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80년대 직업 변천을 중심으로
상설 기증관에서 열리는 <내 일로 내일을 꿈꾸다>는 고도성장기로 진입했던
1960~80년대의 일과 직업을 보여주는 기증 자료를 전시한다.
직업은 사회의 거울이다.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에 그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시간 흐름에 따라 인간과 사회가 변하듯, 직업 역시 생로병사를 겪는다. 없던 직업이 새롭게 나타나고 성장하거나 사라진다.
1960~80년대에는 어떤 직업이 등장하고 사라졌을까. 당시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직업의 꿈틀거리는 생과 사를 살펴보자.(편집자 주)
글 김중진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연구위원
1950~60년대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은 농업, 면방직공업, 광공업이었다. 특히 1950년대에는 전체 인구 중 5분의 4가 농업인구로, 비농(非農) 인구 중 취업자는 20.5%에 불과했다. 비농 인구 중 제조업 근무자 비중은 5%, 나머지는 서비스 분야였다. 당시 두드러지게 성장한 산업은 방직, 제분, 제당의 이른바 삼백(三白) 산업1)이었고, 직업으로는 ‘광부’와 ‘섬유 방직공’이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석탄, 석유를 넘어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가 등장했지만 1980년대까지 우리 생활의 주요 에너지원은 연탄이었고 그 중심에는 석탄을 캐는 ‘광부’가 있었다. 이들은 1899년 등장해 일제 강점과 해방, 각종 혼란을 겪은 후 광산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민영 탄광의 개발도 활발해져 1955년에만 해도 50개에 불과했던 탄광은 1960년대 이후 200개를 넘어섰다. 생산량 증가에 따른 이윤과 높은 채탄 비용은 고스란히 광부들의 월급으로 돌아가, 당시 광부 월급봉투는 상당히 두툼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광부들의 도시로 유명한 태백의 철암에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에너지가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되면서 이들은 쇠퇴했고 이제는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관련 직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예전 극장에서는 본 영화 시작 전에 ‘대한뉴스’를 상영했는데, 1970년대에는 수출의 핵심 일꾼으로 ‘섬유 방직공’을 자주 소개했다. 뉴스 속 여공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공장으로 줄지어 출근했다. 섬유 방직공은 초기 경제 성장을 뒷받침했던 산업의 핵심 일꾼이자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그들은 하루 14~15시간씩 장시간 노동을 이어가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우리의 ‘누이’였다.
섬유 방직공이 규모가 큰 공장에서 일했다면 미싱공이나 재단사는 비교적 작은 사업장을 대표하는 직업이다. 우리나라 봉제 인프라의 뿌리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평화시장 같은 의류도매시장 부근에 둥지를 틀었던 봉제 공장들이 바로 대한민국 봉제의 메카였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 등으로 생산비용이 증가하면서 봉제공장들은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이전했고, 국내 미싱공이나 재단사의 입지는 자연스럽게 좁아졌다.
‘양복 재단사’도 동시대 인기 직업이었다. 당시 양복은 귀했다. 기성복은 전혀 없었으며 분실 우려로 양복 안에 사람 이름을 새겨 넣기도 했다. 양복 재단사의 인기는 1970년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고 한다. 구정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는 사람들은 양복을 맞추기 위해 줄을 서고 웃돈까지 줄 정도였다. 그만큼 양복은 성공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까지 양복점은 서울 종로5가, 종로3가에 많았고 특히 명성이 자자했던 서울 명동, 소공동에는 일류 재단사들이 저마다 솜씨를 자랑하는 등 호황기를 누렸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 직업은 부침을 겪는 법. 198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반도패션, 제일모직 등 대기업이 당시 의류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고, 양복 재단사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오늘날 ‘전차 운전사’와 ‘버스 안내양’을 기억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 같다. 1899년 5월 4일 오후 4시 최초로 전차(전기철도)가 동대문과 홍화문 앞 사이에서 개통하면서 우리나라 대중교통에 새로운 혁명을 가져왔다. 기존 교통수단이었던 인력차나 자전차와 비교하면 놀라운 진화였다. 전차는 도입된 후 노선이 계속 증가하고 차츰 전차의 수도 늘어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자동차와 버스가 급증하면서 전차의 운명이 바뀐다. 전차는 시속 7km의 느린 속도로 움직였기 때문에 자동차와 버스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68년 전차의 운행은 중단됐고 그에 따라 전차 운전사도 사라졌다.
