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만남

현대사 전시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겠다

남희숙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올 5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오르세미술관 관장을 맡은 바 있던
로랑스 데 카르가 루브르박물관 개관 228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관장에 임명된 것이다.
같은 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도 역시 의미 있는 임명이 있었다. 지난 5월 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신임 관장으로 남희숙 전 자료관리과장을 임명한 것. 그는 2년 임기 동안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까.
우리의 근현대사를 어떻게 표현하고 전시할까.
사진 김성재 싸우나스튜디오

남희숙 신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이하 ‘관장’)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조사연구과장, 연구기획과장, 자료관리과장 등을 역임해왔다. ‘박물관 전문가’라 불릴 만큼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어떻게 운영되고 변화할지 기대하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남희숙 관장을 찾았다.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선도적인 박물관 만들 것

관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남희숙 관장: 역사학 전공자로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심히 일했던 것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쁩니다. 내년(2022년)은 개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새로운 10년을 위한 방향성을 마련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관장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맡아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도 느낍니다.

역사박물관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역사는 시간을 축으로 인간 삶의 변화를 탐구해 기록하는 학문입니다. 역사가들이 역사적 사건의 인과 관계를 찾아 설명하는 사람들이라면, 역사박물관은 그 인과 관계를 좀 더 쉽게 설명해주는 곳입니다. 인과 관계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요. 과거의 원인이 현재의 결과가, 현재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가 되기도 하죠. 역사박물관은 관람객들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다시 음미하고, 미래를 위해 자신 혹은 공동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관장님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온 국민들의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역사문화공간입니다. 공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객관성’이 담보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 이후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지만 그 과정에서 어둡고 아픈 역사도 있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과 균형 잡힌 해석을 제시하고 상호 이해 및 공존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과거의 갈등과 상처를 딛고 일어나 화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민주사회에 걸맞은 다원적 역사상과 세계사와의 관련성을 구현하는 곳이 돼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는 국제적 힘의 질서 속에서 전개된 측면이 있기에 그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국민들이 다원적인 역사상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하죠. 예를 들어 특정 주제로 전시할 때 세계사에서 유사 사례는 무엇이고, 세계사적 맥락에서 우리 현대사의 사례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비교해서 볼 수 있다면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국제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습니다.
미래 지향성 역시 중요합니다. 지금 전 세계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변화 속도가 빠릅니다. 이런 가운데 국민들은 때때로 불안감을 느끼고 고민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선도적인 박물관’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전시와 교육, 학술사업 등 모든 측면에서 참신한 주제를 개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민주사회에 걸맞은 다원적 역사상과
세계사와의 관련성을 구현하는 곳이 돼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는 국제적 힘의 질서 속에서 전개된 측면이 있기에
그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012년 개관 당시 건립추진단에서 근무하셨고, 이후에도 오랜 기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근무하셨죠.
이 공간에 대해 잘 알고 계실 듯합니다.
: 9년째를 맞이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현재까지는 대외적 인지도를 높이고자 양적인 성장에 목표를 두고 박물관 사업 전략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많은 국내외 관람객들이 다녀갔고, 관련 기관에서는 외국에서 손님이 올 때 ‘필수 방문기관’으로 인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반면 질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그간 특별 전시를 1년에 5~6건 개최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럴 경우에는 전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수반되기 어렵죠. 관람객의 재방문율도 떨어지기 마련이고요. 앞으로는 횟수를 줄이되 질적으로 보다 우수한 특별 전시가 개최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자면 부서 간 협력관계가 중요합니다. 조사 연구를 기초로 자료 수집과 전시, 교육 등이 긴밀히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국제 협력 면에서 소극적이었다는 점 역시 아쉽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글로벌 사회의 리더 국가 중 하나로 인식되는 만큼 외국과의 교류 전시 등을 통해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려면

작년 초부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박물관 관람에도 많은 변화가 따랐습니다. :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제 전시 패러다임은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5년 전 우리 박물관에서 제작한 6·25 전쟁 관련 동영상이 현재(2021년 6월)까지 418만 회의 누적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희귀 영상들을 수집하고 자문을 받아 열심히 제작한 영상이죠. 이처럼 우수한 온라인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시 또한 ‘온라인 전용 전시’를 별도로 기획해야 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소장자료를 활용해 AI가 학습할 수 있는 빅데이터를 만들고, 그걸 기반으로 전시와 교육 등을 위한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더불어 흩어진 자료들을 엮어 역사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콘텐츠는 확장성과 창조성이 무궁무진하기에 세계인들에게 유용할 수 있죠. 이러한 콘텐츠들을 다양한 언어로 서비스한다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세계인과 한국 근현대사를 잇는 역사문화허브의 역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작년부터 비대면 사회의 영향으로 최첨단 기술들을 전시 관람에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더군요. : 현재 여러 박물관에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의 기술을 활용한 실감형 전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박물관 역시 3층 전시관 일부를 첨단 전시기법을 활용한 ‘미디어 전시실’로 특화해 올 연말부터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추진하는 광화시대(光化時代, Age of Light)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협업할 계획입니다. 미디어 아트의 일종으로 연말이 되면 우리 박물관 외벽에서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구현되는 광화 벽화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이 지니는 ‘소통의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잘 살리면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는 공간을 예술성과 첨단 IT기술이 접목된 ‘미디어 아트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새롭고 다양한 방식의
활동 시도

재임 기간 동안 관장님께서 중점에 둘 사안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 먼저 관람객이 내외부 공간을 편하고 쾌적하게 이용하도록 재정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고민하는 사회적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미래 지향적 사업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최근 코로나19 이후 삶과 생명의 문제, 자연과 인간의 공존 등 사회적 이슈가 전면에 부각됐고 안전한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는 욕구가 큽니다. 이를 위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하려고 합니다. 과거 역사에서 전염병으로 인한 팬데믹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켰는지 살펴보고, 현재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전시를 기획한다면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듯 새롭고 다양한 방식의 활동을 시도하겠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관련 학계 및 문화 예술 분야 전문가들과 꾸준히 협업하고 박물관 직원들과 충분히 소통한다면, 현대사 전시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우리 박물관 직원들에게도 필요하지만, 우선 저부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발전을 위해 변화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관련 학계와 긴밀히 협조하고 관람객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습니다. 독자와 관람객분들의 애정 어린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지켜봐주시고 격려해주시면서 따끔한 질책과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