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시 영상

[전시 스케치] 함께 해온 나날들 특별전

게시일자2025-11-05

영상설명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Special Exhibition
for the 80th Anniversary of Korea's Liberation
태극기 함께 해온 나날들 (Our Shared Journey with the Taegeukgi) 25.8.8 ~ 11.6일 3층 전시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포스터

박물관 전경과 함께 광복80주년 태극기와 함께 해온나날들이 전광판에 출력되고 있으며 우측 다른건물 광고창에는 당신의 상상력으로 이곳을 채워주세요 라는 광고가 송출되고 있습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는 영상속에서 태극기와 함께 해온 나날들 외부 벽스티커와함께 광복 50주년| 1995.8.15 작품, 제16회 맬버른 올림픽 | 1956. 12. 5, 광복절 |1960. 8. 16, 광복절 연휴 |1983.8.16, 광복 40주년| 1985. 8. 15, 광복 50주년|1995. 8.15, 정부수립 50주년|1998.8.15, 일본의 독도 도발|1999.12.28, 남북이산가족상봉|2000.8.15 만화 작품이 출력됩니다.

태극기 함께 해온 나날들 포스터와 포스터 내부에 상세 내용이 출력됩니다 ( 그대들 돌아오나니, 독립의 희망을 품고등)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 태극기와 함께 해온 나날들. 붉고 푸른 깃발 세계를 잇다 - 전시된 태극기를 다양한 언어로 만나보세요 Stories of the taegeukgi : Told in Many Languages / Our shared Journey with Taegeukgi 등 전시된 벽면이 출력됩니다.

언어별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로 해당 홍보내용을 볼수있는 키오스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당 키오스크에는 태극기의 다양한 예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히말라야 원정대, 남극탐험대,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동덕여자의숙, 대한제국 군함 광제호, 진관사, 백양사,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임시의회), 대한제국 통신원(통신기간), 데니 태극기등)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임시의회) 태극기 - 소장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하이에 세운 임시정부의 의회(임시의정원)에 걸었던 태극기이다 임시의정원의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부부가 1923년 이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독립운동가의 아내가 손수 천을 사서 바느질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특별전 전시관을 보여줍니다.
벽면에는 태극기의 다양한 스토리가 적혀있으며 그중 해방기념시집에서 김달진의 아침에서 나온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천길 만길 깊은 바다 밑에 긴 밤을 어둠 속에 몸부림 치며 큰 열을 가슴 속에 쌓고 단우었거니 집집마다 추녀 끝에 태극기가 나부낀다 거리마다 지축을 울리는 함성- 오늘 이땅 산천은 크게 웃었다. 진흙 발 밑에서도 진리는 빛나고 정의는 무덤 속에서도 그 향기 하늘을 꾀뚫는다거니 아 어디서 오는 찬연한 저 빛이뇨 어둠 속에서 피어난 꽃숭이다

