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통행금지 해제 이후 되찾은 우리의 역동적인 밤을 조명하는 《밤풍경》을 선보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밤은 낮보다 더 화려하고 활동적인 시간이지만, 불과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밤거리를 걷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통제와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밤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모두의 시간’으로 확장되어 온 과정을 되짚어봅니다.
동시에 밤을 시간 속에 녹아 있는 한국의 ‘밤 감성’을 느껴보는 공간도 함께 마련했습니다.
글. 이정윤(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1부 ‘밤의 현대사’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모해온 밤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조선은 건국 직후 야간통행금지 제도를 시행하고, 저녁 아홉 시 무렵 도성 문이 닫히면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역시 사람들의 활동을 가로막았고, 사람들이 쓸 수 있었던 밤의 공간은 촛불 아래에 머물렀습니다.
어둡고 고요했던 조선의 밤은 고종 대에 이르러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개항 이후 조선에 도입된 전등은 밤길을 밝혀 주었으며, 1895년에는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던 야간통행금지 제도도 해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밤은 물론, 모든 일상이 통제와 단속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945년 광복의 기쁨도 잠시, 미군정은 한반도에 상륙하자마자 야간통행금지령을 시행하며 밤을 제한했습니다. 야간통행금지가 전면 해제된 1982년까지 약 36년 동안 이어진 통금시대는 특수한 일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사람들은 통금 사이렌이 울리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치열한 ‘귀가 전쟁’을 벌였고, 야간통금 단속에 걸릴 경우 다음 날 아침 즉결심판을 받기 전까지 파출소 보호실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고클럽’에서 춤을 추며 통금이 풀리는 새벽 4시까지 밤을 지새우는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¹⁾
아이러니하게도 야간통행금지가 전면적으로 해제된 것은 1982년 1월 5일, 전두환 군사정권 때였습니다. 군사정권은 강압적 통치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자율화’를 내세우며 각종 규제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1981년 9월 88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향후 한국을 방문하게 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군사정권 아래의 표면적인 ‘자율화’였지만, 통행금지로 빼앗겼던 4시간을 되찾은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통금 해제를 알린 호외기사를 보는 시민들의 표정을 통해 당시의 기쁨을 엿볼 수 있습니다. 통금이 풀린 직후에는 다양한 심야 문화가 생겨났는데, 그중에서 가장 번창한 것은 술집, 나이트클럽과 같은 유흥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한국의 밤은 일상 전반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로 채워졌습니다. 밤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해 주는 심야 교통, 치안 등의 인프라가 갖춰졌으며, 카페, 극장, 쇼핑몰 등도 늦은 시간까지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평일 밤에 떠나는 ‘밤도깨비 여행’이나, 고궁 야간 개장과 같이 밤에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여가·문화 활동들이 생겨났고, 지금까지 이어지며 다채로운 밤을 만들고 있습니다.
▲ 가로등이 켜진 한성 밤거리, 20세기 초, 국립중앙도서관.
▲ 야간통행금지 전면 해제를 알린 신문 기사, 1982.1.1., <중앙일보> 호외.
2부에서는 밤의 감성에 주목합니다. 세상의 소음이 잦아들고 고요한 어둠이 내려앉으면, 낮과는 다른 생각과 감정이 피어오릅니다. 괜스레 우울해지기도 하고, 이유 모를 감정이 북받쳐 SNS에 감성 가득한 글을 적기도 합니다. 이런 ‘밤의 마음’은 비단 오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래전 사람들 역시 밤이 되면 끊이지 않는 고민거리에 뒤척거리고, 연인을 떠올리며 사랑 가득한 편지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밤의 풍경은 크게 변했지만, 밤이 불러 일으키는 정서는 시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밤과 그들의 밤이 한결같은 감정의 결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밤마다 연인들이 서로에게 쓴 편지들, 1960년대.
야간통행금지는 개인의 자유와 일상을 통제하던 시대의 억압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시간을 지나 누구에게나 열린 밤, 완전한 24시간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야경을 즐기고, 잠 대신 밤샘 여행을 떠나고, 때로는 촛불을 들어 서로의 마음을 모으기도 합니다. 이렇게 밤을 사용하는 새로운 방식들이 쌓여 오늘의 밤풍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오늘 또다시 찾아올 밤이,《 밤풍경》을 통해 조금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 통금해제 호외 기사를 보고 기뻐하는 시민들, 1982.1.5.,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