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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 역사관, 어떻게 바뀌었을까

2020년 6월 1일, 5층 상설전시 역사관이 정식으로 개관했다. 2018년부터 준비를 시작한 상설전시 개편사업의 첫 번째 단계를 마무리한 셈이다. 역사관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가장 넓고 높은 층고를 갖춘 5층과 3층(일부)의 총 면적 1,632㎡ 공간에 조성됐다. 이번 역사관 개편이 어떤 취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본다. 글 / 전시운영과 김수진 학예연구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온 역사, 파노라마로 보다

사람들은 묻는다. 역사관은 ‘어떤 가치와 이념을 지향하는가’라고. 그 대답은 역사관 초입에 적혀 있는 소개글과 프롤로그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관은 한국 현대사의 여정을 파노라마로 조명합니다. (중략) 거대한 변동의 시간을 일궈온 평범한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두 가지의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첫 번째는 왕이나 양반의 나라가 아닌 민(民)이 주인인 나라, 곧 근대적인 민주 국가를 만들어 가는 여정을 살펴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면면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번 개편에서 우리는 하나의 가치나 특정 이념으로 한국 현대사를 표현하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복수의 가치들, 때로는 상충하는 이념과 욕망이 공존해온 대한민국 현대사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전시실 초입의 프롤로그는 ‘선언문과 함께 걷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선언과 글귀를 선정해 민주, 자유, 평등, 평화, 자존, 행복을 향한 염원과 의지가 모여 역사의 길이 만들어졌음을 표현하고 있다.

달라진 전시 주제와 내용

역사의 길에서 만나는 우리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전과는 어떤 점이 바뀌었을까?
우선 역사관 전시는 1894년에서 출발한다. 이 기점은 개편 기간 내내 주진오 전임 관장을 비롯해 상임자문위원들과 담당자들이 많은 논의를 했던 사안이다. 1894년은 역사학계나 관련 학계의 어떤 학설에서도 시대 구분의 기점으로 삼지않는 연도이지만, 동학농민혁명으로 대표되는 아래로부터의 성장과 갑오개혁으로 대표되는 위로부터의 근대 국가제도 정비가 일어난 연도임에 주목해 내린 결론이다. 또한 역사의 흐름을 1945년 광복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구분해 2부와 3부를 구성한 것도 많은 토론과 검토를 거쳤다. 시대 구분 관련 안(案)은 여럿이었으나, 한국 현대사의 모든 부분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이런 뼈대 위에서 기존 상설전시와 비교하면 많은 내용이 달라졌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1부의 경우, 민(民)의 삶과 일상을 보여주는 내용이 많이 등장했다. 식민지를 살아간 소작인과 노동자, 신식 교육제도와 학생층의 등장, 대중문화의 구체적 발흥과 도시의 변화가 다뤄졌고, 친일협력 문제가 추가되었다. 1945년 부터 1987년 초까지를 다룬 2부의 경우에는 6·25 전쟁이나 좌우 이념 대립이 야기한 여러 측면을 함께 보여주었고 정부, 기업, 국민(노동자)의 세 주체가 경제 발전을 이뤄냈음을 균형 있게 드러내고자 했다. 이 내용은 모두 일반 국민들의 기증 유물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198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다루는 3부의 경우, 이전 전시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네트워크 사회나 사회운동, 노동운동, 한류의 성장, 국내 체류 이주민, 광장과 시민 참여의 확대 같은 주제들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압축적이면서도 풍부하게’라는 도전

개편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요구를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압축적이면서도 풍부하게’일 것이다. 넓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이 공간에, 엄청난 격동의 현대사를 ‘압축적이면서도 풍부하게’ 담아내 보시오. 가능한 숙제인 걸까?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댔고, 그동안 쌓아왔던 노력과 지혜를 모았다.
그 숙제는 성격과 목표를 달리하는 세 가지 층위를 교차시켜 배치하는 것으로 풀었다. 유물과 그래픽을 통해 사건과 주제를 만나는 공간으로 다종다양한 자료 콜렉션을 인터랙티브(Interactive, 쌍방향) 모니터로 보는 ‘디지털 아카이브’, 일제 강점기 말기부터 외환 위기까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경험을 듣는 ‘구술 아카이브’, 그리고 영상과 그래픽, 그림, 사진, 모형 등의 다양한 연출을 통해 사람들의 체험과 이야기를 느낄 수 있는 ‘역사 속 이야기’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며 시대와 삶을 표현하고 있다.
역사관은 3부로 이뤄진 대주제를 기반으로 중주제 16개, 소주제 44개로 구성되어 있다. 한 개 층 1,632㎡의 공간에 유물 약 1,100여 점을 전시하는 56개의 진열장과 8개의 ‘역사 속 이야기’ 코너, 12개의 ‘디지털 아카이브’ 그리고 4개의 ‘구술 아카이브’ 설치물이 자리했다. 이전 상설전시가 3개 층 총 2,966㎡ 면적에 유물 1,586점과 전시 영상 99개, 정보 영상 13개로 이뤄졌던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축약됐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보나 자료의 양은 이전보다 더 많아졌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디지털 아카이브’ 설치물에 담긴 다큐멘터리 영상과 독립신문 해제 콘텐츠, 엽서 사진 이미지, 대중음악 음원, 수백 컷의 만화, 사회운동과 노동운동 전단 이미지, 표어·삐라·포스터 이미지를 꺼내어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놓았다.
‘역사 속 이야기’는 이번 개편에서 심혈을 기울인 또 다른 시도이다. 단순 지식과 정보 전달을 넘어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만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전시를 만들고자 했다. 물론 공간의 제약이 큰 상황에서 이를 구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역사전시이자 상설전시로서는 과감하게 무성 영화, 비디오 아트, 설치 미술, 인체 모형 등 여러 예술 장르를 활용했다. 식민지 시대의 실제 소리와 분장한 연극배우의 연기 영상으로 민(民)의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표현한다든지, 사진과 모형을 결합해 전후 복구의 삶을 형상화한다든지, 영상 아트워크와 구술 영상을 통해 외환 위기의 충격과 영향을 사람들의 기억과 목소리, 그리고 시각적 구현물로 표현하는 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마음 열고 뜻을 모아

이번 역사관 재개관은 많은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고 다양한 사람이 협업했기에 새로움을 더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 박물관이 그동안 꾸준하게 수집하고 축적해온 현대사 유물과 콘텐츠가 있었기에 개편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그야말로 박물관의 역량을 함께 모으고, 외부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댔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쉽고 미진한 부분이 왜 없겠는가. 다음 개편에서는 더 창의적이고 발랄한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뜻을 모아 펼쳐내길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