1. 붉고 푸른깃발 높이 들고 - Hoisting the Red and Blue Banner High 전시관
대한의 상징으로- Serving as the Daehan symbol 전시입니다.
독립 신문 상해판에 게재된 시 태극기에 전시품을 보여줍니다. 독립신문에는 미국 상품 광고등이 보입니다.
동래감리각면서보고서, 대한제국 여권, 해양국가들의 깃발,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독립신문 초판본(1896. 4. 7. 연세대학교 도서관), 독립신문 (1896. 5. 2. 연세대학교 도서관), 독립신문 (제중원의 금계랍 광고 1898. 3. 3 연세대학교 도서관), 제호에 태극기가 그려진 독립신문, 독립문과 기공식 사진, 태극문양을 사용한 외국 도서, 태극기 도안의 담배카드, 태극기 압수 사건을 보도한 독립신문 상해판 (큰길 위 태극기 4월 18일 강경에서 사거리에 태극기를 세우고 그 아래 대한민국임시정부설립기념축하식거행 이라 쓴 것을 적경(일본 경찰)이 발견하고 압수했다. 외 태극기의 원리,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 최초 통일된 국기양식 제정문서, 130년 전 초청장, 파리만국박람회 초청부터 참가까지의 역사와 명단, 샤를 알레베크의 사진엽서, 파리만국 박람회 지도, 파리만국 박람회에 대한제국을 소개한 프랑스 주간지등 다양한 전시물들이 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 그대들 돌아오시니 Upon Your Return 전시관
Keeping Hope for Independence Alive
1910년 나라를 빼앗기고, 태극기 사용은 금지되었습니다. 제자리를 잃어버린 태극기는 다시 돌아올 광복의 그날을 기다리며 사찰 전각 어딘가에, 독립을 염원하는 누군가의 집에 꼭꼭 숨겨졌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우리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불씨와 함께 태극기를 가지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목판에 태극기를 새기고, 독립을 향한 목소리를 종이에 담아냈습니다. 어둡고 고단한 시간을 지나 광복의 그날을 맞이하기까지 태극기는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었습니다.
The Koreans lost their national sovereignty to colonial rule in 1910, and the display of the national flag was banned. Having lost its proper place, the Taegeukgi was carefully tucked away in temple halls or the homes of those longing for independence, quietly awaiting Liberation Day. Koreans took to the streets during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with their flag in hand along with the flame alive deep in their hearts. They engraved the Taegeukgi on printing woodblocks and reproduced on paper their calls for independence. The Taegeukgi remained a symbol that brought the people together in solidarity through those long, dark, and difficult years, until the day that Liberation finally arrived.

전시품1.
대를 이은 광복의 꿈
광제호 태극기
A Dream of Liberation Passed Down Through Generations: the Gwangjeho Taegeukgi
대한제국의 근대식 군함 광제호에 게양되었던 태극기입니다. 1904년 만들어진 광제호는 서해안 경비와 세관 감시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을사늑약으로 인해 사실상 대한제국 해군 군함으로 역할을 하기 어려웠지만 1910년까지도 광제호에는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를 하루 앞둔 날, 우리나라 근대식 군함 양무호의 함장이자 광제호에도 승선했던 신순성은 대한의 군함으로 임무를 다한 광제호의 태극기를 내려 남몰래 보관해 왔고, 독립의 그날을 기다리며 대를 이어 지켜왔습니다.
This Taegeukgi was flown aboard the Gwangjeho, a modern naval vessel of the Daehan Empire. Built in 1904, the ship’s mission was coastal defense along the West Sea and customs surveillance. The Gwangjeho lost naval role after the signing of the Korea-Japan Treaty of 1905, but records state that the Taegeukgi continued to fly on the vessel until 1910. On the eve of Korea’s annexation by Japan (August 29, 1910), Commander Shin Soon-seong—who served aboard both the Gwangjeho and the modern naval ship Yangmuho—lowered the Taegeukgi for the last time. Aware of its significance, he secretly kept it safe, entrusting it to his family with the hope that it would one day fly again after Korea’s Liberation.

독립의 희망을 품고 Keeping Hope for Independence Alive 1910년 나라를 빼앗기고, 태극기 사용은 금지되었습니다. 제자리를 잃어버린 태극기는 다시 돌아올 광복의 그날을 기다리며 사찰 전각 어딘가에, 독립을 염원하는 누군가의 집에 꼭꼭 숨겨졌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우리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불씨와 함께 태극기를 가지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목판에 태극기를 새기고, 독립을 향한 목소리를 종이에 담아냈습니다. 어둡고 고단한 시간을 지나 광복의 그날을 맞이하기까지 태극기는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었습니다. The Koreans lost their national sovereignty to colonial rule in 1910, and the display of the national flag was banned. Having lost its proper place, the Taegeukgi was carefully tucked away in temple halls or the homes of those longing for independence, quietly awaiting Liberation Day. Koreans took to the streets during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with their flag in hand along with the flame alive deep in their hearts. They engraved the Taegeukgi on printing woodblocks and reproduced on paper their calls for independence. The Taegeukgi remained a symbol that brought the people together in solidarity through those long, dark, and difficult years, until the day that Liberation finally arrived.

