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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은

언제 어떻게 끝날까?

2019년 말 이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있다. 인류사에서 팬데믹은 문명 발달과 함께 꾸준히 존재해왔다.
동아시아의 근현대에는 어떤 감염병이 있었고,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왔을까.
그리고 팬데믹은 대체 언제 어떻게 끝나는 것일까.
이번 호에는 9월 8일에 개막하는 특별전 <다시, 연결 : 모두가 안전해질 때까지>와 연계해 동아시아의
근현대사 속 팬데믹 사례와 현재 우리 시대의 팬데믹을 다루는 칼럼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글 이종식 포항공과대학교 인문사회학부 조교수

  • 코로나19 관련 물품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코로나19 선별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 연합뉴스
  • 코로나19 백신
  • ‘천연두’라고도 불린 두창의 백신

팬데믹의 ‘끝’에 대하여

  • 팬데믹(pandemic)이라는 말은 이제 거의 모든 시민이 다 아는 상식이 됐다. ‘여러 국가나 대륙에 걸쳐 발생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라는 정의는 그저 당연한 소리처럼 들린다. 팬데믹의 대표적인 사례를 말해보라고 하면, 코로나19와 더불어 약 100년 전에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을 언급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팬데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이정도쯤이야.

    제2형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2, 코로나19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가 2019년 말 중국 우한을 휩쓸기 시작하고 국내에서도 첫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1월 20일 이후로 장장 2년 반 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우리가 코로나19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아마도 딱 하나일 것이다. ‘이 팬데믹의 시대는 도대체 언제 어떻게 끝나는 걸까?’ 여기서 우리가 학수고대해 마지않는 팬데믹의 종식이라는 것을 조금 더 명확히 짚고 넘어가 보자. 팬데믹의 끝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의학적으로 팬데믹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거나 특정한 지역에서 새로운 환자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시점을 팬데믹의 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동서고금의 팬데믹 역사에서 이러한 의미의 종식이 실제로 일어난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그 유일한(가축 감염병 ‘우역’까지 포함하면 유이한) 사례는 두창(痘瘡, 천연두)이다. 두창의 박멸 성공은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다른 질병들과 달리 한 번 접종하면 평생 유효한 백신 개발에 성공했으며, 특이하게도 원인 바이러스가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을 감염시키지 않아 더 쉽게 통제할 수 있었다. 또한 두창 환자는 외형적으로도 분간하기가 쉬워 초기에 적절히 조치하기에도 용이했다.

두창과 달리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역사적인 팬데믹들은 이처럼 어느 순간 속 시원하게 종식되었다기보다는 조금 더 애매한 방식으로 끝이 났다.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다가 질병이 너무 많이 퍼져 자연스레 정점을 찍고서는 어느 정도 수그러들어 병원체가 결코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경우가 있었고, 기술적으로 유효한 백신이나 치료법이 개발됐지만 이를 다수에 고르게 보급하지 못해 끝날 듯 끝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2020년 12월 8일 전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화이자 백신의 접종이 시작됐을 때, 우리는 백신의 힘으로 곧 코로나19를 끝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8월 현재 대다수의 국민이 두 차례에서 네 차례 백신 접종을 마쳤음에도 여전히 이 팬데믹의 끝을 상상하기란 난망하다. 팬데믹의 ‘끝’은 때가 되면 당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미국 예일대학교의 의학사학자 나오미 로저스(Naomi Rogers)는 팬데믹 종식의 불투명한 속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끝을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만약 당신이 팬데믹의 종식이라는 관념에 반대한다면, 당신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반대하고 있는 것인가? ‘아뇨,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라고 말할 때, 당신이 주장하는 바는 무엇인가? 감염병의 끝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하나의 길고 지난한 과정이다.” 팬데믹의 끝이 일순간에 의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 포괄적이고 사회·정치적인 과정일 수 있다는 의학사의 교훈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 동아시아 사람들이 맞닥뜨렸던 근대적 팬데믹의 사례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만주 페스트 발생 당시 하얼빈의 방역 담당자들
© Thomas H. Hahn Docu-Images

