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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난

내 고향의 추억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탐방기

추운 겨울날, 인천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을 방문했다.
사실 ‘달동네’라는 개념을 처음 들어서 생소했는데,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 이내 그 뜻이 내 가슴에 와닿았다.
산꼭대기에 있어 달에 가깝게 자리 잡아 달동네라 불린다고 했다.
박물관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어릴 적 내 고향과 흡사한 모습에 감격했다.
글 라힐 아마도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국인 해설사
사진 제공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 필자 라힐 아마도바

1960~70년대 인천 달동네로 떠나는 시간여행

개항기 이후 일본인들이 인천 중구 정동 지역에 몰려들면서, 그곳에 살던 조선인들은 수도국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산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配水池)를 설치하면서 이름 붙여진 수도국산의 본래 이름은 만수산 또는 송림산이었다. 이름처럼 산 언덕에 소나무가 많았는데, 사람들이 이곳의 소나무를 베어내고 정착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6·25 전쟁 때에는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지방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이하 달동네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은 1960~70년대 달동네의 상점들을 재현해놓은 1층 전시공간과 1971년 11월 달동네 마을의 풍경을 재현한 지하 전시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달동네 마을과 실존하는 인물들을 정교하게 재현해놓은 덕분에,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치 1960~70년대 인천 달동네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닮은 점이 많은 한국의 1960~70년대와
아제르바이잔의 1990년대

내가 태어난 아제르바이잔의 1960~70년대는 부모님 세대의 시대였다. 반면 달동네박물관에서 본 1960~70년대 한국의 모습은 아제르바이잔의 1990년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1층 전시실에는 사진관, 양잠점, 문구점, 다방, 이발소 등 당시 달동네의 상점들이 줄지어 자리 잡아 관람객들을 맞았는데, 그중 문구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초등학생들의 참고서였던 동아전과·표준전과는 내가 초등학교 때 배웠던 책과 형태가 비슷해 더 눈에 띄었다. 책값이 비싸서 선배들이 사용한 책을 구해 방학 동안 공부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전시실을 둘러보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다. 소련 붕괴 후 1991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때 황폐해진 아제르바이잔 영토와 사람들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1960~70년대 한국 달동네 서민들의 생활상은 당시 아제르바이잔 서민들의 생활상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 유사함을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물지게를 진 소년의 모습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아이들은 전쟁 중에도 집에 보탬이 되기 위해 신문을 팔고, 구두를 닦았다. 두 나라 모두 힘들게 살던 시절 아이들의 가슴 아픈 모습이 닮아 있었다. 또한, 변소 앞에서 줄 서는 전시 모형 앞에서는, 난민촌에 살던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층마다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 기다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달동네 주방의 모습은 아제르바이잔의 사지(sac)1) 문화를 연상케 했다. 가마솥 솥뚜껑을 뒤집어 돼지비계로 기름칠을 하고 구워 먹는 부침개는 마치 아제르바이잔의 구탑(qutab)2)을 만드는 모습 같았다.

그 시절 달동네 마을을 생동감 있게 재현해놓은 지하 전시공간을 걸으며 아제르바이잔과 한국의 거리는 멀지만, 문화적으로는 유사하다고 느꼈다. 옹기종기 모여 온 동네가 하나의 가족처럼 살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먹을 것을 나눠 먹는 전시 풍경은 내가 어릴 적 난민촌에서 직접 체험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으니 말이다. 전쟁 당시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면 여자들과 아이들만 남은 난민촌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한 가족처럼 지냈다. 먹을 것을 만들면 앞집, 옆집 모두 나누어 먹었다. 힘든 환경에서도 따뜻한 정(情)을 나누는 문화는 어디든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짠했다.

지금은 비록 과거에 비해 삭막해졌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을 간직하고 나누는 문화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로 한국에 산 지 14년 차인 나는 그 정을 자주 느꼈다. 그래서일까. 한국은 지금 내게 낯설지 않은, 가족 같은 나라다.

현재의 한국을 만든 영웅들과 만나며

한국에 오기 전에 정말로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1960년대까지 정말 힘들게 살았던 이 나라가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세계 강국이 되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달동네박물관을 돌아보며 그 해답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1960~70년대에 힘들게 살아온 한국인들이 현재의 한국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살며 일해온 그분들이야말로 현재의 한국을 만드는 데 이바지한 영웅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앞으로 더욱 성장하려면 이런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며 역사를 배우고, 그 역사 속의 교훈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이 한 나라가 발전하는 올바른 길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잊고 싶은 힘들었던 기억, 누군가에겐 아련한 추억, 누군가에겐 신기함으로 다가오는 달동네 풍경…. 내 아이가 더 자랐을 때 다시 한번 방문해 그 시절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2005년 10월 25일에 개관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우리나라 1960~70년대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테마로 하는 체험 중심의 근현대생활사박물관이다. 기성세대는 옛 시절의 향수를 느끼고, 현 세대들은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소통과 교육의 장이 되고자 박물관의 기본 역할과 기능의 수행은 물론이고, 시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박물관 상설전시는 1971년 11월의 어느 날, 인천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구멍가게, 이발소, 솜틀집과 같은 공간 속 삶을 보여주고 있다. 공동수도와 변소, 작은방에서 온 식구가 식사를 하는 등의 당시 생활상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관람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표 마감은 종료 30분 전)

휴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날 당일

관람료

어른 1,000원 / 청소년 700원

주소

인천광역시 동구 솔빛로 51(송현동)

문의

032-770-61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