장독대에 숨겨 지켜낸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The Taegeukgi Hidden Beneath an Earthenware Jar Stand: Taegeukgi of Dongduk Women’s Academy 1908년 동덕여자의숙 개교 당시부터 교정에 게양되었던 태극기입니다. 3·1운동 직후 일제의 가혹한 수탈을 피하기 위해 상자에 담아 장독대 밑에 숨겨서 지켜온 태극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일화는 1970년대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힘겹게 지켜낸 이 태극기는 광복 후에야 다시 학교에 걸릴 수 있었습니다.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항일 독립의지
An Anti Japanese Spirit of Independence Hidden Deep Inside
- 진관사 태극기, 백양사 태극기, 백양사 광성의숙에서 사용한 교재, 독립선언서를 게재한 독립신문 상해판, 대한민국 임시정부 3ㆍ1절 2주년 기념식, 상해 독립신문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

11월 13일 오후 12명의 학생이 기숙사에 모여 태극기를 만들었던 영상이 출력됩니다.
목포 정명여학교에서 발견된 독립운동 자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동고동락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The Taegeukgi at the Provisional Government through Good Times and Bad: the Provisional Assembly Flag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사진, 임시정부와 임시의 정원 신년축하식기념 사진, 김붕준의 가족사진, 도장, 가방, 지갑, 한일협정 체결 호외, 통신원 태극기(본래의 자리를 되찾은 통신원 태극기 - 대한제국 시기, 우편과 전신 등을 담당한 관청인 통신원에 게양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입니다. 1905년 ‘한일통신협정’의 체결로 대한제국의 통신 사업권 및 관련 설비는 일본에 넘어갔습니다. 이때 태극기도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통신원 태극기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부 다른 문화유산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This Taegeukgi is believed to have been hoisted at the Communications Bureau (通訊院 Tongsinwon), the government office responsible for postal and telegraph services during the Daehan Empire (1897–1910). The Korea–Japan Communications Agreement was signed in 1905, and control over Korea’s communications infrastructure was transferred to Japan. The flag is said to have been taken to Japan around this time. Decades later, in 1965, the Taegeukgi was returned to Korea alongside other cultural assets following the signing of the Korea–Japan Basic Treaty. At last, it was restored to its homeland—a symbol of sovereignty reclaimed.), 우리나라 최고의 태극기, 주미대한제국 공사관, 미국공사왕복수록 전시하고 있습니다.

데니 태극기
1891년 1월, 고종은 자주 외교를 지지했던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에게 태극기를 하사하였다.
데니 태극기의 존재는 한 역사학자가 ‘데니 외교문서’를 발굴하면서 1977년 세상에 알려졌다. 스워타우트 교수 (Robert R. Swartout) 미국 오리건대학교 도서관
대대로 태극기를 보관한 데니의 후손과 역사학자의 만남은 데니 태극기의 한국 기증으로 이어진다.
1981년 6월, 데니 태극기는 고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숭실학교 태극기, 학국독립운동지혈사
숭실학교 태극기
갑자기 단상에 태극기가 높이 걸렸다.
일시에 감정이 북받쳐 모두 피가 끓어오르고 기운이 솟아올랐다.
만세소리가 우레와 같이 울리고 진동하였다
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중

학국독립운동지혈사
독립운동가 박은식이 집필한 역사서이다. 3ㆍ1운동 이르기까지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투쟁한 역사를 정리했다. 평양의 3ㆍ1운동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개설서이다. 1920년

숭실학교 태극기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태극기를 내려야만 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 숭실학교 학생들은
다시 태극기를 내걸고 함께 만세를 외쳤다.
숭실학교 교장은 일제에
태극기가 압수될 것을 우려하여
태극기를 잘 숨겨 소중히 보관하였다.
사무엘 모펫 교장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아들에게 자신을 대신해
태극기를 잘 간직해줄 것을 당부했다.
1974년 9월, 아들 제임스 모펫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한국에 태극기를 기증하였다.


