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고 노래하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횡단하는
히치하이커가 되고 싶다면

어린이날 기념 덜미인형극 <문둥왕자>

지난 5월 5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어린이날을 기념한 덜미인형극
<문둥왕자>가 열렸다. 부모와 함께 박물관을 찾은 어린이 관람객들은 눈을 반짝이며
인형들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그들의 대사에 귀 기울였다. 이날 공연에서 공연자들은
1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대뿐 아니라 관객석을 오가며 특별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사진 김성재 싸우나스튜디오

개밥바라기 별로 향하는 좌충우돌 여정

우리나라 전래의 민속 인형극 ‘꼭두각시놀음’을 남사당 용어로는 ‘덜미’라 부른다. 목덜미를 쥐고 노는 인형놀이 또는 뒷덜미를 잡혀서 노는 인형놀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덜미인형극 <문둥왕자>는 남사당놀이와 고성오광대의 이수자들로 구성된 극단 광대생각(대표 선영욱)의 노하우를 통해 탄생했다.
<문둥왕자>의 주인공 ‘문둥이’라는 캐릭터는 본래 경남 고성지방의 전통 탈놀음인 고성오광대(국가무형문화재 제7호)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문둥병’에 걸렸다. 문둥병(‘한센병’을 낮잡아 이르는 말)은 인류 역사에서 오래된 질병 중 하나인데 피부, 말초 신경계, 상부 기도를 침범해 조직을 변형시키는 감염병이다. 감염병의 영향으로 주변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문둥이는 어느 날 주인(공주)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강아지 ‘해피’와 만난다. 문둥이와 해피 모두 자신이 잘못 태어났다고 여긴다.
“이곳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그런데, 너의 눈은 별처럼 총총히 빛나고 있어.”(해피) “네 눈도 초롱초롱 빛나는데?”(문둥이) “그게 우리가 특별한 존재라는 증거야.”(해피) 흥미로운 점은 문둥이와 해피가 현실에 좌절하되 주저앉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둘은 서로의 장점을 찾아낸다. 문둥이는 해피의 눈이 빛난다고 말해주고, 해피는 문둥이를 왕자라 추켜세운다. 둘은 자신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다른 세상으로 가자고 결의한다. 그곳은 바로 개밥바라기 별! 그곳에 가면 문둥이와 해피는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문둥왕자>는 둘이 개밥바라기 별로 향하는 좌충우돌 여정을 그려낸다.

<문둥왕자>는 공연자와 관객이 어우러지는 즐거운 시간을 마련했다.

어린이 관객을 사로잡는 알찬 구성

남사당놀이의 덜미인형극과 전통 연희가 어우러진 <문둥왕자>는 2016년 창작연희 작품공모에 선정돼 초연했고 이후 좋은 반응을 얻으며 현재까지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단원들은 사물놀이를 하며 관객석 사이를 유유히 지나 무대로 향한다. 신명 나는 연주를 마친 후에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고 나면, 어느새 덜미 인형들이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된다.
무대 오른쪽에 자리 잡은 두 명의 산받이(악사이면서 인형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는 문둥이나 해피 등 주요 인물과 대화를 나누며 흥을 돋운다. 때때로 첨언하며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한다. 공연에는 덜미 인형뿐 아니라 전신의 움직임이 가능한 마리오네트, 테이블 인형, 손가락 인형 등 다양한 형태의 인형들이 등장한다. 장면 변화에 따라 비행기, 상여 등으로 변신하는 입체적인 무대와 귀여운 소품들, 인형들의 노래와 춤의 바탕이 되는 창작 국악곡 또한 흥미롭다. 이러한 요소 덕분에 어린이 관객들은 지루할 틈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흥겨운 음악은 ‘듣는 재미’를 안기고, 인형들은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관객석과 무대를 두루 활용하며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열린 공연 형식이 돋보인다. 인형들은 때때로 관객석으로 가서 어린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등 유쾌한 장면을 연출한다. 1시간 이내의 상연 시간으로 짜인 데다, 빈틈없는 알찬 구성 덕분에 <문둥왕자>는 시종일관 어린이 관객들의 미소와 웃음을 유발한다.

덜미인형극으로 만나는 어린이라는 세계

나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다른 세상, ‘나만의 별’을 찾아 떠난 문둥이와 해피의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우주로 향하지만 괴물 비비를 만나 잡아먹힌다. 하지만 괴물 비비가 배탈이 나 방귀를 뀌는 덕분에, 둘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해피의 주인인 공주와 조우한다. 해피는 공주가 자신을 잃어버린 후 슬퍼했다는 사연을 듣고 오해를 푼다. 문둥이 역시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임을 확신한다. 문둥이가 극 제목처럼 ‘문둥왕자’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결국 <문둥왕자>는 ‘성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변의 괴롭힘 때문에 괴로워하던 한 아이가 자신과 같은 처지의 해피를 만나고, 여정을 거쳐 끝끝내 빛을 찾아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내가 왕자라고?”(문둥이) “몰랐겠지? 아무도 이야기 안 해줬을 테니.”(해피) 문둥이와 해피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와 사랑이 아니었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김춘수의 시「꽃」부분)라는 어느 시구처럼 문둥이와 해피는 서로를 호명하고 다가가면서 그동안 그들을 짓누르던 슬픔에서 벗어난다. 이해하려는 노력, 사랑하려는 노력 덕에 그들은 자신들의 꽃을 피운다.
어린이라고, 미성년이라고 마음까지 어린 것은 아니다. 각 세대에게는 모두 각자에게 알맞은 ‘세계’가 있다. 그 세계에서 어린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행동하고 미끄러진다. 그리고 이내 다시 일어선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히치하이커가 되고 싶다면 결국 그들 마음 속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