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공감 초대석

‘학예연구사’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며

한실비 자료관리과 학예연구사, 이도원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학예(學藝)’는 학문과 예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라면 역사라는 학문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효과적으로 알리고 나누는 방법까지 고민해야 한다.
학문의 깊이와 넓이, 거기에 함께 나누는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힘들지만 보람된 일은 아닐까.
한실비·이도원 학예연구사는 올 2월부터 ‘학예연구사’라는 직함을 달며 국가 공무원이 됐다.
‘학예연구사’라는 직함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노력한다. 사진 김성재 싸우나스튜디오

  • 이도원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 한실비 자료관리과 학예연구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학예연구사가 되기까지

반갑습니다. 올 2월부터 학예연구사가 되셨다죠.
각자 어떤 업무를 맡으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도원 | 저는 상설전시 역사관을 담당하고 있는 이도원 학예연구사입니다. 최근에는 9월 8일 개막하는 특별전 <다시, 연결 : 모두가 안전해질 때까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실비 | 자료관리과에서 아카이브 업무를 맡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형태의 사진이나 음원, 영상 등을 관리하고 있죠.

어떤 계기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일하게 되셨나요?

이 | 역사를 전공했는데 전공 계열에서 일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졸업 이후에 국립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전시 경력을 쌓았고, 올 2월부터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전시운영과에서 전시 업무를 맡고 있는데 아주 즐겁습니다.

한 | 대학원에서 개항기를 공부했어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시 개항기부터 다루는 만큼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따라서 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일하게 됐어요.

두 분은 학예연구사로 부임하기 전에 연구원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근무하셨어요.
그때와 지금의 업무는 어떻게 다른가요?

한 | 연구원 시절에도 자료관리과에서 일했는데, 그때는 실물 자료를 등록하고 관리했어요. 디지털 자료든 실물 자료든 모두 근현대사 자료를 다룬다는 점은 일맥상통하지만, 자료를 다루는 형태나 방법 등은 달라요. 실물 자료는 생성 시기와 형태 등 물리적인 면도 중요하게 관리하지만, 디지털 자료는 그 안에 담긴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죠.

이 | 저도 그때나 지금이나 전시운영과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업무가 비슷해요. 전시는 팀 단위로 운영되거든요. 연구원 시절에는 상설전시 역사관 개편을 비롯한 몇몇 특별전에 참여했죠. 다만 당시에는 학예연구사를 서포트하면서 자료를 정리하는 업무였다면, 지금은 직접 전시 기획을 맡아 진행한다는 점이 다르죠. 전시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어요.

이도원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는 연구원 시절
상설전시 역사관 개편에 참여한 바 있다.

넓고 다양하게 준비하고 공부해야

학예연구직을 꿈꾸는 분들이 많아요. <청년 큐레이터 아카데미>의 인기가 뜨거운 이유이기도 하죠.
학예연구직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이 | 연구직 공무원인 연구사에는 여러 직렬이 있는데, 저희는 박물관 ‘학예’ 업무를 담당하는 학예연구사입니다. 학예연구사는 보통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뉘고, 그중 우리 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이기 때문에 국가직을 선발합니다. 학예연구사는 ‘경력경쟁채용 방식’으로 채용하는데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박물관은 채용 과정이 기본적으로 비슷합니다. 자신이 해온 공부와 경력을 증명하는 서류전형을 거쳐 서술형 필기시험과 면접을 치르죠. 그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 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전시는 주제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최근 트렌드와 기술을 반영하며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학예연구사의 경력이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이 | 앞서 말했듯 일반적인 공무원 시험과 달리 ‘경력경쟁채용’이기 때문에 채용에 경력 조건이 붙는 겁니다. 석사 이상의 학위나 박물관 근무 경력 등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 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지게 되죠.

필기시험은 어떤 형태로 진행되나요?

한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경우에는 개항기 이후의 한국 근현대사, 세계사, 박물관학 등 세 과목의 필기시험을 치릅니다. 과목당 세 문제씩 총 아홉 문제가 출제되죠.