3
기쁨과 슬픔, 희망을 담아
Imbued with Happiness, Sadness and Hope
흰 바탕에 마음을 담아
Accumulating sentiments on a white background
기쁨과 슬픔, 좌절과 희망의 기억이 빼곡하게 새겨진 태극기에는 광복을 바라던 우리의 염원과 연대와 희생으로 지켜낸 우리의 보편적 가치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시대마다 새로운 도전 앞에 선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며 한계를 극복했고, 모두의 응원을 담은 태극기는 우리에게 용기와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광복 80년, 흰 바탕에 담아온 우리의 마음을 다시 되돌아보려 합니다.

한국광복군 | 1943 | 독립기념관
김구의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개회 선포 | 1940 | 독립기념관
간도사정 중 간도 용정의 조선인 학교 동흥중학교 전경
한국광복군 소사
한국광복군 수첩과 배지
조석독립군가
보병조전초안
간도지역 한인의 생활과 독립운동을 기록한 도서
봉오동 전투 상보
명동촌 태극문약 수막새기와
광복의 날이 머지않았음을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The Korea National Association headquarters building
1938 │독립기념관

로스앤젤레스 시청 태극기 현기식을 보도한 『신한민보』
Sinhan Minbo newspaper, with the story on the Taegeukgi Raising Ceremony at Los Angeles City Hall
미주지역 한인 단체의 중심인 대한인국민회에서 발간한 신한민보에 로스앤젤레스 시청 태극기 현기식이 보도되었다.
1943.9.2.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Taegeukgi with the phrase Long Live Korean Independence!
미주 지역 한인들이 독립을 염원하며 사용한 태극기이다.
삼각형 형태의 모직 펠트 안에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 글귀가 박음질 되어 있다.
광복 이전 | 독립기념관 | 국가등록문화유산
복제 | Replica
자신을 희생하여 모두를 지켜온
Honoring: those who sacrificed themselves for the greater good
구축함 항해기 ( 게양장소 : 대전함, 게양기간 : 1980.1 ~ 1981.1)
원호의달 포스터 (가신님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군경유족 돌봐주자(기간 자 5.16 ~ 지 6.15) 원호처 원호의달
민주주의를 지켜낸 우리의 연대(태극기)
박관현 태극기 Taegeukgi of Park Gwan-hyun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의 관을 덮은 태극기이다.
1997년 묘지 이장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1997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① 태극기로 관을 덮는 두 남자
Two men lay out Taegeukgi flags
1980. 5. | 5·18기념재단 | 이창성

② 5·18 진상규명을 위한 수녀들 시위
Demonstration by Catholic nuns demanding the truth behind the May 18th Uprising in Gwangju
1987. 6. 10. | 나경택

③ 도청 앞 분수대 시위
Demonstration around the fountain in front of the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1980. 5. | 5·18기념재단 | 나경택

① 명동 성당에서의 박종철 추모 시위
Protest in memory of Park Jong-chul at Myeongdong Cathedral
1987. 6. 13. | 전민조

② 학우
A fellow student
1987. 7. 7. | 고명진

③ 연세대를 빠져 나오는 고 이한열 운구행렬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 서울올림픽대회 상징 [휘장, 마스코트]

런던 올림픽 출장기념사진
Commemorative Korean team send-off photo for the 1948 London Olympics
런던 올림픽 출장을 기념하여 페넌트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1948

런던 올림픽 휘장
1948 London Olympics badge
1948년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한국 선수단의 참가를 기념해 수여한 휘장으로 런던을 상징하는 시계탑 ‘빅벤’이 새겨져 있다.
1948

