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공감 초대석

역사를 보는 자기만의
시각을
키워주는
박물관의 ‘인생’ 교육

김선미 교육과 학예연구사

사람들은 평생 배우길 원한다. 더 알고 싶은 욕망,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 그리고 역사에 대한 통찰력과 안목을 갖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문을 두드려보자. 저마다의 치열한 고민과 토론, 체험,
그리고 진득한 꿈들이 자라나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성인·교원연수·대학생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김선미 교육과 학예연구사를 만났다. 사진 이대원 싸우나스튜디오

현대사 전체를 아우르는 시민강좌 만들어요

반갑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언제부터 일하셨고,
현재는 어떤 일을 맡고 계세요?

대학에서 한국 정치를 전공해 강의와 연구를 병행했어요. 세부적으로는 시민사회와 사회운동, NGO가 제 연구 분야였죠. 그러던 중 2012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개관했어요. 현대사 박물관에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 싶어 2013년 9월 1일부터 박물관에 들어와 학예연구사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9년이 돼가네요. 조사연구과, 전시운영과, 연구기획과 등을 거쳤고 작년부터 교육과에서 일하며 성인·교원연수·대학생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맡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 성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 <현대사 시민강좌: 역사를 살다>를 기획하셨죠.
‘역사를 살다’라는 제목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제목 그대로 해방 전후부터 최근까지 각 시대를 살아온 역사 속 주체,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사람들을 주제로 구성한 교육이에요. 제국대학 유학생, 학병 세대와 월남 지식인, 재벌, 군(軍), 테크노크라트(technocrat)1)와 엔지니어, 대학생과 시민 등 현대사를 이끌어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역사적 주체로서 당시 어떤 역할을 했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했어요.

언급하신 집단을 우리 현대사의 주체로 선정한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라면 식민지 지식인들이 있었고, 1960년대에는 정치적으로 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잖아요. 이처럼 시대별로 한국의 현대사를 만들어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집단을 선정한 거죠. 기획 파일들을 보니 18개의 수정 버전이 있더군요. 그만큼 많은 논의와 수정을 거쳤어요.

우리 현대사에는 좌익과 우익 등 민감한 이념적 갈등이 있죠.
이런 내용은 어떻게 담아냈나요?

우리 현대사 자체가 논쟁적이에요. 이념적 갈등이 어디서 유래하는지 알려면 좌익과 우익도 다뤄야죠. 다만 이번 강의에서는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 식민지 지식인, 해방 이후 월남 지식인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보여주려 했어요. 그 밖에 군도 사실 1960년대를 비롯한 우리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집단이지요. 그동안은 주제 자체의 예민함 때문에 잘 다루지 않았지만, 이번 강의에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라도 다루어보려고 했습니다.

  • 김선미 교육과 학예연구사는 교육 프로그램 기획뿐 아니라 강의 진행도 맡고 있다.

<현대사 시민강좌>는 2018년부터 운영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박물관의 과거 시민강좌와 연계해 이번 2022년 강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013년부터 <박물관 대학>이라는 이름의 역사 강좌를 진행했어요.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두루 다루다가 2018년부터 <현대사 시민강좌>로 강좌명을 변경하면서 주로 역사 계기성 주제의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작년 상반기부터 이 강좌를 맡은 이후로는 우리 현대사를 ‘통사(通史)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역사 전공자가 아닌 이상 역사를 통사로 들여다볼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특정 주제 강좌가 대부분이라 우리 현대사 전체를 훑을 수 있는 강의가 많지 않았기에 통사에 입각한 시민강좌를 진행하게 된 거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가면 우리 현대사 전 시기에 걸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고정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의도도 있었습니다. 통사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매번 주제가 같은 건 아니에요. 이번처럼 ‘역사적 주체’를 다룰 수도 있고, ‘역사적 쟁점’이나 ‘현대사 운명을 가른 사건’ 등 얼마든지 다양한 주제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시민강좌인 만큼 시민들의 참여와 반응이 핵심 같습니다.
주로 어떤 분들이 참여하나요?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박물관 대학> 시절에는 수강생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남성들이었다고 해요. 반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 강좌가 진행된 이후로는 여성들의 참여가 늘었어요. 현재 전체 수강생의 80퍼센트가 여성들인데, 특히 40~50대 여성들이 주된 층이에요. 전체적으로는 연령층이 넓어져서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고 계시고요. 또한 지역의 제한이 없는 온라인 강의다 보니 전국에서 참여하고 계시죠. 특이한 점은 참여 수강생의 학력이 높아졌다는 거예요. 대학원생이나 역사 교사들도 시민강좌를 듣다 보니 질문 수준이 높고 열의가 대단해요.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강좌의 균형을 맞추고자 고심하고 있어요. 최초 <현대사 시민강좌>는 일반 시민들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강좌를 추구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수강생들이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거죠.

