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낯설게 보기

경계인이 바라본

현대 한국의 도시화,

그리고 성장

트렌디한 디자인의 고층 빌딩이 나란히 늘어선 강남, 한국다운 분위기의 한옥이 나란히 배치된 북촌.
여행차 한국의 수도 서울을 처음 방문해 목격한 놀라운 광경이다.
처음에는 그저 서울은 매우 큰 도시니까, 북촌처럼 옛 정취가 남은 곳이 있는가 하면
개발로 인해 강남 같은 현대적 동네도 당연히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도시화 관련 유물을 관람하며 한국이 어떻게 성장해오고
약동했는지, 현대 한국의 성장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김성재 싸우나스튜디오

  • 글 콘도 마리(近藤 眞理)

    고등학생 때부터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을 접했다. 접할수록 한일 간 갈등이 답답했고,
    그 답답함을 해결하려면 한국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대학 졸업 후 2017년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로 편입했다
    학사 취득 후 현재 동 대학·학과 석사 과정에서 공부 중이다.

강남은 원래 우리가 알던 강남이 아니었다?

역사관을 방문해 내가 주목한 것은 제2부에서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에 총력을 다하는 한국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이다. 한국 정부는 수출 지향의 공업화를 기획하고 한일회담을 통해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얻었다. 또한 과학기술 발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정부뿐 아니라 한국 국민도 노동자로서 해외에 나가 모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외화를 벌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경제 성장을 위해 노력했고, 이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이어졌다. 그 결과 1970년대 들어 생활과 문화에 걸쳐 큰 변화를 겪었다. 생계를 위해 농촌에서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1988년경 서울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서울은 계속 증가하는 인구를 어떻게 수용할지 고려해야 했다. 원래 사람들이 소 끌고 농사짓는 시골이었던 한강 남쪽을 1970년대부터 개발하며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아는 ‘강남’이 탄생했다.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공동주택인 아파트가 건설됐고 전기가 보급됐다. 1974년 처음 개통된 서울의 지하철은 사람이 넘쳐날 정도로 만원이었다.

  • 1960년대 지어진 세운상가 ‘다’동 삼풍상가 아파트의 포스터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국은 도시화, 일본은 버블

역사관에는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도시화를 겪은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서 본 사진 한 장이 내게 충격을 줬다. 현대화의 상징인 아파트 앞에서 소를 끌고 가는 노인의 모습이 담긴 1978년 압구정동 사진은 당시 한국의 급격한 변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내가 아는 서울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도시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가 한창이었다. 버블 경제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벌어진 일본의 비정상적인 자산가치 상승 현상을 뜻한다. 1960년대 이후 무서운 속도의 고도 경제 성장을 겪은 일본의 수도 동경(東京)은 1980년대에 이르러 이미 3,0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이 시기 일본 기업들은 급성장하며 세계적으로 그 위상을 떨쳤다. 또한 <드래곤볼>이나 <북두의 권> 같은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이 탄생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영화회사인 스튜디오 지브리가 탄생한 것도 1980년대였다. 미국을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거듭나던 호황 시절이다.

  • 1978년 4월 20일 압구정동. 서울 강남 개발 붐이 일며 압구정동에 아파트가 들어선 가운데, 한 농부가 소를 끌고 밭갈이를 하는 모습이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민조 님 기증)

버블 경제 시기를 경험한 내 어머니는 “정규직 취업은 당연했고 월급이나 상여금도 많이 받아 사람들 생활이 안정적이었다”고 고백했다. 이 시기는 일본에서 아주 화려한 시기로 기억된다. 일본 TV에서도 1980년대 일본을 화려하게 묘사하고는 한다. 그래서일까. 아파트와 소, 노인이 함께 담긴 서울 강남의 사진 한 장은 내가 듣고 알던 당시 일본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한편으로 나에게 친밀하게 와닿는 전시물도 있었다. 전기밥솥은 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서 본 밥솥과 비슷했다. 할아버지 집에서 먹던 밥을 떠올리게 해주는 밥솥이다. 삼양라면 봉지도 전시돼 있었는데, 삼양라면은 1963년 9월 대한민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으로 선보였으며 이후 한국의 라면 열풍을 주도했다고 한다. 한국에 정착할 무렵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라면이라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한국 사회와 사람들의 노력이 쌓인 결과

2017년 유학차 한국으로 건너왔을 무렵, 한국 사람과 일본 관련 대화를 나눌 때마다 자주 듣던 말이 있다.

“지금 한국은 일본의 5년 전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돼.”

5년이라는 수치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만큼 한국이 일본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다는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학창 시절 무렵 파나소닉이나 소니, 토요타 같은 일본 기업들은 세계적인 회사로 인정받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일본인으로서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삼성이나 현대 같은 한국 기업이 세계적으로 더 주목을 받는다. 문화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리메이크했다면, 이제는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느껴진다. “한국은 일본의 5년 전 모습”이란 말은 이제 다르게 수정돼야 한다.

제사회에서 최근 유행어처럼 쓰이는 ‘K~’ 열풍은 1960년대부터 줄곧 노력해온 한국 사회와 사람들의 노력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한국의 도시화 관련 유물들을 보면서 그러한 현대 한국의 놀라운 성장과 변화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살아가는 경계인으로서 앞으로 양국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성장을 이뤄낼지 흥미롭게 지켜볼 생각이다.

부평역사박물관은 부평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알리고 지역주민에게 정주의식 함양을 목표로 2007년 3월 29일에 개관했다.

전시실은 총 2층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1층에는 기증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2층에는 상설전시 공간인 농경문화실과 부평역사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농경문화실은 도시화가 되기 전 넓은 평야를 중심으로 농사지으며 살던 부평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농기구를 통해 당시 부평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고 관혼상제 및 의식 생활 문화 관련 유물이 전시돼 있어 선조들의 일생과 지혜로운 삶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사계절 농촌 풍경을 담아낸 모습이 인상적이다. 반면 부평역사실에서는 급격한 변화 속에 도시화를 거치며 성장한 부평의 근현대사와 만날 수 있다.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가 부설된 이후 부평은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일제강점기에는 대규모 군수시설이, 해방 이후에는 미군 기지가 들어섰다. 1970년에는 부평수출산업공단이 조성돼 산업 도시로 변화를 겪으며 굴곡진 현대사를 써 내려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와 성장을 거듭한 부평의 모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이다.

그 밖에 야외 전시장 및 박물관 공원에서는 다양한 문화공연을 개최해 지역 주민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박물관과 지역 주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화합의 장을 만들고 있다.

관람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화~일)

휴관

매주 월요일, 신정, 구정과 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주소

인천광역시 부평구 굴포로 151

문의

032-515-6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