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
역사공감 초대석

더 나은 미래 위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

역사(歷史)는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을 담은 것이기에, 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오랜 세월 터득한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 10년을 보내고, 이제 더 찬란하게 빛날 10년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도 역시 그 변천의 과정을 체험하고 이해하는 분들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초대석에는 그러한 이야기를 들려줄 두 분을 모셨다. 첫 번째 초대석에서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을 맡아 개관에 힘썼던 ‘국내 언론과 역사계의 산 증인’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을 모셨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10월 27일(목)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제2강의실에서 ‘통합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돌아보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준비하는 그를 만났다. 사진 김성재 싸우나스튜디오

‘근대화 혁명’이라는 성취를 잘 표현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우리나라 행정의 중심지인 광화문 앞길에 자리 잡은 지 10년이 됐습니다.

김진현 |청와대부터 광화문을 거쳐 광화문 네거리와 남산에 이르는 광화문 일대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지리적인 증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박물관을 좀 더 확장해서 박물관이 위치한 쪽은 역사의 거리, 세종문화회관이 자리 잡은 쪽은 문화예술의 거리로 조성되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가치는 지금보다 더 올라갈 거예요.

건립위원장을 지내신 분으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지난 10년에 대한 감회가 어떠세요?

김 |건립 전부터 존재했던 몇 가지 역사적 논쟁이 아직도 지속된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불필요한 논쟁들이 빨리 해소되길 바랍니다. 이념이나 자신의 주장에만 매몰되지 않았으면 해요. 정치 관계자들도 역사를 이용하지 않았으면 하고요. 전체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근대화 혁명’이라는 큰 성취를 잘 표현하고 보여주었습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적 성취는 대단했어요. 시민과 언론의 자유, 1인당 국민소득과 국가 GDP 상승, 산업의 중공업화, 교육의 확장과 문화예술의 다원화, 외교의 넓이 등 다양한 측면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였죠. 저는 이것이 대한민국의 근대화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발전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어요.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시간순으로 펼쳐지는 상설전시 역사관에는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습니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전시 유물이 있으실까요?

김 |건립을 준비할 때 1960~70년대 독일로 건너갔던 간호사, 광부분들께서 관련 자료를 적극적으로 기증해주셨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을 기점으로 전후 역사에서 가장 다른 것 중 하나가 ‘해외 진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자기 필요나 의지에 따라 해외로 간 경우가 드물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홋카이도나 만주로 강제 동원된 경우가 많았고, 조선 시대를 봐도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 등 외세 침략 때 잡혀간 경우가 많았어요. 반면 파독 간호사나 광부들은 스스로 선택해서 해외로 건너갔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세계 속에서 빛나는 한국인들의 활약은 정말 놀랍습니다.

김 |저는 한국인을 ‘한인(韓人)’이라고 표현합니다. 재외 동포를 포함한 모든 한민족을 ‘한인’이라 통칭해서 부르죠. 한인의 한인다움이 폭발하기 시작한 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한인은 자유와 개방이 주어진 곳이면 어디든 가서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한인이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어요. 정부 장관을 지낸 분들(플뢰르 펠르랭, 장뱅상 플라세 등)도 있으니까요. 이러한 한인의 폭발적인 잠재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어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지리학자 이자벨라 버드 비숍이 1898년 펴낸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이나 그 밖에 당시 외국인들이 저술한 책들을 보면 조선인들은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학문 습득 능력이 아주 빠르다고 말하는 등 우리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현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이사장님의 회고록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을 보면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지칭하셨어요.
그만큼 다양한 기관에서 활동하셨는데요.
그중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을 맡으신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김 |운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아버님은 항일 민족 단체 ‘신간회’에 관여하셨던 분이에요. 여러 신문사에서 일하기도 하셨고요. 해방 후 아버님은 백범 김구 선생의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하셨어요. 아버님의 영향으로 언론인을 꿈꿨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과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백범 선생이 1947년 펴낸 『백범일지』도 당시 초판을 사서 봤습니다. 그걸 읽은 게 초등학생 때였는데, 그때를 계기로 공공의식과 민족의식을 키울 수 있었죠. 언론인이 되고 나서도 신간회기념사업회, 안재홍기념사업회,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등 역사 관련 사업회를 많이 맡았어요. 아버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가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연이 이어지다 보니 결국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까지 맡게 된 겁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새로운 10년을 준비합니다.
국가 대표 근현대사 박물관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여러 박물관, 교육부 산하의 국사편찬위원회, 그리고 대한민국 주요 지식의 원천을 다루는 대학교들이 힘을 합쳐서 통합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1945년 이후 독립한 140여 개의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와 선진화를 모두 이뤘어요. 대단한 업적을 이뤘음에도 우리 안에서는 아직도 자기 정체성에 대한 합의가 안 되고 있습니다. 이런 지속적인 분열은 우리 역사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어른이라면 이런 현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해요.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는 물론 실패까지 모두 끌어안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누구 하나 때문이 아니에요. 무수히 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겁니다. 또래끼리 모이면 이런 말을 자주 나눕니다. ‘우리 세대는 아버지 세대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잘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식이나 손자 세대들은 과연 우리 세대보다 잘 살고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과연 우리 세대는 성공한 것일까?’ 지금 현세대가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는 게 우리의 사명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누가 잘났다는 소리는 그만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통합해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