전차 운행이 중단된 후 시내버스, 택시의 수가 증가하면서 버스 기사, 택시 기사 등이 성장하게 되고 1974년에는 지하철이 개통하면서 지하철 기관사, 그리고 2004년에는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고속철도 기관사가 등장했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버스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고, 정작 자신은 문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서 경쾌하게 출발 신호 “오라~잇(all right)!”을 외치던 사람들이 있다. ‘버스 안내양’이다. 1931년 서울 유람 버스가 운행되면서 처음 등장한 이들은 1961년 버스 안내양 제도가 생기면서 버스회사에 대거 채용됐다. 당시 버스 안내양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1977년에는 종사자 수가 2만 735명에 이르렀을 정도다. 하지만 1982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 올림픽(1988년)을 앞두고 시민자율의식을 높이고자 안내양 없이 승객이 직접 요금을 요금함에 넣고 승차하는 ‘시민자율버스’를 도입한 것이다. 이후 버스 안내양은 그 수가 급격히 줄다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70년대는 정부가 중화학공업 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석유, 화학, 조선, 전자, 제철, 건설 등의 산업이 성장했다. 수출에 박차를 가하면서 무역업이 주요 산업으로 떠올랐으며 대외 수출이 증가하면서 주요 수출업체였던 삼성물산, 럭키금성상사, 국제상사 등의 직장이 주목받았다. 또한 화학공학과,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가 산업현장에서 주목을 받았고, 대기업 사원은 대학생들의 취업 선호도가 높은 직업으로 인기를 끌었다.
대기업, 금융권(은행, 증권 등) 사원 외에도 건설 관련 기술자, 건설장비 기술자 등도 당시 인기 직종이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중동 건설 특수를 타고 건설 관련 기술자가 주요 직업으로 떠올랐다. 중동 지역에서 건설 붐이 일면서 ‘중동 바람’ ‘중동 붐’ 같은 단어가 신문에 자주 오르내릴 정도였다.
1980년대부터는 세계적으로 첨단 직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화학공업의 인기가 수그러들고 생명공학, 반도체, 정보통신업 등의 잠재력에 관심이 쏠리면서 이들 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때 산업용 로봇이 도입되면서 자동차, 전자산업 등 관련 산업도 급성장했고, 이공계열 엔지니어 등의 전문 일자리가 늘어났다. 또한 경제 성장의 반작용으로 환경산업에 관심이 커지면서 환경공학 기술자 등 환경 관련 직업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1980년도에는 프로야구 개막, 올림픽 개최 등 스포츠 분야 직업군이 부상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1982년 프로야구가 정식 출범하면서 프로야구선수, 프로야구 심판 등이 등장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는 골프가 서서히 대중에 퍼져나갔다. 골프 도우미인 캐디도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신종 직업으로 1970년 8월 30일자 신문에 소개된 것으로 보아 태동은 그전으로 추정된다.
한편 1980년대에도 전통적으로 인기 직업이었던 의사, 교수, 기업가, 고급공무원, 정치가, 과학자, 외교관 등은 여전히 선호됐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그간 성장했던 직업 중 일부는 퇴장했다. 대표적으로 타자원(타이피스트), 항법사(항공사), 성냥 제조원, 주산 강사, 전화교환원, 버스 안내양 등이 있다. 타자원은 컴퓨터 보급 및 소프트웨어 확산으로, 항법사는 항법장치의 등장으로, 전화교환원은 자동식 전화기와 전자식 전화기 보급으로 거의 사라졌다. 기술 발전은 직업 쇠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최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단순반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2000년대 진입하면서 인구 고령화, 1인 가구 증가, 소비 트렌드 변화가 맞물리면서 과거 상상하지 못했던 반려견 장례지도사, 반려견 미용사 등의 직업이 나타났다. 직업의 세계는 계속 진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향후 어떤 직업이 어떻게 나타나고 발전하고 쇠퇴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