근현대 동아시아 팬데믹의 대응과 종식

20세기 동아시아가 최초로 경험한 팬데믹은 잘 알려진 스페인독감이 아니라 1910~1911년 청나라 말기에 유행한 만주 페스트(the Manchurian Plague)였다. 역병은 1910년 10월 중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에 있는 만저우리(满洲里)에서 시작됐다. 당시 만주 토종의 다람쥐과 포유류인 타르바간 마멋(tarbagan marmot)의 모피가 유럽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었고, 현지의 중국인들과 러시아인들은 이 동물을 맹렬히 사냥했다. 이 동물과의 접촉에서 시작된 만주 페스트는 철도를 따라 남쪽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다. 그해 11월 러시아가 통제하는 하얼빈(哈爾濱)에서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초부터는 청나라가 영향력을 유지하던 선양(瀋陽)과 일본이 점령하던 다롄(大連) 등지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만주 페스트를 연구한 중국 의학사 전문가 윌리엄 서머스(William Summers)는 이처럼 복수의 제국주의 국가가 이권을 노리고 앞다투어 진출하던 만주라는 반(半)식민지 공간에서는 팬데믹의 종식조차 국가 간의 경쟁과 협상으로 좌우됐다는 점을 밝혔다. 당시 중국 측 방역 책임자 우롄더(伍連德)는 만주 페스트 대응을 주도하며 자국의 주권을 지키고자 했지만, 다른 열강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다. 예를 들어 우롄더는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다고 보았지만, 프랑스 전문가들은 아편굴의 자욱한 연기에 익숙한 중국인들이 만주 페스트를 폐페스트(pneumonic plague)로 지나치게 성급하게 단정 짓는다며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또한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철도를 폐쇄하는 문제를 놓고도 일본과 러시아의 견해와 대응이 일치하지 않았다. 만주 페스트 발발 이후 수개월이 지나는 동안 불협화음을 거듭하던 중국, 러시아, 일본,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은 1911년 4월에 이르러서야 국제회의를 개최해 이견을 조율하고 질병의 종합대책을 합의했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과정이 제국주의적 각축의 논리보다는 호혜적으로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면, 6만여 명의 목숨이 사라지기 전에 조금 더 일찍 팬데믹을 끝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팬데믹의 끝’이라는 의미에 대한 우리의 관심사에 비추어볼 때, 1918년 시작된 스페인독감의 세계적인 유행이 끝나는 시점과 동아시아에서의 유행이 마무리되는 시점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통상적으로 서구권에서는 1918년 봄부터 1919년 봄까지 약 1년간을 팬데믹 기간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18년 여름부터 1921년 여름까지 세 차례 유행이 있었다고 본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의학사학자 김영수에 따르면, 이 시기는 아직 바이러스학이 완전히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팬데믹을 일으키는 병원체에 대한 이해가 주로 역학적인 관찰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역학조사의 내용은 각국 정부의 정책 방향성이나 행정력의 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서구 국가들은 1918~1919년의 팬데믹과 1919년 이후의 산발적인 유행이 역학적으로 차이가 크다고 보았던 반면, 일본은 1918년부터 1921년에 이르는 일련의 유행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팬데믹과 관련된 과학·의학적 지식은 언제 어디에서나 초역사적으로(transhistorically) 자명한 것은 아니었다. 각각의 시대는 그 시대에 가용한 생물학적·의학적 지식과 사회적인 여건들을 종합해 팬데믹의 대응책과 종결 시점을 다르게 결정했다.

  • 1918년 살바르산 항생제를 투여받는 모습

“마법의 탄환은 없다”

1910년 독일의 의과학자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가 최초의 근대적 항생제 살바르산(salvarsan)을 발견한 이래, 의학사에서 기적적인 만능치료제들은 관용적으로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라 불렸다. 그러나 살바르산은 기대와 달리 매독을 끝내지 못했다. 하버드대학교의 미국 의학사 전문가 앨런 브란트(Allan Brandt)는 살바르산뿐만 아니라 그 외의 수많은 치료제가 단독으로 감염병을 종식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밝히며, “마법의 탄환이 말하는 약속은 결코 실현된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백신 개발 이후로도 지속되는 코로나19 국면 속에서 ‘위드 코로나’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우리는 어쩌면 이미 이 팬데믹에 명쾌한 마무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어렴풋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팬데믹은 마법처럼 자동으로 한순간에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날은 아예 오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도 없다. “마법의 탄환은 없다”라는 팬데믹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의학·사회적인 조건들을 두루 고려하여 협상하고 합의하며 팬데믹의 끝을 결정해왔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긴 팬데믹의 끝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모두가 납득할 만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 개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하나 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 팬데믹을 살아내고 있으며, 따라서 그 끝을 결정하는 전 사회적인, 아니 어쩌면 전 지구적인 과정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팬데믹이 언제 어떻게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