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대한민국이
‘색’을 입은 그날

1998년 제작한 미국영화 <플레전트빌(Pleasantville)>에서 두 주인공은 우연히
건네받은 리모콘을 작동하다 텔레비전 속 흑백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양한 감정과
욕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조차 않던 흑백 세상에 사랑과 미움, 분노 등이 퍼지자 세상은
갑자기 총천연색으로 변하고 사람들은 놀라움에 휩싸인다. 흑과 백으로 가득하던
세상에 총천연색이 쏟아져 내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1980년 12월 1일, 컬러 방송이 처음 시작된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어떤 변화를 맞이했을까.

  • 1986년 당시 사람들이 26인치 컬러텔레비전 36대로 이루어진 ‘멀티비전’을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컬러텔레비전의 등장

대한민국 텔레비전 방송이 첫 전파를 띄운 것은 1956년 5월 12일이다. 국내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이었던 HLKZ-TV는 보도·교양·오락 등의 프로그램을 하루에 2시간, 그것도 격일로 내보냈다. 당시 실험방송을 본 사람들은 영화관이 아닌 안방 브라운관에서 소리까지 나오는 활동사진을 볼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느꼈다.
컬러텔레비전은 1928년에 최초로 시연되며 세상에 등장했다. 이후 발전을 거듭한 끝에 1954년부터는 미국 NBC에서 본격적인 컬러 방송의 문을 열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960년 9월부터 최초로 컬러 방송을 실시했고, 이어서 1966년에는 필리핀도 뛰어들었다.
국내에서 컬러텔레비전을 생산한 것은 오일 쇼크(아랍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을 제한하고 가격을 올리면서 전 세계 경제가 위축된 사건)로 떠들썩하던 1974년이다. 아남산업은 일본의 마쓰시타(현 파나소닉)와 합작해 한국내쇼날을 설립하며 컬러텔레비전 CT-201을 생산했다. 이후 삼성전자와 금성사(현 LG전자) 등의 기업에서 독자적으로 컬러텔레비전을 생산해 해외로 수출했는데 1978년에는 50만 대가량의 수출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 금성사의 하이테크 컬러텔레비전 1980년 지면 광고 Ⓒ LG전자
  • 1977년 생산된 삼성 SW-C3761 컬러텔레비전 수상기 Ⓒ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

대한민국은 이렇듯 1970년대 중반부터 컬러텔레비전을 제조해 수출하고 있었고 방송국들 역시 컬러 방송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대통령과 언론사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컬러텔레비전 가격이 고가(高價)여서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과 전기 부족 등을 이유로 컬러 방송은 물론 컬러텔레비전의 내수 판매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1970년대 대한민국에서 컬러 방송을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했던 AFKN(American Forces Korea Network, 주한미군방송)은 1977년부터 컬러 방송을 시작했다. 문화공보부는 AFKN의 컬러 방송이 국내 도입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해 주한미군 측에 국민 연소득 1,500달러를 넘기는 1980년대 초반에 맞춰 함께 방송을 내보내달라 요청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AFKN의 컬러 방송 비율을 늘려나갔다.

컬러텔레비전은 1970~1980년대 수출 역군 중 하나였다. Ⓒ 연합뉴스

산업 전체를 뒤흔든 색채 혁명

1980년 무렵 대한민국은 제2차 오일 쇼크와 미국·유럽 등의 수입규제 조치가 겹치며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었다. 10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한 대한민국은 이를 타개하고자 같은 해 8월 1일 컬러텔레비전의 국내 시판을 허용하고 12월 1일부터 ‘컬러 방송’을 내보냈다. 오전 10시 30분 수출의 날 기념식 방송이 첫 컬러 방송이었고 이날부터 평일 세 차례 실시했다. 12월 말에는 각 방송사 프로그램의 80%를 컬러로 방송하기도 했다.
이러한 컬러 방송은 세계에서 81번째 실시된 것으로 북한보다도 6년 늦었다. 이미 전국에 흑백텔레비전이 700만 대가량 깔려 있었으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컬러텔레비전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사람들은 컬러 화면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화면 속 공간과 사람들을 흑과 백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총천연색 이미지는 충격 그 자체였다. ‘색채 혁명’이라는 말로 불릴 정도였다.
방송 프로그램뿐 아니라 광고 역시 1981년부터 전면 컬러화됐다. 사람들은 TV나 광고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이 입은 화려한 색감의 옷과 다양한 색깔로 화려하게 치장한 상품에 매료됐고, 이는 일반 국민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컬러화는 소비 패턴의 고급화와 다양화로 연결됐고, 각 기업이 제품 생산 시 컬러와 디자인을 핵심요소로 내세우는 계기가 됐다. 국내 산업에서는 식품과 화장품, 패션 등의 분야가 큰 혜택을 입었다. ‘색’으로 드러나는 상품들은 구매 욕구를 자극했고 이는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시장이 확대되자 기업들은 신상품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색채 혁명은 대한민국 산업 전체를 뒤흔들었다. 가장 큰 특징은 컬러텔레비전 보급과 수출로 인한 산업의 활성화였다. 1981년 7월까지 국내에 보급된 컬러텔레비전 수만 100만 대가 넘었고, 이는 1981년 전자산업 총생산 규모에 그대로 나타나 생산 37억 9,100만 달러, 수출 22억 1,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 해에 비해 각각 33%, 11% 오른 수치였다.

시각문화로 진입하게 된 원동력

컬러 방송은 마케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색에 대한 정보가 생활 곳곳에 퍼지면서, 사람들은 시각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익숙해졌다. 기업들은 고정관념을 깬 색을 활용하는 컬러 마케팅 전략을 펼쳐 사람들을 유혹했고, 광고에서도 제품 및 브랜드와 어울리는 색을 활용하며 보다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식음료, 가구, 자동차, 가전제품 등 소비재 전 분야에 걸쳐 적용됐다. 사람들은 이제 ‘듣고 느끼는 문화’를 넘어서 ‘보며 즐기는’ 문화를 우리 사회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컬러 방송과 컬러텔레비전의 보급 이후, 대한민국은 ‘흑백 방송’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