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광복 80주년을 맞아 ‘되찾음’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1945년 광복부터 1948년 정부수립까지 해방공간의 3년은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며 우리의 말과 문화, 기억을 회복해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전시의 주요 유물들과 함께 격동의 해방공간 속에서
온전한 우리를 되찾고자 했던 열정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글. 이명주(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전시는 ‘나의 별에도 봄이’ 오기를 염원했던 윤동주 시인의 시로 시작합니다. 해방 직후, 우리가 맞이한 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중
해방과 함께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우리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변화된 일상 속, 신문과 방송에서도 우리말이 들려왔습니다. 서울중앙방송국은 일본어 대신 우리말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윤용로 아나운서가 스튜디오에 들어가
‘
한국말 방송은 이제부터 제 1방송으로 방송합니다’하고 마이크에 대고 알렸습니다.”
전시의 시작과 함께 조선어학회가 오랜 노력 끝에 발간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인 『조선말큰사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함께 전시된 「말모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로, 주시경 선생의 별세로 출판되지는 못했지만 우리말 사전 편찬의 토대가 된 귀한 자료입니다.
한글 반포 500주년을 맞는 1946년에는 특별한 기념행사도 열렸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처음으로 영인해 국민에게 공개하는 행사였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첫 영인본 자료와 당시 기념행사를 토대로 구성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통해 우리말의 귀환을 체감했던 당시를 떠올려보시면 좋겠습니다.
일제에 의해 강요된 창씨개명도 원래의 이름으로 되돌렸습니다. 일상에 남아 있었던 일본어의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말로 고쳐 쓰는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도 진행되었습니다. 일본식 행정구역명을 우리 고유의 이름으로 바꾸는 움직임에 따라 1946년 ‘경성부’를 ‘서울시’로 바꾸었습니다. 전시된 서울안내 지도에서 위인들의 이름으로 바뀐 지명들, 충무로·을지로·원효로 등을 찾아보셔도 좋겠습니다.
다시 문을 연 학교에서는 광복 직후 가장 먼저 발간된 『한글 첫걸음』으로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야학과 공민학교 등을 통한 한글 교육도 전국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 『조선말큰사전』, 1947,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 『훈민정음 해례본』 영인본, 1946,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 신동명입 서울안내, 1946,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해방 직후,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왜곡된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주체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에 따라 새 국사·지리 교과서가 편찬되었습니다. 『국사교본』은 진단학회가 펴낸 국사 교과서로 우리 민족사와 전통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함께 전시된 조선총독부 발간 교과서와 비교해 보시면 뚜렷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훼손된 문화유산을 복구하고, 진단학회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반출된 문화유산을 환수하기 위한 노력도 펼쳐졌습니다. 국새 칙명지보는 광복 1주년 기념일인 1946년 8월 15일에 미군정을 통해 반환된 유물입니다.
국립박물관을 비롯한 각 지역 박물관이 문을 열고,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고자 했던 움직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립박물관 본관 안내」는 1947년 발간된 국립박물관 안내서로 당시 전시실 구성과 국립박물관의 역할과 목적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벽면에 전시된 쌍영총 벽화 모사도(쌍영총 현실 대묘천정 일월 모사도)는 1947년 국립박물관 고구려 벽화 특별전과 1948년 국립박물관 개성 분관 순회전에 출품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입니다. 아마도 최초의 순회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국립박물관 초기인 1947~1948년 고구려와 고려 벽화 특별전을 개최한 것은 박물관이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던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 『한글 첫 걸음』, 1945,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 『국사교본』, 1946,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 국새 칙명지보, 대한제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 「국립박물관 본관 안내」, 1947, 연재홍사준기념사업회 소장.
▲ 쌍영총 현실 대묘천정 일월모사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에 의해 금기시되었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을 재조명하고, 추모하는 움직임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 독립열사를 기념하는 다양한 서적들, 그리고 이봉창, 백정기, 윤봉길 의사를 모신 삼의사 묘역 조성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접하실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특히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여수와 해남의 이순신 대첩비가 지역 주민들의 헌신으로 제자리를 찾은 사연을 AI 영상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덕수궁미술관이 1946년 개관 첫 전시에 공개했던 이순신 장군의 팔사품도 병풍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기념일로 제정해 결속을 다지려는 움직임도 활발했습니다. 나라 밖에서 개최될 수밖에 없었던 3·1운동 기념식이 국내에서 대대적으로 거행되었습니다. 광복 후 첫 3·1절을 기념해 『삼일기념시집』이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해방기 광복절, 개천절, 순국선열기념일 등을 기념하는 움직임은 공동체의 기억을 복원하고 연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기억의 공유는 새로운 국가 건설을 향해 나아가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전시는 박두진 시인의 시로 끝을 맺습니다. ‘나의 별에도 봄이’ 오기를 염원했던 마음에 화답하듯, 시인은 이제 찬란하고 완연한 봄이 왔음을 선포합니다. ‘다시 우리로’ 돌아가고자 했던 해방기의 뜨거운 마음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오래 정드리고 살다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 박두진, 「어서 너는 오너라」 중
▲ 팔사품도,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삼일기념시집』, 1946,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