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낯설게 보기

기록영상으로 보는
현대사

아카이브 플랫폼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

요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광경은 너무 당연하게 여겨진다. 게임을 하거나 뉴스를 읽거나 지인과 메신저를 하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온라인 영상을 시청하는 경우도 많다.
유명 유튜버가 올린 영상이든, 야구나 축구 경기 하이라이트이든, 혹은 최근 드라마이든, 지하철 안에는 오락과 정보에 대한 우리의 끊임없는 욕망을 채워주는 스마트폰의 작은 스크린들로 가득하다. 스마트폰 없는 시절을 떠올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폴 카버 유튜버, 프리랜서 번역가

  • 아카이브 플랫폼에 공개된 ‘1930년대 조선’ 영상 중
    당시 경성(서울) 거리의 모습

한국현대사를 망라한 디지털 아카이브

다양한 영상물이 온라인상에 떠돌아다니기에 사람마다 즐겨보는 영상도 다르지만, 과거에는 고정된 TV 채널을 통해 송출되는 이미지가 우리 모두의 집단의식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장면이라든지, 힌덴버그 비행선의 화재 영상, 또는 최초의 달 탐사 장면 등은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일한 화면으로 목격했으니 말이다. 한국에도 그러한 영상들이 있다. 한국에 굳이 오지 않더라도 이미 알려진 이미지들을 통해서 말이다.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 개통 장면, 88올림픽 개최 영상,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의 첫 회담, 이산가족 상봉 등은 한국현대사의 주요 장면들로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의 의식을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KBS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공동으로 1904년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현대사를 망라하는 온라인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든다는 소식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라는 이름의 아카이브 플랫폼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한국의 여러 장면을 공개하고 있다.

기록영상으로 만나는 한국의 현대사

그중 몇 가지 자료를 소개하려 한다. 먼저 한국이 어떻게 올림픽 빙상종목을 휩쓰는 국가로 변모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영상이다. ‘조선의 올림픽 빙상선수단’이라고 이름 붙은 이 영상은 꽁꽁 얼어붙은 경복궁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 선수들이 1948년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훈련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시절 선수들은 70여 년이 지난 미래의 한국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릴 것이란 사실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상 속 국가대표 선수들은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펑퍼짐한 바지 차림으로 연습하고 있다. 최신식으로 지어진 빙상경기장에서 인체공학적으로 제작된 몸에 착 달라붙는 트리코(빙상복)를 입고 연습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1948년 당시 이효창 선수는 1,500미터 빙상 트랙 경기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선수에 6초 뒤지며 19번째로 결승선에 도달하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 영상은 한국이 독립 국가로서 동계올림픽에 처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최고의 빙상국가가 된 현재 한국의 시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뜻깊다.

당시 한국의 생활 풍경이 담긴 영상들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서울스케치’(1947년)와 ‘해방 후 서울’(1947년) 같은 영상을 보면 광복 이후 서울의 일상을 볼 수 있다. 지금의 서울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드문드문 붙은 낮은 지붕의 집들, 마을의 공동 우물, 마차들, 지게를 짊어진 사람들로 채워졌던 서울 거리가 이제는 높게 솟은 아파트와 빌딩 숲, 종일 막히는 도로, 스마트폰을 들고 멋지게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다만 재미있는 사실은, 70여 년 전 서울을 보여주는 해당 영상들에서 현재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몇몇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속담 ‘겉은 변해도 알맹이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조선의 올림픽 빙상선수단(1947년)
조선의 올림픽 빙상선수단(1947년)
서울스케치(1947년)
서울스케치(1947년)
해방 후 서울(1947년)
해방 후 서울(1947년)
서울역 광장(1945년)
하양 장터(1948년)
하양 장터(1948년)
영친왕과 이토 히로부미(1909년)

‘서울역 광장’(1945년)을 보면 열차가 한강철교 위를 지나가고 있다. 노량진 일대를 지나가는데, 초록색 벌판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수산시장도, 아파트도 없다. 하지만 한강철교 덕분에 기차가 지나가는 지역이 노량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방 후 서울’ 영상에는 세종로 일대가 담겨 있다. 차량이 많지 않던 그 시절에도 세종로는 지금처럼 널찍했다.

또한 ‘해방 후 서울’이나 ‘하양 장터’(1948년) 영상을 보면 당시 한국의 시장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짚으로 만든 커다란 가마니 위에 쌀과 잡곡들이 즐비하다. 저쪽 한편에는 냉동된 생선 더미가 보이는데, 또 다른 한편에 어떤 상인이 붕어빵을 팔고 있다. 바퀴가 달린 운반구 위에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철제 틀 위로 밀가루 같은 것을 부어 만들어 팔고 있다. 카메라를 호기심 어린 얼굴로 쳐다보는 어린아이들은 이제는 어르신들이 되어 서울 어딘가에 여전히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변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말이다.

다음 영상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1897~1970)이 일본 유학 시절 이토 히로부미 등과 해변을 거닐고 그네를 타는 모습이 담긴 ‘영친왕과 이토 히로부미’이다. 1909년에 촬영된 이 영상은 현재 서울을 사는 나에게는 꽤 의미가 있었다. 최근 내가 엑스트라로 출연한 영화 <하얼빈>(우민호 감독, 현빈 주연)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기 전에 이 영상을 본 것은 내게 매우 유용한 경험이 됐다. 영화 속 분장이나 복장이 실제 사건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보여주는지 알게 됐을 뿐 아니라, 배우들이 등장인물들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자료들이 없었다면 역사를 상상 속에서 재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카이브 플랫폼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 소개된 기록영상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일깨우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에서도 이런 기록영상을 볼 수 있는 아카이브가 구축돼 있어서 영국 사극의 무대 장면이나 다큐멘터리 자료 등의 용도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브리티시 파테 뉴스(Pathe News)라는 영국의 한 단체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찍었던 뉴스 영상들을 제작하고 있다. 이런 뉴스 자료들은 브리티시 파테 뉴스가 관리하는 누리집( https://www.britishpathe.com/)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그중에는 2023년 4월 기준 2,278개의 한국 관련 영상들도 올라와 있는데, 주로 1920년대부터 1980년 사이에 제작된 자료들로써 6·25 전쟁 당시 최전방에서 일어나던 전투 장면이나 한국의 주요 스포츠 기록영상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아직도 6·25 전쟁 영국 참전용사들을 초대해서 주요 격전지와 기념비들을 돌아보는 행사를 주최하고 있는데 이러한 초대에 응할 수 있는 참전군인들이 해마다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슬프다. 즉, 현대사를 알기 위해 그분들을 찾아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니 이러한 기록영상이 더욱 뜻깊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매일 보던 먹방 영상은 잠시 정지해두자. 대신 디지털 아카이브 플랫폼 <움직이는 현대사: 선명한 역사>에 접속해 현재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잠시 일깨워보는 것은 어떨까?

* 이 글의 내용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폴 카버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을 졸업했고, 한국 생활 15년차 영국 출신 유튜버 및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2016년부터 2021년 1월까지 서울특별시청에서 외국인다문화담당관, 글로벌센터운영팀장으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