이 | 서술형인 데다 시험 범위 자체가 넓어요. 게다가 시험시간이 한정돼 있으니 쉽지는 않죠. 출제위원의 문제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함은 물론, 배우고 익힌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야 하죠. 제 경우에도 온갖 지식을 ‘영끌해서(영혼까지 끌어모아서)’ 풀었던 것 같아요. 글의 맥락도 중요해요. 지식을 무조건 늘어놓는 게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경과, 의의 등을 설득력 있게 엮어 구성해야 하니까요.

시험 준비는 어떻게 하셨어요?

이 | 한국사의 경우에는 박물관 특성에 맞게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했어요. 평소 글을 논리정연하게 풀어내는 연습을 해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 | 저는 평소 근현대사 관련 책을 봤어요. 내용이 워낙 광범위해서 단기간에는 어렵고, 평소 꾸준히 봐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 | 맞아요. 예상한 범위에서 시험문제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학예연구사를 꿈꾼다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 | 학위 공부할 때는 대체로 좁고 깊게 파고들어요. 자기 연구 분야에만 집중하니까요. 하지만 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되고 싶다면 넓고 다양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박물관에 놀러 오세요

학예연구사로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한 | 학부에서 공부할 때부터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근현대사를 다루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마침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담아내고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이곳의 업무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자료를 관리하면서 코로나19 관련 현장이나 대통령 선거 현장 등 당대의 현장이 담긴 자료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디지털 자료를 잘 관리하고 보존해서 후대에 잘 넘겨줄 수 있길 바랍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자료들을 기반으로 전시를 구성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는 주로 어떤 현장을 담아내고 계신가요?

한 | 당대 사회의 주요 이슈를 테마로 한 공간 및 현장들을 주로 그 대상으로 삼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통령 선거 현장을 담았고, 최근에는 장애인 차별 철폐 지하철 시위 현장을 담았죠.

특정 사건이나 테마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당대를 기록한다는 건 참 까다로운 일 같습니다.

한 | 맞아요. 그래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해요.

지금 말씀하신 디지털 자료를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나요?

한 | 네, 물론입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근현대사 아카이브 누리집에 방문하시면, 동시대의 현장이 담긴 디지털 자료를 확인하고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도원 학예연구사께서 앞으로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이 |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은 것은 좋지만, MZ세대라 불리는 젊은 층의 큰 호응을 이끄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박물관의 한계라기보다 고정관념이 더 큰 원인 같습니다. 예를 들어 미술관 같은 곳은 젊은 층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고,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인증샷을 남기기도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전파가 됩니다. 반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역사를 다루어서인지 다소 내용이 무겁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올해 문을 연 주제관을 보면 베스트셀러나 광고 등을 주제로 밝고 감각적으로 전시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 | 미술관에는 놀러 간다고 생각하지만, 박물관에는 ‘공부’하러 간다는 일부 인식을 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쉬러 올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보고 싶어요.

그러자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주제의 변화? 공간 구성의 변화?

이 | 주제는 어차피 무거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주제를 쉽고 다채롭게 ‘표현’할 수는 있겠죠. 최근에는 실감 영상 같은 새로운 전시 연출이 관람객의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팬데믹을 다루는 이번 특별전에도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특별전에서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는데요, 그 메시지를 인터랙티브 영상으로 전달하는 거지요.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협력과 연대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도록 준비했어요. 자세한 것은 9월 8일부터 열리는 특별전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웃음).

어떤 전시 연출일지 궁금하네요.

이 | 팬데믹은 결국 병원체를 다루는데, 사실 이런 건 눈에 안 보이잖아요. 그런 걸 전시로 표현하려고 하다 보니 인터랙티브를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요소를 활용하게 됐습니다. 글이 아니라 관람객의 움직임만으로도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이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렇듯 요즘 전시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이런 시도를 통해 박물관에 대한 무거운 인식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