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벽화가 설치된 2022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외관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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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제안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간 모든 것은 역사가 된다. 박물관은 갈수록 쌓이는 역사와 다가오는 미래를 어떻게 대비하고 맞이해야 할까.
개관 10주년을 맞아 초등학교 교사이자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집필 위원으로 여러 박물관의 교육 자문을 수행해온 배성호 교사의 글을 싣는다.
그의 글을 통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새로운 미래를 가늠해보자.(편집자 주)
글 배성호 서울 송중초등학교 교사

광화문 한복판에 자리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우리 현대사와 박물관이 생생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뜻깊은 공간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100여 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꿈꿔온 나라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꿈꾸는 미래를 더불어 모색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함께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높아진 우리나라의 국격처럼 개관 이후 끊임없이 성찰하고 소통하며 상설전시 역사관과 체험관, 주제관을 개편하는 등 많은 변화를 만들어왔다.

실감형 영상전시를 선보이는 주제관Ⅱ <광고, 세상을 향한 고백>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체험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체험관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새로운 미래를 위한 제안

1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어린이, 청소년들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모색하는 장으로 새롭게 자리 잡길 기대하고 있다. 과거 역사만을 살피는 회고적 공간이 아니라 미래 세대와 소통하는 ‘오래된 미래’를 열어가길 바라며, 현직 교사이자 국내 여러 박물관의 교육 자문 역할을 맡은 경험과 연구 사례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세 가지를 제안한다.

  • 박물관 체험학습에서 느낀 불편함을 직접 포스터로 그린 초등학생의

    작품. 추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실렸다. © 배성호

첫째, 어린이와 청소년 관람객을 위한 박물관 공간은 물론 운영위원회에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사실 박물관의 주된 관람객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하지만 정작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박물관 공간과 교육 프로그램은 미진한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박물관들은 저마다 체험학습은 물론 어린이와 청소년 관람객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그들이 비바람이나 미세 먼지 등을 피해 도시락 먹을 장소는 고려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에 초등학생들이 직접 편지를 써서 국립중앙박물관을 바꾼 사례가 있었다. 당시 서울 수송초등학교 6학년 학생 몇 명이 이런 불편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고, 그 내용이 담긴 편지는 한 언론에 게재됐다.1) 다음은 그 편지의 일부분이다.

“특히 체험학습으로 단체로 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체험학습이니까 도시락을 싸 오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실내에서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을 공간이 없습니다. 물론 밖에 계단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체험학습 간 날 폭염으로 찌고, 비나 황사가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략) 계단이 도시락을 먹기에 적당한 장소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계단은 말 그대로 계단일 뿐입니다. 계단은 비나 황사를 막아주지 못하고 뜨거운 열기도 식혀주지 못합니다. 여름에 폭염이 오면 일사병, 열사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비가 오면 그냥 식당에서 사 먹거나 돈이 없으면 굶어야 합니다. 황사도 비와 마찬가지입니다.”

이후 해당 박물관은 2013년 어린이, 청소년이 실내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고, 이러한 과정은 2014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민주주의’ 단원에 소개되기도 했다. 관람객인 학생이 직접 문제를 제기해 변화를 끌어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운영위원회 등을 자체 운영하면서 학생과 교사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면 어떨까? 이러한 운영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관람객들을 환대하며 존중하는 공간’이라는 좋은 사례가 돼 여타 박물관의 모범이 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교육 프로그램은 학교 현장과 유적지, 박물관 등 다양한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둘째, 교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박물관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들이 어린이, 청소년과 가장 많이 소통하고 있는 현장 교사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연구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뿐만 아니라 2022년 3월에 새로 문을 연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도 교사 모임과 함께 전시 교육 워크숍과 연수 등을 진행하며 전시와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폭넓게 나누고 있다. 이런 과정이 도입된다면 현재보다 더 다채롭고 알찬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질문을 통해 관람객과 소통하는 홀로코스트기념관

    © 배성호
  • 홀로코스트기념관에서 생존자가 관람객의 질문에 답변하며 소통하는 모습

    © 배성호

셋째, 함께 공명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물관 전시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많은 양의 전시 내용이 일방적으로 전달될 경우, 역설적으로 관람객의 생각할 여지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 주요 역사적 사건의 원인과 경과, 결과, 의의만을 딱딱하게 제시한다면 막상 박물관을 찾는 학생들은 도식적인 내용에만 갇히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점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와 소통하며 생각을 열어갈 수 있도록 ‘질문이 있는 전시’를 모색하면 좋겠다. 최근 이런 변화는 국내외에서 많이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특별전과 새롭게 개관한 세계문화관에서 이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직접 방문한 바 있는 미국 워싱턴 홀로코스트기념관도 마찬가지였다. 질문을 던지는 패널 설치는 관람객에게 큰 변화를 가져온다. 관람하면서 그만큼 생각할 여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체험관과 주제관 등을 통해 어린이, 청소년은 물론 일반 대중이 우리의 현대사를 쉽고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전시 기술 및 장치를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다 홀로코스트기념관처럼 관람객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질문을 제시하며 전시를 구성하고,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더욱 많은 관람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자라나는 어린이·청소년과 유쾌하게 소통하는 공간, 대한민국의 100년 앞을 활기차게 내다보며 희망을 만드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