한류가 진정 국가 경쟁력의 원동력이 되길 원한다면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만 급하게 한류를 찾지 말고, 대중문화 콘텐츠가 이루어낸 성과와 위상에 부합하는 적절한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동남아 국가에도 다 있다는 아레나 공연장도 이제는 번듯하게 지어야 하고, 음악 자료를 모아놓은 대중음악 자료원이나 제대로 된 영상 콘텐츠 박물관도 건립해 눈부신 우리 대중문화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 대중문화 콘텐츠가 이룩한 성과와 가치를 국가적으로 인정하고 대우하는 것이야말로 한류 지속을 위한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집 안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자식이 나가서도 인정받고 사랑받듯이 말이다.
* 이 글의 내용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