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연 <뮤즈살롱>
<뮤즈살롱>에서 조진주의 바이올린과 박종해의 피아노는 때로는 또각거리며
관람객들의 귀를 간질였고, 때로는 무용수의 발소리처럼 사뿐사뿐 듣는 이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격정적으로 폭발하다가, 부드럽게 감싸 안듯 낭만적이었다. 지난 근현대사의 이야기들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꿈틀거리며 살아 있듯, 몇 백 전에 만들어진
악보 속 음표들이 그들의 연주 속에서 드라마틱하게 되살아났다.
사진 김성재 싸우나스튜디오
지난 11월 24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다목적홀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로 활동 중인 조진주와 차세대 피아니스트 박종해의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연주가 돋보이는 문화공연 <뮤즈살롱>이 열렸다. 박물관을 찾은 오프라인 관객은 물론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온라인 관객들의 마음이 전해지며 공연장 분위기는 금세 따뜻해졌다.
박종해의 피아노가 탄탄하게 쌓아놓은 토대 위에서 조진주는 2020년 소니에서 발매한 앨범 《변덕쟁이 아가씨(La Capricieuse)》와 2021년 지휘자 마티유 헤르초크(Mathieu Herzog)와 협연한 앨범 《The Saint-Saëns Album》의 주요 수록곡을 들려줬다. 첫 곡으로 연주한 비아니아프스키(Wieniawski)의 <스케르초 타란텔라(Scherzo Tarantella)>부터 강렬했다. ‘타란텔라’는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의 춤곡으로 독거미에게 물린 사람이 해독하기 위해 격렬하게 춤을 춘다는 데서 비롯된 만큼 무아지경의 리듬이 반복되는 특징이 있다. 바이올린을 조율하며 공연장에 소리를 처음으로 흐트러트린 조진주는 이내 머리카락을 휘날릴 정도의 격정적인 연주로 무아지경의 곡 분위기를 생동감 넘치게 전달했다. 템포를 조절하며 능수능란하게 곡을 끌고 가다 경쾌하게 마무리 짓는 조진주의 첫 연주에 관람객들은 연신 박수를 쏟아냈다.
캐나다 맥길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인 조진주는 여러 공연차 한국에 내한했다. 하지만 시차의 여파 따위 개의치 않은 채 시종일관 밝고 통통 튀는 목소리로 진행자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공연자의 태도를 보면 그날 공연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데 이날 조진주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는 그의 바이올린 연주에도 그대로 전이됐다.
두 번째로 연주한 엘가(Edward Elgar)의 <변덕쟁이 아가씨>는 2020년 발매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그녀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곡이다. 남성의 시각에서 표현되기도 했던 ‘변덕쟁이 아가씨’를 조진주는 ‘본인의 감정과 의향에 거리낌이 없는 본능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표현했다. 서정적이고 따뜻한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읽힌 엘가의 곡에 이어서는 네 곡 모두 생상스(Camille Saint-Saëns)의 작품들로 채웠다.
생상스는 ‘프랑스의 모차르트’라 불린 음악 천재로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우리에게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공연 배경음악으로 유명한 <죽음의 무도>와 <동물의 사육제>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조진주는 생상스라는 인물에 호기심을 느껴 탐구해왔으며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조진주가 연주하는 생상스의 네 곡은 서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이고, 때로는 낭만적이고 경쾌했다. 조진주는 어쩌면 이토록 다채로운 색채감을 본인의 색이라 생각한 듯싶다. 특히 연주에 몰입해 곡 분위기에 따라 변하는 얼굴 표정과 중간 중간 보여준 화려한 퍼포먼스는 조진주의 다양한 색채감을 더 확연히 보여줬다. 곡이 끝난 후 기립박수가 쏟아졌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Introduction and Rondo Capriccioso in a minor Op.28)>의 절규하고 외치는 듯한 연주, <로망스(Romance in C Major)>의 낭만적인 스토리텔링, <내 마음은 당신의 목소리에 열리고(‘Mon coeur s'ouvre à toi voix’ arr.for vilolin and orchestra)>와 <하바네이즈(Havanaise, Op.83)>에서 보여준 드라마틱한 구성과 유려한 전개는 이날 조진주가 얼마나 다양한 능력을 지닌 연주자인지 증명해줬다.
앨범을 듣는 것도 좋지만 역시 가장 훌륭한 음악 감상은 라이브 공연장에서 연주자의 표정과 태도를 지켜보며 직접 라이브로 듣는 것이 아닐까. 이날 다목적홀을 가득 채운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는 1시간을 살짝 넘긴 공연 시간 동안 관객들 마음의 온도를 높였다.
“이미 몇 광년 전 죽은 돌덩이일지라도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의 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보이듯, 내가 하는 연주 또한 비록 종이에 그려져 있는 음표일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반짝이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진주는 앨범 《변덕쟁이 아가씨》 발매 후 가진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지난 근현대사의 이야기들이 꿈틀거리며 살아서 관람객과 만나듯, 몇 백 년 전에 만들어진 악보 속 음표들은 조진주와 박종해의 연주 속에서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또각또각 힐 소리처럼, 사뿐사뿐 무용수의 발소리처럼 다양한 색으로 덧입혀져 듣는 이의 마음에 꽂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연주가 서울 광화문의 밤하늘을 수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