미래 큐레이터를 꿈꾸는
청년들의 뜨거운 참여 열기

올여름 5기가 진행되는
<청년 큐레이터 아카데미> 역시 맡고 계시죠.

<청년 큐레이터 아카데미>는 박물관 큐레이터(학예 연구직)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진로 모색의 기회를 주고자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연 2회 운영하고 있어요. 현대사 강의와 학예 직무 교육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사실 코로나19 시기에 만들어진 탓에 그동안은 온라인으로만 교육이 이루어졌어요. 반면 올여름에는 수장고 관람과 자료 포장 실습, 전시실 현장에서 전시를 보며 기획과 구성을 배우는 등 현장 실습 위주의 교육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청년들의 참여 및 수업 열기가
아주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70명 모집에 수백 명이 참여를 신청할 정도로 경쟁률이 높아요. 아카데미를 모두 이수하면 이수증을 주는데 박물관 취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있고, 박물관 업무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참여하는 예도 있습니다. 추상적으로만 알던 큐레이터를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 많아요. 그만큼 수업 열기가 대단합니다. 특히 학예사가 직접 경험담을 들려주는 ‘멘토 이야기’ 시간에는 학생들이 저마다 질문들을 쏟아내 강의 시간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 현장

<현대사 시민강좌>와 <청년 큐레이터 아카데미> 등을 직접 기획하신 후
어떤 성과들이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맡은 이후 지원자와 수강 인원이 대폭 늘었다는 점이 성과죠. 특히 <현대사 시민강좌>는 작년에 최초 50명 모집을 100명 모집으로 늘려 공고를 올렸는데 지원자가 워낙 많아 400명이 수강했어요. 올해도 260명이 참여하고 있고요. 또한 앞서 언급했듯 온라인으로 진행하다 보니 수강 층이 다양하게 확대되고 전국 단위에서 수강하고 있다는 점도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강좌의 ‘팬덤’이 형성되면서 100명 이상의 시민들이 꾸준히 지원해주고 계세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만의
차별화된 교육

이제는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측면을 여쭈어보겠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기획돼 운영하고 있나요?

모든 기획의 시작은 기초 조사입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지난 강의와 다른 기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충분히 검토하면서 다른 기관과는 차별화된 우리만의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거죠. 강의를 기획하고 그 강의에 걸맞은 최적의 강사를 찾아 완성된 초안을 바탕으로 내부 검토를 거칩니다. 이후 수정 보완을 거쳐 기본 계획을 수립해 보고한 후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돼요. 교육마다 만족도 조사(<현대사 시민강좌>는 두 차례 진행)를 진행해서 수강생들의 의견을 받아 다음 교육에 반영하려고 노력합니다. 강좌 완료 후 결과 보고를 하면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은 온전히 종료됩니다.

앞서 언급하신 대한민국역사박물관만의
차별화된 교육은 무엇일까요?

기존의 기념관이나 주제 박물관은 그들이 다루는 주제와 관련된 교육을 진행해요. 독립기념관이면 독립 관련 강의를 진행하는 것처럼요. 반면 우리는 현대사 전체를 다루는 종합 박물관이라는 특징이 있어서 좀 더 방대한 교육 주제를 다룰 수 있어요. 물론 당대 역사를 다루는 만큼 논쟁적인 주제들이 있어 더 신경을 써서 기획하죠. 최근에는 박물관 맞춤형 교육을 고민하면서 전시나 유물과 연계한 교육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특수교육 교원연수’나 <청년 큐레이터 아카데미> 등에서 실제로 이런 전시 연계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런 교육을 통해 수강생들이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현대사 전체를 이해하며 자신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려고 합니다.

<청년 큐레이터 아카데미> 교육 만족도 조사. 이러한 만족도 조사는 더 나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기획해보고 싶은 교육 프로그램이 있나요?

교원연수 때 교사들끼리의 모둠 활동을 시도한 바 있는데, 이처럼 교육생들이 강좌를 수강한 이후에 스스로 주체가 돼 운영하는 공부 모임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박물관은 장소 제공이나 관리 정도만 해주고,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주제 관련해 공부하면서 지식을 쌓아가는 거죠. 수업을 듣는 것과 직접 꾸려나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잖아요. 이를 통해 시민들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자발적 참여형 모임은 박물관 홍보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또 하나 더 생각해둔 건 <대가에게 듣는 현대사 강의>입니다. 우리 현대사에 발자국을 남긴 대가들이 생존해 계실 때 모셔서 이야기를 듣는다면 큰 의미가 있을 거예요. 현대사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차원에서도 현대사 박물관에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