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의 역사

1948년 각각 단독 정부를 수립(8월 15일, 9월 9일)한 이래 첨예한 갈등에 놓여 있던
남북한은 1991년 9월 17일, 유의미한 변화와 맞닥뜨린다. UN 동시·분리 가입이라는
결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두 나라는 어떻게 같은 날 가입할 수 있었을까.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 1991년 남북한 유엔 가입 확정 후 축하인사를 나누는 남북 대표 Ⓒ 연합뉴스

유엔 회원국이 되기 위한 노력

1991년 9월 17일 뉴욕 유엔(UN) 본부의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걸렸다. 당일 열린 제46차 유엔총회를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과 대한민국은 각각 160번째, 161번째 회원국으로 유엔에 동시·분리 가입했다. 유엔의 신규 회원국 가입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총회에서 결정하는데, 이때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단독 정부 수립 이후 지속적으로 유엔 가입을 시도했다. 유엔 가입은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완전한 주권국가(主權國家)로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뜻했다. 외교활동을 통한 도약과 성장도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러시아(당시 소련)와 중국의 거부권에 번번이 부딪치며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북한 역시 1949년 2월 9일 대한민국의 유엔 단독 가입을 반대하며 단독으로 유엔 가입을 신청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문을 두드렸지만, 북한이 유엔헌장을 준수할 의지가 결여됐다고 보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독 가입을 추진하던 대한민국은 1973년 6·23 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이하 ‘6·23 선언’)을 계기로 입장의 변화가 생겼다. 이는 1970년대에 불어 닥친 데탕트(Détente, 1970년대 미국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진영 간의 긴장 완화)와 연관이 깊다. 국가 이익을 우선하는 분위기 속에서 냉전 체제는 완화되기 시작했고, 이는 이념 갈등을 넘어선 국가 간 다양한 교류로 이어졌다. 1950년대에 유엔에서 ‘침략자’로 규정되던 중국은 1971년 유엔에 가입하고 상임이사국의 지위까지 획득했다. 이때 대만은 유엔에서 축출됐다.
이에 대한민국은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유엔 가입 역시 북한과의 동시 가입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남북 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북한의 국제기구 참여를 반대하지 않는다. 통일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 유엔 동시 가입을 반대하지 않으며 모든 국가와 서로 문호를 개방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당시 6·23 선언에는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동시에 한반도에 안정적인 평화공존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담겨 있다. 반면 북한은 이를 두고 ‘하나의 조선’을 강조하며 분리·동시 가입은 “두 개의 조선 조작 책동”이라고 반발했다.

  • 1991년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 신청서 Ⓒ 연합뉴스

북방외교와 냉전 해체가 불러온
유엔 동시 가입

단독 가입은 물론 동시 가입도 쉽지 않았으나, 1988년부터 우리 정부가 추진한 ‘북방외교’로 인해 상황은 변해갔다. 서독이 통일 이전에 실시했던 동방외교에서 유래한 북방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 통일 기반 조성을 추구했던 외교정책이다. 냉전체제와 사회주의가 해체되기 직전이던 1980년대 말엽의 시대 상황과 맞물리며 한국 정부의 북방외교는 1990년 9월 30일 러시아와 수교하는 등 의미 있는 결과를 냈다. 미국도 힘을 보탰는데, 당시 미국 정부는 중국을 압박하며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에 힘을 실었다.
북방외교 이후 러시아와 중국은 이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고, 우리 측은 동시 가입은 물론 단독 가입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갈수록 사면초가에 놓이게 된 북한은 결국 1991년 5월 27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대한민국의 단독 가입을 내버려두면 민족의 중요 문제가 편견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는 점, 엄중한 후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일시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결정을 공포했다. 그 결과 1991년 9월 17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안은 159개국 회원국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국명 표기 알파벳 순서에 따라 북한(D.P.R.K)이 160번째, 대한민국(R.O.K)이 161번째 유엔 회원국으로 자리 잡았다.

한반도의 봄은 언제쯤 오는가

그날의 승인은 한반도에 두 개의 주권국가가 있음을 세계에 공인하는 계기가 됐다. 남북은 이제 서로를 국가적 실체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 이어진 적대적 대립관계를 완화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그 의의가 대단히 크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날의 역사적 결정이 무색하게,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남북한이 갈등과 대화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한반도의 봄은 찾아올까, 찾아온다면 언제쯤 올 것인가.

이달의 근현대사

월별 주요 일정
날짜 내용
9

1

소련군, 대한항공 여객기를 미사일로 격추 1983

2

연합군 사령부,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 선언 1945

4

일본과 청국이 간도에 관한 협약을 체결 1909

7

<대한제국 애국가>, 고종 황제 탄신일에 처음 연주 1902

11

대한민국임시정부,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 1919

15

인천상륙작전 개시 1950

17

남북한 유엔 동시·분리 가입 1991

30

IOC 총회에서 서울이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 1981

10

1

일제, 조선어학회 회원 및 관련 인물 검거 1942

4

우리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 단성사에서 개봉 1935

7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파리에서 실종 1979

9

『조선말 큰 사전』 첫 권 발간 1947

12

대통령 직선제, 국민투표를 통해 16년 만에 부활 1987

19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의 일부 군인들에 의해 여수·순천 사건 발생 1948

21

독립군 연합부대를 중심으로 한 청산리 전투 개시 1920

26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1979

30

우리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 창간 1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