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고 노래하다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권리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의 <새해에 띄우는 음악편지>

  • 여태껏 인류를 움직인 것은 상상이다. 현재에 주저앉지 않았기에 세상은 어기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상상이 솟아나지는 않는다. 신호가 필요하다. 때로는 속 깊은 마음으로 당신을 일깨우는 시계 초침 소리, 때로는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와 닮은 클라리넷 선율. 더께 쌓인 책상 위에 앉아서 마냥 재잘거리는 그 신호가 당신을 찾았다. 사진 김성재 싸우나스튜디오

    마음을 어루만지다가

    지난 1월 27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2021년 첫 문화공연 <새해에 띄우는 음악편지>가 열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몇 개월간 온라인으로 전환됐던 공연이 모처럼 오프라인으로 열린 덕분인지, 진행을 맡은 박현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문화공연 기획위원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났다. 박물관 누리집에서 관람 신청을 해 찾아온 관람객의 눈빛 역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다수 수상하며 명성을 쌓고,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한 세계 주요 공연장에서 거장 지휘자들과 무대에 섰던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이다. 2016년부터 최근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수석 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극장이 공연을 중단하면서 조인혁은 한국에 돌아왔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 주로 연주했던 그는 이제 고국에서 다양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솔로 클라리넷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이날 공연에서도 그는 피아니스트 유재연의 반주에 맞춰 입체적인 솔로 연주를 들려줬다.
    조인혁의 연주에는 다양한 표정이 읽힌다. 첫 곡 <애국가>에서는 차분하고도 진중하게 연주 공간(3층 다목적홀)을 감쌌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클라리넷 협주곡> 중 ‘2악장 아다지오(Adagio)’에서는 평온한 연주로 관람객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클라리넷에 관심이 많았던 모차르트는 오페라를 비롯한 자신의 여러 작품에 이 악기를 활용했지만, 정작 클라리넷을 위한 작품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뿐이다. 그중 이날 연주한 2악장 아다지오는 느리고 평온한 형식으로 감미롭고 아름다운 선율이 돋보인다. 1985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삽입곡으로 쓰여 유명세를 탄 이 곡을 통해 조인혁은 코로나19로 인해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했다.

공간을 무지개처럼 채우는 소리들

샤를 마리 비도르(Charles-Marie Widor)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서주와 론도 Op.72>에서는 다양한 색채들의 폭발적인 향연을 귀로 들려주었다. “보석과도 같은 곡”이라는 박현진 기획위원의 표현이 대번 떠오를 만큼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인 곡이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 OST 중 <바람피리>(곡: 오시마 미치루)에서는 바람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선율을 선사하고,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의 오페라 <카르멘>에 등장하는 명장면들을 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가 편곡한 <카르멘 환상곡>에서는 스페인 음악 특유의 선율과 열정의 표정이 읽혔다. 사라사테의 음악을 일컬어 “신선한 장밋빛 볼을 가진 시골 소녀”라고 표현한 어느 저술가의 말이 연상되기도 했다. 성악곡으로 잘 알려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보칼리제(Vocalise)>는 가사는 없지만 성악가가 선택한 모음 중 하나를 사용해 부르는 곡으로, 조인혁의 클라리넷은 성악가의 목소리를 이식한 듯 듣는 이의 귓가를 경쾌하게 간질이고 속삭였다. 프란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의 <클라리넷 소나타> 중 3악장 연주에서는 슬프고 고요한 선율을 담담하면서도 비장미 넘치게 표현했다.
조인혁의 클라리넷 연주는 관람객과 함께하는 공간을 무지개처럼 채운다. 차분하고 평온하게 이끌다가 폭발해버리고, 그러다 바람처럼 유려하게 흐르고, 바람 따라 도착한 낯선 곳의 열정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경쾌하게 우리를 웃게 해주다 말미에는 담담하게 우리의 마음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라고 말하듯. 언론인이자 에세이스트인 고종석은 자신의 책 『어루만지다』에서 무지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지개나 무지개 너머가 상징하는 이 희망들은, 흔히, 이룰 수 없는 희망들이다. 무지개 추적자는 몽상가다. 그러나 희망의 그 어기찬 추구에 떠밀려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비가 그친 후 이따금 찾아오는 무지개는 사람들에게 형용할 수 없는 위안을 준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새해에 띄우는 음악편지>를 통해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이 전해주고자 한 것도 결국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라는 공통분모가 있더라도 각자 사정이 다르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직접적인 조언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이럴 때 무지개 같은 색채들의 연주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마음을 어루만지는 연주를 들으며 사람들은 상상한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사소한 일이라도 좋다.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인혁의 연주는 잠깐 동안 달콤한 꿈이라도 꾼 듯한 경험을 안겨준다. 당장 사실이 아니어도 괜찮다. 당신의 꿈은 그 어기찬 추구에 떠밀려 곧 현실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