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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 시나리오
자료형태 도서 시대/연도 1970년대 / 1974
규격 18.7×25.5×0.5cm
한줄설명 1970년 유신시대에 제작된 국책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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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한국영화는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관객 수가 감소하면서 그 위상이 크게 위축됐다. 더불어 1970년 8월 6일 ‘3차 개정 영화법’이 공포되었고, 1973년 2월 16일 ‘4차 영화법’ 개정이 이루어지며 이른바 ‘유신영화법’이라 불리는 유신시대의 영화검열이 이뤄졌다. 4차 영화법은 국가 정치 이데올로기의 정당성과 정치 이념의 구현을 위한 홍보 및 선전 수단을 강화하는 시책을 명시하고, 근대화와 반공의 논리를 정당화하며 10월 유신과 새마을 운동에 국민을 동원하기 위해 개정됐다. 또한 정부는 영화진흥공사(現영화진흥위원회)를 설립하여 국책영화를 제작하는 등 영화를 정부의 이념을 내세우는 정치적인 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들국화는 피었는데’는 영화진흥공사에서 제작한 국책영화의 시나리오이다. 책표지에는 ‘영화진흥공사작품’, ‘6.25영화’, ‘決定稿’라고 기재되어 있다. 선우휘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한 어린이의 증언을 토대로 6.25전쟁이 발발한 시점부터 서울 수복이 이루어지는 기간 동안 6.25전쟁의 참상과 허무함을 알리는 전쟁영화이다. 영화진흥공사의 정진우가 제작, 이만희가 연출, 선우휘가 각본을 썼으며, 신성일, 김정훈, 남미리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국책영화로서 북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반공영화(反共映畵)를 표방하였으나, 인민군과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과 전쟁의 모순 및 허무함을 보여주는 등 반전영화(反戰映畵)의 성격을 띠었다. 따라서 1974년 12월 7일 단성사에서 개봉하기까지 정부를 대변하는 영화진흥공사 측과 감독 사이에 끊임없이 마찰이 있었으며, 개봉 후에도 영화진흥공사의 통제로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한 채 상영을 중단하게 되었다. 

 

참고자료: 황혜진, 『1970년대 유신체제기의 한국영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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