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꿈에서 본 그대

KBS 1TV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1983년 한국 방송계에는 일대 사건이 있었다.
이산가족을 위한 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KBS 1TV를 통해 방영된 것.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138일,
총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방영해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5년에는 방송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 1983년 특별생방송 당시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 Ⓒ 경향신문사 소장

전 세계의 관심을 받은 특별생방송

한반도의 분단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소련군이 청진시에서 4,000여 명의 일본군과 청진 전투를 벌이자 미국은 한반도 전체가 소련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38선을 그어 북쪽은 소련군이 주둔하고, 남쪽은 미군이 주둔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한반도는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섰고, 6·25 전쟁 이후에는 더욱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섰다. 6·25 전쟁 과정에서 사람들은 피난을 피할 수 없었고, 가족과의 이별을 택했다. 잠깐일 줄 알았던 이별에는 기약이 없었다. 약 1,000만 명의 이산가족과 10만여 명의 전쟁고아가 생겨났다.
남북한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던 1983년 KBS는 당초 6·25 전쟁 33주년과 휴전협정(1953년) 30주년을 기념해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획했다. 전쟁의 여파로 헤어진 남한 내 가족들을 연결해주자는 의도였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에 첫 방송이 나갔는데 당초 기획했던 방송 시간은 2시간이었다.
진행 방식은 간단했다. KBS 공개홀에 모인 이산가족들이 자신의 신상 명세를 적은 ‘메모판’을 가슴에 들고 서면, 진행자가 그 내용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첫 방송 이후 반응은 뜨거웠다. 증언에 따르면 당시 KBS 직원들이 다음날(7월 1일) 반응에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고. KBS 중앙홀은 이산가족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꽉 찼고, 홀 밖에는 출연 신청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게다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감동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고자 국내외 언론사가 KBS로 집결하며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1983년 특별생방송 당시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

세계 최대 규모의 이산가족 찾기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KBS는 방송을 지속하기로 했다. 6월 30일까지 2,200건이었던 신청 건수는 7월 1일과 2일에만 1만 4,780건이나 몰렸고 7월 12일에는 누계 10만 건이 넘었다. 방송 편성도 확대돼 7월 1일에는 8시간 45분, 2일에는 11시간, 3일에는 9시간 50분 등 KBS 1TV 채널을 통해 장시간 특별 생방송 체제에 들어갔다. 네트워크 지역국(부산, 대구, 광주, 전주, 대전, 청주, 춘천, 제주, 강릉)과 연계해 지역 신청자들을 출연시켰고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등지에서도 이산가족 사연을 받아 소개하는 등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이산가족 찾기 방송으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목마르고 간절하다는 증거였다. 방송 기간 138일간 5만 3,536건의 이산가족 사연을 소개했고, 그중 1만 189건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KBS 본관 중앙홀에 마련된 기자실에는 전 세계 25개국 기자들이 상주하며 상봉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했고 AP와 UPI, 로이터 등 세계 4대 통신사와 일간지, 방송사들은 대서특필하는 등 비중 있게 다루었다고 하니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만하다.

햇빛 쏟아지던 날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전쟁이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다. 방송 이후 1985년 북한 대표단이 KBS를 방문하면서 같은 해 9월 역사적인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최초로 이루어졌으니, 한반도 긴장 완화에도 크게 기여한 셈이다. 138일간의 치열한 기록은 그 공을 인정받아 같은 해 제6차 세계언론인대회에서 ‘1983년의 가장 인도적인 프로그램’으로 선정됐고, 1984년에는 세계평화협력회의에서 방송 기관 최초로 ‘골드 머큐리 애드 호너렘(AD HONOREM)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6·25 전쟁은 3년간 치러졌으나 그 전쟁이 남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이별한 가족들의 마음은 한동안 한반도 곳곳에서 버려진 휴지조각처럼 떠돌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여도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마침내 1983년, 각자의 사연들을 품에 안고 나선 자리에서 사람들은 웃고 울었다. “아버지·엄마가 살아 있어! 만세!”라고 외치던 사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뒤 울며 바닥에 누운 채 서로를 껴안던 모녀, 오빠의 얼굴을 부여잡고 오열하던 여자… 꿈에서라도 보고 싶던 남편과 아내, 자식 혹은 연인. 참혹한 동족 간 전쟁으로 떨어져 있던 가족들은 그렇게 30여 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떠돌던 마음을 이어 하나로 연결했고, 그 마음들은 햇빛처럼 우리 땅에 쏟아져 내렸다. 대한민국은 햇빛 쏟아지는 날들 속에서 한동안, 따뜻했다.

이달의 근현대사

월별 주요 일정
날짜 내용
5

1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 창간호 발행 (1932)

5

「어린이 헌장」 제정 선포 (1957)

10

제1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 (1948)

「근로기준법」 공포 (1953)

12

김규식, 파리강화회의에서 대한민국의 독립 청원 (1919)

13

안창호, 민족운동단체 흥사단 창립 (1913)

16

5·16 군사정변 (1961)

18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0)

27

항일여성운동 단체 ‘근우회’ 결성 (1927)

31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인 제헌국회 개회 (1948)

6

3

6·3 항쟁 (1964)

6

6·6 반민특위 습격 (1949)

7

음반 사전심의제 폐지 (1996)

9

연세대 학생 이한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다 (1987)

10

6·10 민주항쟁 (1987)

15

김수임, 간첩 혐의를 이유로 사형 선고 (1950)

17

만세보 창간 (1906)

25

6·25 전쟁 발발 (1950)

26

백범 김구, 경교장에서 암살 (1949)

29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