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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조선의 아이돌이 하늘을 가르며 꿈꾼 독립

“원래 헌 비행기라 발동기는 또 다른 헌 비행기의 것을 떼어 내어 여기다 뜯어 맞춰 놓은 것이어서 다소 불안합니다.”1) 헌 비행기 부품을 채워 넣은 금강호에 탄 사내가 여기 있다. 안창남은 1922년 12월 조선인 최초로 조선 상공을 날았다. 당시 언론이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할 만큼 인기를 누리던 그는 일본 간토대지진 이후 항공독립운동가로 탈바꿈한다.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시곗바늘을 1901년으로 되돌려 당대 최고의 비행사이자 항공독립운동가였던 안창남의 결정적인 신(Scene)들을 시간 순서대로 살펴본다.

  • 일본 잡지 『역사사진』 1923년 8월호에 실린 안창남 비행사의 모습 (Ⓒ 한국역사연구회)

S#1. 1913년 4월 3일:머리 위로 나는 비행기를 목격하다

1901년 태어난 안창남은 계모의 학대로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주눅 들기보다는 오히려 승부욕 강한 성격으로 자랐다. 열세 살(1913년) 안창남은 조선 하늘을 최초로 비행하는 비행기2)를 목격한다. 다른 이들처럼 비행기에 압도되기만 한 게 아니라 “그까짓 것 우리 조선 사람도 배우면 하지”라고 외쳤단다. 가슴에 ‘스파크’가 일었다. 비행사라는 꿈을 실현하고자 1920년 도쿄 오구리비행학교에 입학했다. 비행술을 배우려면 어마어마한 학비가 필요했지만 그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꿈을 현실로 만들어나갔다.

S#2. 1922년 12월 10일:조선 하늘을 가른 최초의 조선인 비행사

입학 이후 그는 스승 오구리의 조수로 발탁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고 이는 『개벽』 기고문과 국내 신문보도 등을 통해 조선에도 널리 알려졌다. 3등 비행사 시험에 합격(1921년)하고 현상우편비행대회(1922년)를 완주하면서 일본과 한국에서 그의 명성은 더 올라갔다. 당시 조선에서 그는 지금의 ‘아이돌 스타’같은 인기를 누렸다. 조선인으로서 뛰어난 비행술을 뽐내는 안창남의 모습은 민족 자긍심을 높여주었다. 1922년 12월 인기를 등에 업은 안창남이 조선 13도 지도가 일목요연하게 그려진 금강호3)를 타고 조선으로 향했다. 조선 사람들에게 그의 고국 방문 비행은 국가적인 행사 그 자체였다. 군집한 이들은 안창남의 비행기를 발견할 때마다 환호성을 질러댔다. 10일 그는 횡전비행, 엔진을 끈 채 서서히 떨어지는 자유낙하 등 여러 기술을 선보였다. 조선 하늘을 가른 최초의 조선인 비행사 안창남은 존재 자체로 ‘대사건’이었다.

  • 1923년 1월 발행한 『개벽』 제31호. 목차를 보면 90쪽에 안창남의 글 「空中(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이 실려 있다.

S#3. 1923년 9월 1일:항공독립운동가로 거듭난 계기

1922년 12월 10일 1차 비행, 13일 2차 비행을 완수한 후 일본으로 귀환한 안창남은 1923년 9월 간토 대지진을 겪는다. 1923년 일본의 간토 지방에서 발생하여 10만여 명의 사망자를 냈던 큰 지진으로 재일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켜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다는 유언비어가 돌며 일본 내 조선인 수천 명이 학살됐다. 이 학살 소식을 접한 안창남은 큰 충격에 빠졌고, 이는 그가 항공독립운동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자신의 비행술을 독립운동에 바치기로 한 안창남은 1924년 12월 중국 망명길에 올랐고, 1926년에는 여운형의 권유로 옌시산군 항공중장과 산시항공예비학교 비행교관을 맡는다. 1928년에는 신덕영·최양옥 등과 대한독립공명단을 결성해 상하이와 만주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다. 궁극적으로 안창남은 자신과 같은 항공독립운동가를 양성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의 열망은 1930년 뜻밖의 사고로 그 발길을 멈춘다.

키워드로 보는 안창남의 비행

  • 7시간 46

    1922년 현상우편비행대회에서
    안창남은 악천후를 뚫고 선전한 끝에
    7시간 46분의 기록으로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조선인 비행사로서
    첫 장거리 비행 성공 기록이다.

  • 5만여명

    1922년 12월 10일 고국 첫 비행의
    시작점이었던 여의도 비행장에는
    5만여 명 군중이 운집해
    안창남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 同床異夢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을 통해
    조선 사람들은 민족의 자긍심을 키웠던 반면,
    일본 정부에서는 자국의 항공 정책 실현과
    군사 기술 향상을 홍보하고자 했다.

S#4. 1930년 4월 2일: 불의의 사고 이후

1930년 4월 2일 당시 60여 명의 연습생을 가르치던 안창남은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추락해 생을 마감했다. 1931년 3월 『별건곤』에 실린 지인 증언에 따르면 죽음의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비행기의 고장을 시험할 겸 한번 날아보았다. 그 비행기가 고장이 있는 줄은 물론 미리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수선을 할 겸 날아본 것인데 (중략) 내리치는 비행기는 큰 나무에 부딪히고 말았다.” 안창남이 고장 난 비행기를 시험 비행하다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에 조선 사람들은 저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슬퍼했다. 그의 비행은 1930년 중국의 한 비행학교에서 멈췄지만, 독립을 꿈꾼 그의 지난 시간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2001년 8월 대한민국은 광복절을 맞아 그의 업적을 기리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하늘을 가르며 독립을 꿈꾸던 조선의 아이돌, 그가 품었던 간절한 열망은 이제 대한민국의 한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됐다.

11ㆍ12월 이달의 근현대사

월별 주요 일정
날짜 내용
11

2일

울진·삼척에 무장공비 출현(1968)

3일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성당인 약현성당 준공(1892)

광주 학생 운동(1929)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2009)

9일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결성(1919)

10일

경부선 철도 완공(1904)

창씨개명 공포(1939)

17일

을사늑약 체결(1905)

21일

독립문 정초식 거행(1896)

주민등록증 발급 시작(1968)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2010)

27일

카이로 선언 발표(1943)

29일

사사오입 통과(1954)

대한항공 858기 공중 폭발(1987)

12

1일

한국방송공사, 첫 컬러텔레비전 방송 시작(1980)

3일

조선어 연구회 창립(1921)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1997)

4일

갑신정변(1884)

서울 남산 제2호 터널 개통(1970)

5일

우금치 전투(1894)

박정희 대통령, 국민교육헌장 선포(1968)

10일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2000)

12일

12·12사태(1979)

13일

「남북한 화해·불가침 합의서」 채택(1991)

15일

흥남 철수 작전 시작(1950)

17일

김정일 사망(2011)

21일

경인고속도로 개통(1968)

우리나라 최초의 관측위성 ‘아리랑 1호’ 발사 성공(1999)

24일

「국가보안법」 파동(1958)

25일

독립협회 강제 해산(1898)

27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 신탁통치 발표(1945)

28일

일제,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