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은 한국 현대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국경일 '광복절'이다.
이날이면 한국의 독립을 기념하며 자연스레 독립 운동가들을 떠올린다.
마침 지난 6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소장 중인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 한 점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고,
덕분에 나는 안중근 의사의 인생과 철학을 되새길 수 있었다.
글 나수호(Charles La Shure)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 투옥 중일 때 나카무라 경수계장에게 준 것으로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라고 쓰여 있다. ‘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의 가르침만 못 하다’라는 뜻인데, 이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아동 학습서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유래한 문구이다. 힘찬 필체로 쓰인 이 유묵에는 다른 유묵과 마찬가지로 족자 왼쪽 하편에 장인(掌印)이 찍혀 있다. 약지가 짧은 것은 그가 손가락을 잘라서 흘린 피로 독립운동가 동지들과 함께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는 혈서를 썼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사관에는 안중근 의사의 또 다른 유묵인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가 전시돼 있다. 그리고 그 유묵 옆에는 흥미로운 다른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일본군이 전라도에서 의병장들을 체포한 기념으로 1910년에 만든 『남한폭도대토벌기념사진첩(南韓暴徒大討伐記念寫眞帖)』이 그것이다. 당시 대한제국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의병장’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그들은 그저 성가신 ‘폭도’였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테러리스트’라는 사람도 있고 ‘자유의 전사’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식했다. 어렸을 적에는 자유의 전사는 좋은 놈이고 우리 편인 반면, 테러리스트는 나쁜 놈이자 우리의 적이 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테러리스트’라고 명명한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자유의 전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입장 차이인가? 꽤 불편한 의구심이었다.
그 의구심이 극에 달한 것은 한국에 온 다음이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출신인 나에게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린 테러 공격은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무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연설한 내용까지 기억한다. 미국에 공격을 감행한 겁쟁이들을 추적해서 몰살시키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런데 분노와 슬픔 가운데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었다. 겁쟁이들? 9·11 테러를 저지른 자들은 분명 잔인하고 사악한 자들이지만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자들이니 ‘겁쟁이’라는 말은 맞지 않았다. 의도는 악하더라도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자유의 땅과 용자들의 고향’이라고 자칭하는 미국에서는 그런 인식이 허용되지 않았다.
혼자서 고민한 끝에 깨달았다. '자유의 전사'와 '테러리스트'의 차이는 그 사람이 얼마나 용감한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표방하는가에 달려 있다. 즉, 그들이 진정한 자유를 사랑하면서 인간의 타고난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느끼고 배타적인 세계관을 지키려는 것인지의 차이다. 같은 맥락으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 의사는 단순한 암살자가 아니라,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의병장이었다. 그리고 그가 표방한 가치는 자유뿐만 아니라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유묵에서 볼 수 있듯이 다음 세대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것이 황금보다 더 귀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자유와 평화가 있는 세상을 내다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교육자로서 한국의 의병사를 들여다보며 큰 감동을 받는다. 안중근 의사와 같이 많은 의병장들은 본래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배우기만 하고 상아탑에 앉아서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았다. 그 배움이 의미가 있으려면 실천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이 배우고 남에게 가르쳤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한때 미국에도 유럽의 제국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싸운 사람들이 있었다. 제국의 입장에서는 ‘반역자’들이었겠지만 미국인에게는 ‘애국자’였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미국인이 그들을 추모한다. 나라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고귀한 가치와 이상, 즉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라는 권리를 하늘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여했다는 점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도 이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표방하면서, 더 나아가 교육의 중요성까지 강조했다. 그는 다음 세대가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비판적 사고도 가지지 못하게 되고, 목소리가 큰 자들에게 휘둘릴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그러한 생각이 담긴 이번 유묵은 사회·정치적으로 분열된 오늘날의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이상과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되새기게 해준다.
안동에 자리 잡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경북독립운동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 조사·연구, 전시, 교육함으로써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켜온 경북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립 및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2007년 설립됐다.
전시관은 전시1관인 '독립관', 전시2관인 '의열관'으로 나뉜다. 독립관은 1894년 갑오의병부터 1945년 조국 광복까지 51년간 펼쳐진 경북 사람들의 독립운동을 담아내고 있다. 의병항쟁과 국채보상운동, 자정순국, 만주지역 항일투쟁, 6·10 만세운동, 의열투쟁, 한국광복군 등 경북 지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의열관은 안동 독립운동의 뿌리가 된 전통마을의 항일투쟁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안동실에서 그 투쟁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고, 추강영상실에서는 경북 사람들의 51년 독립운동사를 영상으로 상영한다. 또한 유아 교육과 체험공간인 새싹교육실도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다양한 체험을 통해 독립운동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나라사랑을 가르칠 수 있는 효과적인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밖에 신흥무관학교 독립전쟁 체험장도 있는데, 이곳은 과거 신흥무관학교의 정신과 교육과정, 독립전쟁을 최첨단 장비와 시설로 재현했다. 독립군의 훈련과정과 전투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면 좋은 체험 공간이다.
관람 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입장마감: 오후 5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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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36730)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독립기념관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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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 | 매주 월요일, 신정, 구정, 추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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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 042-820-26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