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에 전시된 아리랑 2호의 잔해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사 속 오늘

우리별부터 다누리까지,

한국 인공위성 개발의 역사

전 세계의 눈은 이제 지구 너머 우주를 향한다.
인공위성을 비롯한 우주 개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국가 차원은 물론 세계적인 기업도 뛰어든다.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된 이후 수많은 인공위성이 우주를 향했다.
한국은 1992년 8월 우리별 1호 이후, 1993년 9월 우리별 2호, 1995년 8월 무궁화 1호, 1996년 1월 무궁화 2호 등이 발사됐고
최근에는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인공위성 개발의 역사를 들여다보자.

  • (왼쪽부터) 1992년 발사된 우리별 1호, 1995년 무궁화 1호, 1999년 아리랑 1호, 2003년 과학기술위성 1호, 2010년 천리안 1호, 2013년 나로과학위성 © 연합뉴스

우주 경쟁의 서막

큰 질량을 가진 물체 주변을 도는 작은 질량의 물체를 위성(satellite)이라 한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위성, 즉 지구 따위의 행성 둘레를 돌도록 로켓을 이용해 쏘아 올린 인공 장치를 인공위성(artificial satellite)이라 부른다. 물체와 물체 사이에는 질량을 가지고 있는 모든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인 만유인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호(弧)를 그리며 운동하는 물체에는 호의 바깥쪽으로 나가려 하는 원심력이 있다. 지구가 위성을 잡아당기는 중력과 위성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원심력이 서로 평형을 이루면 위성은 지구로 떨어지지도, 떨어져 나가지도 않는 상태가 돼 일정한 궤도를 그리며 운행하게 된다. 인공위성의 운동 원리다.

인간이 특정 목적을 달성하고자 만든 만큼 과학, 통신, 군사, 기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2021년까지 세계에서 발사된 인공위성의 숫자만 1만여 대에 달하고 우리나라는 2022년까지 20여 개를 쏘아 올렸다. 인류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은 1957년 10월 4일 구소련(러시아)의 스푸트니크 1호였다. 지구 저궤도로 발사된 이 인공위성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냉전 시대와 맞물리며 미국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치열한 우주 경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이듬해(1958년) 익스플로러 1호를 쏘아 올렸고, 1961년 구소련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탑승한 보스토크 1호를 발사했다. 미국 역시 1962년부터 우주비행사를 태우는 머큐리 계획을 실시했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미국과 소련을 제외한 나라에서도 우주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위치한 나로우주센터 © 연합뉴스

우리별, 무궁화, 아리랑 등 우리 인공위성의 등장

대한민국은 1980년대 ‘2000년대 국가발전 연구 특별위원회‘에서 항공우주산업 정책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이후 1987년 12월 4일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법률 제3991호)을 제정하며 인공위성 개발을 시작했다. 제1조 “항공우주산업을 합리적으로 지원, 육성하고 항공우주과학기술을 효율적으로 연구, 개발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생활의 향상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항공우주산업을 지원해 국민경제를 끌어올리고 우주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1989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에 인공위성연구소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연구 개발이 시작됐다. 이러한 연구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KITSAT-1)’가 1992년 8월 11일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의 기아나우주센터에서 발사됐다. 인공위성연구소의 연구 인력이 1989년부터 3년간 영국 서리 대학교(University of Surrey)의 위성 개발 및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개발한 우리별 1호는 지구 표면 촬영, 음성 자료와 화상정보 교신 등의 실험을 수행했다.

1993년 9월 26일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제작한 우리별 2호를 발사했다. 우리별 1호 개발을 주도한 연구원들이 귀국해 국내 연구팀들과 함께 위성의 임무 분석과 설계, 제작, 시험까지 모든 과정을 인공위성연구소에서 독자적으로 수행했다. 이후 1995년 8월 5일 통신위성 무궁화 1호, 1996년 1월 14일 무궁화 2호가 발사됐다. 무궁화 2호는 1호의 수명 단축을 보조하기 위한 것으로 성공적으로 발사돼 위성 통신 서비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9년 5월 26일에는 우리 최초의 고유모델 인공위성인 우리별 3호, 같은 해에 무궁화 3호와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1호, 2006년에는 아리랑 2호, 무궁화 5호 등이 연달아 발사됐다.

  •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연구소 내 홍보관에 전시된 우리별 1호, 과학기술위성 1호, 우리별 3호의 모델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우주를 향한 꿈은 현실이 되고

2000년에는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 중 하나인 우주인 배출사업은 2008년 결실을 이뤘다. 그리고 2009년에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열세 번째 우주센터인 ‘나로우주센터’를 준공하며 우주 개발 강국으로 떠올랐다. 이후에도 통신해양기상위성인 천리안과 올레 등이 발사됐고 2015년에는 24시간 지상을 관측할 수 있는 아리랑 3A호가 발사됐다. 2021년에 최초로 발사된 누리호는 2022년 2차 발사에서 목표 궤도 진입에 성공했고, 2022년 8월에는 우리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인 다누리호가 발사됐다. 다누리호는 지난 12월 17일 1차 임무궤도 진입기동(다누리호를 임무궤도인 ‘달 상공 100km 원 궤도’에 안착시키기 위한 기동)에 성공하며 발사된 지 135일 만에 달 궤도에 진입했다. 2007년 첫 로드맵이 언급된 이후 ‘달 탐사 계획’을 수립해 실행한 우리나라는 결국 다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로 세계에서 일곱 번째 달 탐사국 지위에 올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서는 미래에 더 많은 인공위성을 확보하고자 힘쓰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스페이스X, 원웹 같은 기업에서도 뛰어드는 등 저궤도 위성통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과기부는 한국 인공위성 확대 및 통신기술 개발을 위해 2024년부터 8년간 5,700억 원 규모의 개발사업을 계획 중이다. 지난 11월 28일에는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23년간의 장기계획으로 우주항공청 설립부터 2045년 화성 착륙까지 우리 우주산업의 향후 여정이 담겨 있다.

이달의 근현대사

월별 주요 일정
1

1

미국 정부, 대한민국 정부를 공식적으로 승인(1949)

쓰레기 종량제 전국 실시(1955)

3

독도에 우편번호 부여(2003)

4

1·4 후퇴(1951)

문교부, 중고생 두발·교복 자율화 결정(1982)

5

야간 통행금지 전면 해제(1982)

8

이봉창 의사, 도쿄에서 의거(1932)

13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1962)

20

국내 승용차, 미국에 처음으로 수출(1986)

21

김신조 등 북한 무장 공비 31명 침입(1968)

26

전국에 쥐 잡기 사업 실시(1970)

30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발족(1954)

2

5

금강산 육로 관광 50년 만에 재개(2003)

8

2·8 독립 선언서 발표(1919)

10

조선어연구회, 동인지 『한글』 창간호 발간(1927)

17

세종남극과학기지 준공(1988)

21

단재 신채호 선생, 뤼순 감옥에서 복역 중 서거(1936)

24

세계에서 56번째로 국제통신위성기구 가입(1967)

25

헌법재판소, 사형제 합헌 결정(2010)

28

대구에서 2·28 민주운동(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