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고 노래하다

당신 앞에 놓인
이 대한민국

3·1절 기념 클래식 콘서트 <힘내라, 대한민국>

감정이 요동칠 때가 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우울해진다거나,
한참을 웃다가 울고, 반대로 울다가 웃는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3월 1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3·1절 기념 클래식 콘서트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노랫말 없는 클래식 연주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3월 1일,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기억하는 그날이었다. 사진 김성재 싸우나스튜디오

  • 연주 중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클래식 공연단

마음과 영혼으로 느끼는 ‘환희'

3·1절 기념 클래식 콘서트 <힘내라, 대한민국>은 공연명과 동일한 제목의 곡으로 시작했다. 초반부에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와 ‘뭐지’ 생각해보니 페니 마샬 감독의 1988년 영화 <빅> 삽입곡인 <Heart and Soul>(곡: 하워드 쇼어)이다. 영화에서 갑자기 어른이 된 조쉬(톰 행크스)가 장난감 가게에 들렀다 회사 사장(로버트 로기아)을 만나 함께 ‘발 연주’를 펼치던 곡 중 하나다. 이어서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환희의 송가> 멜로디도 등장한다. 두 곡을 매시업(Mashup)해 선보이는 첫 곡은 밝은 기운으로 ‘3·1절 분위기는 엄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클래식 공연단과 객원으로 참여한 문재원의 피아노까지 더해진 이날 연주는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경쾌했다가 장엄하고, 서정적으로 이어지는 등 다양한 연주 스타일을 보여줬다. 마치 인간사가 그렇듯, 그들이 표현해낸 3·1절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애국가, 겨레의 노래>에서는 장엄하고 진중한 가운데 구슬픈 첼로 선율을 들려주었고, <아리랑 포에티크>에서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였다. 이어진 <아리랑 랩소디>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추격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앙코르 때 한 번 더 연주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곡이다.

이 땅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당신에게

<3·1절 노래>는 클래식 공연단과 관객이 함께 만들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첼리스트 정광준 단장의 요청에 따라 관객들은 연주가 흐르는 내내 저마다 마음속으로 화면에 소개된 노랫말을 따라 불렀다. “기미년 3월 1일 정오/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중략) 한강은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다채롭게 흐르던 공연은 <3·1절 노래>를 기점으로 그 분위기가 바뀐다. 변화는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와 뮤지컬 <레미제라블> 주요 삽입곡을 편곡해 들려준 <Look Down-One Day More-Do You Hear the People Sing?>에서 명확하게 읽힌다. 앞선 곡이 탱고 스타일을 차용한 연주에다 악기가 점층적으로 얹히고 더해지는 곡 구성으로 감동을 주었다면, 후자 곡은 클로드 미셸 쉔베르크(Claude-Michel Schöenberg)의 원곡을 드라마틱하게 모으고 이어 표현했다.
“일어나, 투쟁하라. 민중은 승리하리라.” “지금은 민중들이 투쟁으로 일어설 때” “내일이 오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리라.” 이 곡들에 담긴 노랫말을 떠올리면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3월 1일, 일제에 맞섰던 그 숱한 민중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학생, 노인 등 할 것 없이 한데 모여 펼친 그날의 외침은 역사적으로는 실패한 운동으로 기록되기도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결의는 굳세고 단단했으며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쇄국정책을 펼친 조선과 달리 일본은 일찌감치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열강의 지원을 받으며 제국주의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했다. 그들에게 조선은 자신들의 가치를 높여줄 손쉬운 공격 대상이었다. 1945년 광복이 되기까지 우리 민족의 외침이 없었더라면 이 땅은 얼마나 더 춥고 황폐해졌을까. 클래식 공연단의 연주는 새삼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깨우쳐야 하는지 떠올리게 해주었다. 마지막 곡 <해 뜨는 나라, 희망의 아침>은 관객을 일깨우는 듯했다. 대한민국 역사의 스토리텔링에 사로잡혔던 관객들은 이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깨달아야 하는지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단정 짓지’ 않는 일이다. 희망이 없다고,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고 단정 짓지 않는 것. 미리 단정 지었다면 3·1 운동은 없었을 테니까.
세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옷을 바꾸어 입는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선조들의 위대했던 외침과 행동은 변함없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건드린다. 그래서일까. 공연을 관람하다 갑자기 울컥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감정 표현은 아니다. 발아래에 깊게 자리 잡은 결기가 우리의 두 다리를 굳세게 잡아주고 있다. 이따금은 그들의 이야기가 돌림노래처럼 우리 주변을 떠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이 세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걱정하고 위로하고 돌봐주는 그 존재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