런던 올림픽 참가 기념 우표와 초일봉투
『체육문화』 창간호
런던 올림픽 선수촌 입촌
서울 올림픽 상징 포스터
서울 올림픽 개ㆍ폐회식 사진첩

서울 올림픽 자원봉사 운영요원 유니폼 세트
서울 올림픽 자원봉사자 기념 배지 액자와 감사패
나의 작은 미소로 - 서울 올림픽 운영요원 종합안내서

세종기지 관련 전시물
한국산악회 대원증
에베레스트 등정 기념 거북선 담배 포갑지
한국산악회 50년사
남극연구대 조사일지
한국남극관측탐험대 기념동판과 기념주화
한국남극관측탐험 기념탑
남극세종과학기지 대원장갑
남극 진출 기념우발행 안내카드
한국남극관 탐험 기념

함께해 온 모두의 추억을 모아
Assembling Koreans’ collective memory

광복 1945, 되찾은 태극기
지난 36년간 우리는 태극기를 마음껏 들지도 부르지도 못했다.
1945년 8월, 광복으로 우리는 태극기와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게 되었다.
광복 기념 사진
해방 조선 기념 엽서
광복 10주년 해방둥이 초청행사 │ 1995.8.23 │ KTV국민방송
전쟁과 태극기
6·25전쟁 속 일상에서 태극기는 나를 보호하고 증명하는 상징이 되었다.
6·25전쟁 당시 부산 피난민 수용소
Busan refugee camp during the Korean War
1951 | 임응식

피난 생활에도 함께 한 태극기
Accompanied by Taegeukgi even while living as a war refugee
1951 | 국사편찬위원회

6·25전쟁 당시 태극기가 걸린 배를 탄 사람들
People aboard a boat displaying Taegeukgi during the Korean War

태극기가 걸린 시장 풍경
Taegeukgi on display in the marketplace

우리가 마주한 태극기
태극기는 우리 주변에 늘 존재했다.
결혼식에서, 시상식에서도, 골목에서도 우리는 태극기를 걸고, 태극기 아래에서 함께 했다.

혼인의 서약,
태극기 아래서

우리는 가정의례준칙에 의하여 의식을 거행합니다.
진천군 배구면 갈월리 노신
가정의례준칙 실천위원회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가정의례준칙에 따른 간소화 된 결혼식
Simplified wedding ceremony according to the Family Rituals Code
1974 | 국가기록원

가정의례준칙
Family Rites Code
1960년대 말 정부는 허례허식과 의식 절차 합리화를 목표로 하는 가정의례준칙을 시행하였다.
가정의례준칙 주요 골자에 따라 당시 공공기관이 결혼식장으로 사용되면서 태극기 아래에서 결혼식 하는 풍경도 볼 수 있었다.
1969

음악 교과서 Music textbook
1971

광복 10주년 경축 국기함

광복 50주년 기념패 1955
광복 50주년 기념우표첩1995

광복 30년의 발자취
1975

광복 70주년 기념도서
2015

광복 20주년 기념잡지
1965 신국주 기증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3ㆍ1절 기념 태극기 게양 1967. 3.1 경향신문
광복절 기념 태극기 게양 1981. 8. 15. 경향신문

그땐 그랬지, 추억의 태극기 풍경
슈퍼맛케에도 게양된 태극기와 여러 국기들 - 1973│국가기록원
태극기 판매상인 - 1981. 3.3.│전민조
서울중구 중림동 골목안 풍경

광복 50년, 민족 정기 다시 세우다
조석총독부 청사 철거는 역사 회복을 위한 실천이자 민족 정체성의 재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구 총독부 청사 철거
대한의 함성, 하나된 열정
태극기 아래, 우리는 함께 뛰고, 응원하고, 만들어내며 하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
① 서울운동장에서의 축구 응원
② 태극마크를 단 축구 선수 차범근
③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④ 국제기능올림픽 국제기능올림픽대회
2002 월드컵 사진엽서
2002 - 이한림 기증

에필로그 Epilogue
태극기(太極旗)[이] 우리 나라의 국기. 흰 바탕의 한가운데 태극을 양은 붉은빛, 음은 남빛으로 그리고, 검은 빛으로 건(乾), 곤(坤), 감(坎), 이(離) 네 괘(卦)를 사방(四方) 대각선(對角線) 상에 그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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